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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영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전공 졸업 ’12
무사시노 미술대학(Musashino Art University) Visual communication design Dept. 석사졸업 ’16
前 Morisawa Inc. 폰트디자인부 기획과 프로젝트매니저



선배님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이에요. ‘안녕, 디자이너’를 페이스북에 공유한 글을 보고 멀리 일본에서 연락을 주셨어요. 너무 감사합니다. 우연히 선배님이 한국에 들어왔다는 걸 알게 되어 이렇게 급하게 연락드렸습니다. 오늘 출국이신데 바쁜 와중에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공항에서 만나니 또 새로운 기분이네요. 먼저 자기소개 부탁해요.
안녕하세요. 저는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전공 08학번 김민영이고, 최근까지 모리사와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다가 이직을 앞두고 있어요.

첫 질문이에요. 미술은 어떻게 시작하셨고, 디자인과는 어떻게 오게 됐어요?
아버지가 주일 외교관이어서 2살부터 18살까지 일본에서 살았어요. 어렸을 때부터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는데, 어머니가 미대 진학을 응원해주셔서 중 3부터 입시 미술을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패션디자인과 게임디자인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제가 하고 싶어하는 패션디자인이 매우 좁은 분야라고 하는 학원 선생님의 조언으로 시각디자인과를 선택했죠. 한국에 다시 오게 된 건 부모님의 조언이었어요. 일본에서 국제학교에 다녀서 영어와 일본어는 잘했는데, 한국말 수준은 그렇지 않았는데, 모국어가 탄탄해야 하고 한국에 터를 잡으려면 한국에서 학교를 나와야 한다는 뜻이었죠.

하마터면 학교에서 선배님을 못 뵐 뻔 했네요. 학교생활은 어땠어요? 아무래도 일본에서 살다 오니까 어려운 점도 좀 있었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일본에서 살다가 오다 보니까 한국에서 사람을 많이 사귀려고 노력했어요. 1학년 때는 학생회도 하고, 소모임활동도 하고, 술자리도 여기저기 많이 나갔어요. 그러다 2학년 때는 그런 것들에 지쳐서 만나고 싶은 사람들만 만나고 스스로 아웃사이더가 됐죠. 하고 싶은 디자인 분야는 일단 시작해보고 삭제법으로 하나씩 지워나갔어요. 처음에는 게임디자인, 그다음은 일러스트레이션, 영상, 브랜딩 이렇게 직접 해봤는데 여러 이유로 하나씩 지워나갔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까 마지막까지 계속하며 남은 게 타이포그래피더라고요. 원래도 예술적인 작업보다는 논리적인 작업을 좋아하는데, 타이포그래피는 정말로 논리가 중요한 분야였거든요.

맞아요. 기억해보면, 제가 새내기 때 같은 모션그래픽디자인 소모임에 계셨는데, 졸업은 편집디자인으로 해서 의아했던 기억이 있네요. 인상적인 수업은 어떤 거에요?
1학년 때 들었던 타이포그래피 수업과 4학년 때 들은 편집디자인스튜디오가 기억에 남아요. 타이포그래피 수업은 스위스에서 공부하시고 온 선생님의 수업이었어요. 한 표현이 가장 기억에 나요. 커닝에 대해서 ‘글자와 글자 사이에 물이 찼다고 생각하고물의 부피를 조절해 보아라’ 라고 하셨거든요. 타이포그래피 역사를 중시하셨고, 그 바탕을 자세하게 알려주셨는데, 알고 나서 실습을 하니까 더 즐겁더라고요. 그리고 편집디자인스튜디오는 정말 힘들어서 기억에 남아요. 2주 만에 500페이지짜리 책을 만들어라, 신문을 만들어와라. 이런식이어서 빠르게 만들어내면서 많이 배웠죠. 그때 저는 편집디자인을 처음 경험했는데 다른 학생들은 편집디자인을 이미 경험한 터라 제 자신감과 싸우면서 한 수업이었어요. 3학년 때 공공디자인 쪽으로 인턴 하면서 기획 쪽에 관심을 두게 됐는데, 디자인 쪽에서 기획과 가장 유사한 게 편집인 것 같더라고요. 하나의 책을 기획하고 스토리를 짜서 페이지 간의 호흡을 맞추는 것에 매력을 느꼈어요.

제 동기가 선배님의 졸업 전시 작업을 정말 좋아했던 기억이 있는데, 졸업 전시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시겠어요?
미야자와켄지라는 일본 시인의 시를 한국말로 번역했어요. 한 권의 책 안에 일본어 원고와 한국어 번역이 함께 실려있어요. 일본어는 여전히 세로쓰기가 주류이기 때문에 책의 오른쪽에서 시작하고, 한국어는 현재 가로쓰기가 주류이기 때문에 책의 왼쪽에서 시작해요. 서로 다른 쪽에서 시작해 서로 다른 곳으로 끝나는 책이었죠. 잔잔한 시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그러데이션을 사용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글이 약간씩 나타나는 책을 만들었어요. 제가 너무 좋아하는 시라서, 그 시를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목적도 있었고, 한국인임에도 일본에서 자라 한국사람도, 일본사람도 아닌 제 정체성을 담고 있기도 했죠. 이 작업을 통해 저 자신의 정체성의 혼란을 이겨내어 확립시킨 것 같아요.

저는 그때 군 복무 중이어서 작업을 못 본 게 참 아쉽네요. 졸업 전시 이후에는 어떤 생활을 하셨나요?
졸업 전에 한 학기 휴학해서 졸업전시를 하고도 한 학기를 일부러 남겨뒀어요. 그래서 다른 친구들보다는 취업 걱정을 덜 할 수 있었죠. 그 한 학기 동안은 일본의 게임 회사 취업을 준비했어요. 그런데 일본에서는 한국의 대학교가 낯설다 보니 취직이 잘 안 되더라고요. 그렇게 한 학기를 마치고 일본으로 가는 거는 잠시 접어두고, 1년 반 정도 한국에서 일했어요. 한국에서 선배님들이 하시는 스튜디오에서 인턴을 하기도 하고, 문구회사에서 3달 정도 일했어요. 학교에서 조교 일도 했고요. 원래 가고 싶은 대학원이 있었는데, 그즈음 일본 국가장학생으로 선발되어서 대학원을 갈 수 있게 됐어요. 조교 일을 그만두고 일본으로 갔어요.

그렇게 다시 일본으로 가셨군요. 군 복무하면서 연락이 끊겼던 터라 일본으로 가셨다는 걸 주변을 통해서 알았어요. 대학원에서는 어떤 공부를 하셨어요?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타이포그래피 공부를 이어나가기로 했어요. 제가 연구했던 분야는 한글, 일본어, 영어 섞어 짜기*에요.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술 발명부터의 다국어 섞어 짜기 역사 500년을 리서치했어요. 그러고 나서 섞어 짜기가 이용되는 분야를 사인시스템 등의 ‘환경’, 가이드북, 기업 애뉴얼리포트 등 숫자가 중요하며 오독이 치명적인 콘텐츠인 ‘정보’, 잡지 등의 ‘출판’으로 나누고, 매체별로 적절한 서체 세트를 제안했어요. 그러다가 1년을 마칠 때쯤 모리사와라는 서체 회사에서 제 연구내용을 보고 일자리를 제안을 해주어서 취직하게 됐어요. 서체 회사다 보니 제 연구 내용에 흥미를 느낀 것 같아요.

섞어 짜기, 참 어려운데요. 연구도 쉽지는 않았겠어요. 모리사와에서의 회사 생활은 어땠나요?
처음에는 폰트개발부로 입사하고 2년 차가 되던 해에 폰트디자인부 기획과라는 부서가 생기면서 이동하게 되었어요. 기획과에서는 서체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했어요. 모리사와는 역사가 길고 서체 업계에서는 규모가 큰 편이라서, 디자인 과가 아닌 일반 문과계열 출신 사원이 대부분이었어요. 일반 기업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요. 그러다 보니 힘들었던 게 디자인적인 사고가 회사 안에서 통용되지 않았던 거에요. 의사결정에 있어서 디자인 논리가 이해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대학교에 다니며 인턴을 해서 조직 경험을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디자인 전공자들이 많은 환경이 아닌 크고 일반적인 조직 안에 있으니까 또 느낌이 달랐어요.

제 예상과는 많이 다르네요. 저는 서체 회사라서 디자이너들이 대부분인, 대학교 학부와 비슷한 느낌을 상상했어요. 그런데 프로젝트 매니저는 어떤 직업이에요?
폰트 하나를 만들 때는 많은 이해관계가 필요해요. 사내 디자이너, 외부 디자이너, 엔지니어, 이사회 같은 회사 의사결정 팀 등이요. 그 사람들 간의 스케쥴을 짜고, 커뮤니케이션을 도와주고, 예산을 짜고, 계약을 진행할 사람이 필요한데 그 역할을 프로젝트 매니저가 해요. 또 모리사와의 경우는 프로젝트 매니저가 서체의 최종 디자인도 컨펌했어요. 책임자의 역할이죠. 프로젝트 매니저는 의견이 안 맞으면 중간에서 중재해야 해서 자칫하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 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조율을 잘 해내서 서체 하나가 완성되면 그 뿌듯함이 정말 크더라고요. 그리고 회사에서 한 가지 일을 집중적으로 하다 보면 질리기 마련인데, 프로젝트 매니저는 이것저것 자잘하게 할 일이 많다 보니 일에 질릴 틈이 없어요.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자존감도 높아지고요. 지금은 이 일이 잘 맞아서 이직도 어카운트매니저로 하게 됐어요.

그런 일들은 직급이 높은 사람이 하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직군이 따로 있다는 게 신기하네요. 저도 관심이 가요. 저한테 연락 주셨을 때 선배님도 취업 당시 고민이 많았다고 하셨는데, 어떤 고민이었어요?
입사할 때 고민했던 게 대학원 동기들은 광고 회사나 디스플레이 회사 등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데, 저는 일반 회사원이 되니까 아쉽더라고요. ‘나는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이제는 디자이너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디자인 일에 대한 로망이 있었고, 디자이너를 정말 멋있어했거든요. 나도 OO 디자이너처럼 유명해져서 디자인 잡지에 실리면 좋겠다, 이런 꿈도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모리사와에서는 처음에는 좀 힘들었어요. 회사에서 디자인을 맡은 게 아니다 보니 처음 갔을 때는 회사에서 조금이라도 디자인할 만한 게 있으면 제가 자진해서 디자인을 맡아서 하곤 했을 정도로요. 이제는 일이 잘 맞고 재미도 느껴서, 디자이너로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은 접어두게 됐어요. 디자인이라는 전공을 살리며 나에게 더 잘 맞는, 나만의 직업이 있다고 느꼈거든요. 물론 가끔 ‘아직도 디자이너로 살았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할 때는 있죠.

일이 잘 맞아서 정말 다행이에요. 디자인 일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디자인 과를 전공한 게 어떻게 도움을 주고 있나요?
기획부에 있다 보면 회사의 전략과 관련된 일도 담당하게 돼요. 일주일에 한 번씩 전략회의에 들어가기도 했어요. 제가 경영을 전공하거나 MBA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디자인 과를 나오면서 고찰을 하거나, 분석하거나, 창의적인 사고방식을 갖는 훈련을 계속하다 보니 건설적인 전략을 짜는 데에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9시에 출근을 하는데, 출근해서 30분 정도는 워밍업을 해요. 커피를 내리고, 이메일을 보면서 가벼운 내용 위주로 처리하죠. 그러면서 오늘 해야 할 일을 적어 내려가요. 그 리스트를 보고 하나씩 지워가면서 하루를 보내죠. 위에도 말했듯이 프로젝트 매니저는 해야할 일이 많다보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꼼꼼히 관리가 되지 않거든요. 그리고 점심 후는 나른해지기 쉽기때문에 또 이메일 답변으로 한 시간 정도 보냈어요. 회의가 잡히면 회의를 하고, 외근도 나가고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5시 반이면 퇴근을 해요.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고서는 야근은 절대 안 하는 게 제 철칙이에요. 다음날 효율이 30% 이상은 낮아지거든요.

지금 하는 일 외에 관심사가 있나요?
예쁜 카페를 찾아다니면서 제 안에 카페 맵을 만들어요. 집과 직장 외에 편한 공간을 ‘3rd place’라고 하는데, 그런 곳을 찾는 거죠. 대학교 때는 이걸로 작업을 하기도 했고, 지금도 꾸준히 찾고 있어요. 그리고 요즘은 운동을 하고 있어요. 올해 시작했는데 신체 지수가 좋아지니까 건강해진다는 게 바로 보이더라고요. 운동은 얼마나 시간을 들이느냐가 100% 결과로 보이기 때문에, 자존감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을 주더라고요. 다른 하나는 요리에요. 힘들거나 우울할 때 무엇이든 생산해 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집에서 최대한 집밥을 해먹으려고 노력해요. 또 집도 최대한 예쁘고 편안하게 꾸미려고 노력하고요. 평일에는 외근이 있지 않고서야 회사 아니면 집에서 대부분을 보내는데, 집이라는 환경이 호텔이나 카페처럼 아늑하고 예쁜 공간이라는 것이 저에게 있어서 스트레스를 풀고 마음 편히 쉬는 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해요.

지금 가지고 있는 꿈이 있어요?
가벼워 보일 수도 있지만, 돈을 쉽게, 많이 벌고 싶어요. 어렸을 때부터 남들보다 더 일찍 더 노력하며 살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사람들은 돈을 쉽게, 많이 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 방법은 스스로 찾아야겠죠. 그리고 이렇게 말하고 다녀야 그게 실제로 가능해지므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하려고 하고 있어요.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일본,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사는 거에요. 최근에 미국의 웨스트코스트로 출장을 갔는데, 날씨도 너무 좋고, 해변도 가까운 게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다들 웃고 있고 인상을 안 쓰는 거에요. 그런 환경에서 살다 보면 나도 그렇게 살 수 있겠다 생각이 들어서, 다른 곳에서의 삶을 꿈꾸고 있어요.

저도 최근에 해외에서 살겠다는 결심을 해서인지, 공감이 많이 되네요. 마지막으로 미래에 대해 고민이 많은 후배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자기에게 맞는 일이라는 거는 각자 있는 것 같아요. 맞는 일과 좋아하는 일이 같으면 정말 좋겠죠. 하지만 잘 찾아보면 그 교집합이 있을 거예요. 완전히 다를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기회가 오면 두려워하지 말고 시도했으면 좋겠어요. 어른들은 ‘첫 회사는 3년은 다녀야 한다.’ 이런 말을 하는데, 3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도 저는 이렇게 잘살고 있잖아요. 젊을 때는 시도해보고 아니면 그만두면 돼요. 젊은 시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아요.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옮겨보고 남들보다 더 많이 경험해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직장 동료가 직업 중개 일을 오래 했었는데요.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어쩌면 맞는 일이라는 거는 없을지도 몰라. 결국은 사람과 환경이 제일 중요한 거야. 함께 일하는 사람과 환경이 잘 맞고 좋으면 그 일은 자기에게 맞는 일이 되는 거고, 함께 일하는 사람이 잘 안 맞고 좋지 않으면 그 일은 자기에게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하더라.’ 라고요. 어떤 일을 하더라도 함께 일하는 사람과 그 회사의 환경이 나에게 맞는지 잘 보고 결정하세요.

*섞어짜기 : ‘섞어 짜기’는 서로 다른 언어권의 문자를 섞어 조판하는 것을 말한다. 한글 타이포그래피에서 섞어 짜기는 로마자 및 한문과 가장 빈번히 이루어진다. (참고 : 한글과 로마자의 섞어 짜기를 위한 로마자 형태 연구 / 김의래)

2018년 8월 30일 김포공항 근처의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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