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Book     Interview    Contact     Facebook     Instagram

안규건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3학년 휴학
해군 디자인 병 복무
밴드 트라이던트 27기 보컬


귀한 휴가 시간을 내서 인터뷰해주어서 고마워요. 저에게 꾸준히 인터뷰 요청을 보내왔는데, 이제서야 만나게 됐네요. 그럼 먼저 자기소개 부탁해요.
안녕하세요.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에서 네 학기를 다니고 지금은 해군 디자인 병으로 복무 중인 안규건이에요.

군인에게 이런 질문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요즘 어떻게 지내나요?
군대에서 디자인을 하니 양날의 검인 느낌이긴 하지만 그래도 장점이 큰 것 같아요. 디자인 작업도 할 수 있고 부대 분위기도 좋고요. 일이나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를 빼면, 그래도 잘 생활하고 있어요. 이제 2달 정도 후에 전역해요.

저도 군대에서 디자인을 해서, 조금 공감이 되네요. 이제 디자인을 전공한 이야기를 할 텐데요. 디자인과는 어떤 계기로 오게 되었나요?
학창시절을 교육열이 높은 지역에서 보냈어요. 제게 공부가 아닌 다른 선택지를 주지 않는 환경이었고, 자연스레 무조건 공부를, 그것도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문/이과를 선택해야 하는 고2가 되기 전까지 수학을 좋아하고 잘해서 이과를 가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대학교 홈페이지를 보니 공대나 자연대에 관심 가는 과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때부터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거지?’ 회의가 들면서 공부가 하기 싫어졌어요. 오히려 심리학과나 경영학과에 관심이 있던 터라 문과로 가고 싶었죠. 하지만 주변에서 만류를 많이 해서 결국 이과를 갔어요. 근데 너무 재미가 없는 거예요. 그러다가 미래에 사라지지 않을 직업으로 문득 디자이너를 생각하게 되었어요. 축제 때 디자인 관련 일을 한 경험도 있고요. 그래서 빠르게 결정을 내리고 문과로 전과한 후 고3 말에 잠깐 실기준비도 했죠. 이때도 실기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뒤처지고 뒤늦게 과를 옮겨 어려움이 많았는데, 대학교에서 디자인할 상상을 하며 버텼어요. 기대가 컸죠.

미래에 사라지지 않을 직업이라 디자인과를 왔다는 건 정말 신선한 대답인데요. 하지만 아쉽게도 요즘은 AI가 디자인을 하는 세상이 와버려서 디자이너의 미래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그럼 그렇게 입학한 대학교 생활은 어땠나요?
경영이나 마케팅, 심리를 배우고 싶었는데 그런 걸 디자인에서 다루는 게 브랜딩이더라고요. 그래서 무조건 브랜딩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시각적인 결과물을 직접 만드는 일보다는 기획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입학을 하고 나니 디자인 과에서 브랜딩 말고도 정말 다양한 걸 배우더라고요. 브랜딩이라는 도착점이 조금 흐려졌어요. 1학년 때는 기초실기를 하고, 2학년 때는 타이포그래피, 사진 등 그때그때 듣고 싶은 수업을 들었어요. 타이포그래피 수업을 들으며 느낀 게 스스로 생각하고 접근하려 했던 것만큼 시각적 결과물을 끌어내지는 못한다는 거였어요. 포스터도 만들고, 책도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그래픽을 다루는 능력이 부족하더라고요. 하지만 빠르게 인정하고 ‘그래픽디자인은 내 길이 아니다.’, ‘디자인이 아닌 다른 것도 경험해보자’고 생각했어요.

그 다른 것이 노래였을까요? 이제 노래 이야기를 해볼텐데요. 밴드 보컬로 활동 중인데, 노래는 언제부터 좋아했고, 언제부터 보컬 활동을 했어요?
어릴 때부터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어요. 시작은 중학교 때 교내밴드에 들어갔던 일 같아요. 고등학교에도 합창부와 밴드부가 있었는데, 입시에 대한 압박감에 하지 못했어요. 지금은 후회되는 일이죠. 만약 활동했다면 고등학교 생활이 더 행복했었을 텐데 말이에요. 그래서였는지 대학교에 가면 꼭 밴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미대 내에 트라이던트라는 밴드가 있어서 바로 오디션을 봤어요. 27기 보컬로 합격해 활동 중인데 매우 만족스러워요.

밴드 외에 다른 활동도 했나요?
2학년 여름방학 때는 우연히 한 가수의 외부 강좌를 듣게 되었어요. 그 전까지는 노래를 배운 적도, 누군가의 평가를 받아본 적도 없었던 차였죠. 강좌에서 감정이 부족하다고 지적을 많이 받았는데, 처음이다 보니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를 몰라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네요. 이어서 2학기 때는 학교에 공연예술 관련 융합전공과정이 개설되어 발성 수업을 들었어요. 처음으로 연기와 감정에 더 집중하여 노래를 해봤죠. 앞서 말했듯이 전공 수업에서는 디자인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는데, 발성 수업에서는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점점 실력도 나아지는 걸 보면서 디자인보다 노래를 더 재미있어하게 됐고요. 그러다 입대를 하게 됐는데, 운 좋게도 음악 하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해군홍보단에 합격했어요.

군대에서도 노래와 가깝게 지냈겠어요. 어땠어요?
해군홍보단에는 가수 병, 뮤지컬 병, 사물놀이 병 등 해군의 각종 공연을 담당하는 병사들이 있고, 공연 및 내부 행사와 관련된 디자인, 사진 등을 담당하는 병사들도 있어요. 저는 디자인 병인데, 그러다 보니까 각종 행사의 홍보물을 디자인할 일이 많았죠. 한번은 음악회 홍보물을 디자인하고 행사 지원을 간 일이 있는 데요. 하필이면 그때 홍보물이 제가 의도한 대로 인쇄되지 않고, 다른 부서와 소통도 잘 안 돼 무대 위 그래픽이 일관성이 없게 제작된 걸 보았어요. 그런데 관객이나 간부는 홍보물이나 디자인에는 크게 관심이 없더라고요. 무대 위의 병사들은 조금만 실수해도 알아차리고 잘하면 박수도 받는데, 디자인은 마치 공기처럼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걸 알고 조금은 섭섭했어요. ‘군대니까 너무 큰 애정을 쏟지 말자’, ‘아무 기대 하지 말자’고 했지만 그래도 저는 조금 서운하더라고요. 주변에서는 ‘공연 디자인을 해서 재밌었겠다’라고 말하는데 오히려 이 일을 계기로 무대 근처에서 일하지 말자고 다짐하게 됐어요. 무대 앞에 서고 싶은 마음을 가진 채, 무대 뒤에서 일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더라고요.

정말 슬펐겠네요. 특히나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른 경험도 있어서 더욱 슬펐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최근에 신입생 OT(오리엔테이션)에서 공연을 하게 된 건가요?
군대에서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무대에 설 기회가 되면 꼭 서고 싶다고 결심했어요. 그래서 이번 신입생 OT 몇 달 전부터 휴가 일정을 조율하고, 밴드의 배려도 받아 너무 고맙게도 무대에 설 수 있었어요. 그때 제가 푹 빠진 하동균의 노래가 생겼던 터라 그 노래를 꼭 무대에서 부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From Mark> 라는 곡인데, 이 곡을 통해 여러 복합적인 감정을 많이 느꼈고 제가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워낙 곡이 어려워서 무대 위에서 눈을 감고 집중하고 노래하다 다시 눈을 떴는데 관객이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호응해주고 있는 거예요. 정말 울컥하더라고요. 결과적으로는 그동안 했던 공연 중 가장 만족스러운 공연이었어요. 이 경험으로 다시 한 번 무대 뒤보다는 무대 위가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렇다면 음악 혹은 노래로 진로를 생각하고 있는 건가요?
음악은 예술적 혹은 작가적인 성향이 디자인보다 더 많이 필요한 분야라고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내가 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있고 진입장벽도 스스로 높게 잡고 있어요. 여전히 음악을 하는 건 무모하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분명 재미있고 그 재미를 버릴 수 없기 때문에 태도가 조금씩 변하고 있어요. 이전에는 노래하는 모습을 보거나 공유하지 않았는데 이번 공연은 영상으로 찍어 다시 보기도 하고 SNS에 올려서 공유하기도 했거든요. 별거 아닌 일 같긴 하지만 스스로에게는 큰 변화고 도전이었어요. 하지만 디자인과 음악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아직은 디자인을 선택할 것 같아요. 음악도 포기는 못 하겠지만요.

가까운 계획이 있나요?
일단은 군대의 반복되고 재미없는 일상에 지쳐있어서, 재밌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디자인이 아닌 다른 분야도 상관없고, 재미있는 경험을 쌓고 싶어요. 그리고 전역하면 작곡하는 친구의 앨범에 객원 보컬로 참여할 것 같아요. 앞서 말한 두려움들 때문에 많이 고민했는데, 고민하면 할수록 시작하는 시기만 늦어질 뿐, 언젠간 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더라고요. 여러 번 찾아오는 기회가 아니니 이번에 잡아보려 해요.

디자인을 전공한 것이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나요?
지금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는 설명하기 힘들지만, 저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세상을 보는 시야가 많이 넓어졌고, 저를 바르고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것 같아요. 어떤 가치를 지향해야 하고, 무엇을 지양해야 하는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또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었고, 배운 것 같아요.

디자인을 전공하고 다른 진로를 고민하는 친구들이나, 다른 선택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언 혹은 마지막 한마디 부탁해요.
디자인을 배운 건 외국어 하나를 배운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영어영문학과를 나와서 다 번역이나 통역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디자인도 언어와 같은, 하나의 기술이라고 생각하면 하고 싶은 것과 디자인을 접목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디자인을 전공했다고 모두 디자이너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 생각을 조금 내려놓으면 더 즐길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만약 다른 일에 도전하고 싶다면 한살이라도 어릴 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저도 조금만 더 나이가 어렸다면 노래를 더 용기 있게 했을 것 같아요. 재미있어 보이는 일은 나중으로 미루지 말고 지금 하세요. 시간이 지날수록 압박감만 더 커질지 몰라요.


2019년 3월 15일 Tailorcoffee 에서

COPYRIGHT 2018-2019 안녕디자이너 ALL RIGHTS RESERVED.
︎ hiorbye.d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