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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스캠프 성산 전경>

서지수


인천대학교 디자인학부 졸업 ’15
플레이스캠프 성산 크리에이티브팀


안녕하세요. 멀리 제주에서 만나니 또 새롭네요. 자기소개 부탁해요.
저는 서지수고, 3년 차 디자이너예요. 졸업하고 브랜딩 쪽에서 여러 일을 하다가 제주도로 흘러 흘러 왔어요.

멋지고 부럽네요. 디자이너이긴 하지만 제주도를 선택한 이유와 지금의 삶이 궁금해서 인터뷰를 요청했어요. 일단 과거 얘기부터 해볼까요. 미술은 언제 시작했어요?
그림을 그리면 칭찬을 받고 하니까 ‘그림을 잘 그리는구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림 쪽으로 진로를 정했죠. 취미 미술은 어렸을 때부터 했어요. 부모님이 맞벌이하셔서 항상 학원에 있어야 했는데 그게 다 미술학원이었거든요. 입시 미술은 중2 때부터 본격적으로 했어요. 학원에서 동양화반, 서양화반, 디자인반 이렇게 나누어 졌는데, 순수 미술 쪽은 아닌 것 같아서 디자인 쪽을 선택했어요. 시각디자인과로 온 거는 사실 디자인을 하고 싶었을 뿐이지 어떤 디자인인지는 잘 모르고, 성적에 맞춰 여러 과를 지원해 합격한 곳에 온 거였어요.

저도 어렴풋이 미술 어린이집에 다녔던 기억이 나는 데요. 그럼 그렇게 들어온 대학의 생활은 어땠어요?
1학년엔 과생활 보다는 주로 동아리 활동을 했어요. 영어랑 테니스동아리를 했어요. 테니스는 어렸을 때부터 한 경험이 있어 들어갔는데 정말 선수 육성하듯 훈련을 해서 힘들었어요. 전지훈련도 가고 훈련하다 더위도 먹고, 한발로 운동장 한 바퀴 돌고요. 그래서 한 학기 만에 뛰쳐나왔죠. 2학년 때는 마케팅 소모임을 했어요. 경영대에서 하던 소모임이었는데 매주 만나 광고 공모전 케이스스터디도 하고, 마케팅, 기획 등을 배웠어요. 방학 때는 기업의 프로젝트를 받아서 다른 대학이랑 경쟁하기도 했고요. 재미는 있었지만, 디자이너는 기획과 마케팅이 생각한 걸 구현해주는 오퍼레이터 역할을 많이 하는 걸 경험하게 됐어요. 생각을 구현해주는 손과 발이랄까요. 3학년에는 부학회장을 했어요. 그때부터는 과 생활을 많이 했죠. 당시 학교와 학생이 대립하는 상황이 많아서 학교에 청원 올리고, 청문회 열고 그런 역할을 했어요.

정말 바쁜 대학생활을 보냈네요. 졸업전시는 어떤 작업으로 했어요?
<100%킹콩>이라는 이름의 콩 과자 브랜딩을 했어요. ‘자식한테 10%, 마누라한테 50%, 손주한테 100%’라는 카피도 만들었죠. 사실 4학년 때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전시 준비할 때는 매일 철야하고, 잠을 3~4시에 자고 그랬어요. 전시를 기획하는 회사 기획팀에서 여름방학 때부터 일했는데 회사가 체계도 있고 안정적이었어요. 그런데 프로젝트를 할 때와 안 할 때의 일 패턴이 너무 차이가 심하더라고요. 그래서 몇 달 다니다 그만두게 됐죠. 마케팅 소모임에서도, 졸전에서도 디자인 보다는 기획하는 게 재밌었는데 막상 회사에서 기획을 해보니까 스스로 디자인 작업에 대한 욕구가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졸업하고 2학년 때 잠시 인턴을 했던 스타트업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했어요.

스타트업 회사에서는 어떤 일을 했어요? 다시 간 이유는 무엇인가요?
다시 온 이유는 그때 했던 일이 재미있어서예요. 브랜드 컨설팅을 했는데 기획도 하고 디자인 업무도 할 수 있어 매력적이었죠. 그리고 졸업할 때 대기업도 생각했는데, 처음부터 대기업에 들어가면 성장이 안 될 것 같았고, 에이전시는 급여도 적고 야근도 많을 것 같았어요. 그런 고민에 스타트업을 선택했죠. 하지만 얼마 안 가 그만뒀어요. 한번 기업 일이 들어오면 몇 년간 보수 유지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는데, 디자인은 곁다리, 보너스의 느낌이 들었어요. 디자인이 서비스였달까요? 그러다 보니 완성도도 안 올라가고 제가 원하는 작업물도 만들기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직장을 알아봤어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뒤돌아보지 않고 그만두는 타입인 것 같아요. 그럼 그 이후에는 어떤 회사로 갔어요?
회사를 하나씩 그만두면서 마치 연애하다 헤어진 것처럼, ‘다음에는 이런 직장을 피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전 직장에서 아쉽고 원했던 걸 다음 직장에서 찾곤 했죠. 그래서 찾은 곳이 많은 상품군을 다루는 디자인 에이전시였어요. 한 번에 진행되는 프로젝트 수가 진짜 많고 범위도 다양했어요. 작은 프로젝트는 로고 만들기 작업부터, 큰 프로젝트는 아이디어 회의부터 스토리텔링 회의, 이미지 회의, 브랜딩까지 다뤘죠. 그러다 보니 야근도 많았어요. 근데 에이전시가 마약 같은 게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결과물이 바로바로 나오니까 뿌듯하고 희열감을 느껴지더라고요. 꽤 오래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몸이 너무 안 좋다는 걸 느꼈어요. 위염에 디스크까지 왔죠. 병원에 가니까 쓰는 근육만 발달 돼서 근육에 불균형이 생겼다더라고요. 쉴 때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쉬면서 제주도를 오게 된 건가요?
작년 5월에 황금연휴가 있었는데 그때 휴가로 길게 제주도 여행을 왔어요. 제주에서 친구를 사귀게 됐고, 그 친구가 조각가, 감독, 음악가 등 즐겁게 사는 사람들을 소개해줬어요. 그들이 놀고, 사는 방식을 겪으니까 제주도를 더 깊이 있게 경험할 수 있었죠. 관광지 말고 도민들이 가는 멋있고 좋은 곳을 가니까 마음이 더 많이 끌렸어요. 몸도 힘들 때였고 제주도도 잘 맞는 것 같아서 7월에 일을 그만두고 아예 제주도로 내려왔어요. 처음에는 딱 두 달 살 집과 편도 비행기만 끊었어요. 부모님도 ‘두 달 정도 있다가 돌아오겠지’라고 생각하셨지만, 두 달이 끝날 즈음에는 다음에 6개월 정도 살 집을 또 구하고 있었어요.

경제활동은 어떻게 했어요? 제주도에서의 생활이 궁금해요.
몸이 안 좋아 그만뒀던 에이전시에서 프리랜서 개념으로 프로젝트 단위 일을 줬어요. 그리고 부족한 건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벌었고요. 쉬는 날에는 금속공방에서 공예도 배우고, 낚시 친구 사귀어서 낚시도 했어요. 6개월이 지나 2번째 집도 계약이 끝나갔는데, 육지로 돌아가기에는 아직 아쉬움이 많이 남더라고요. 제주도의 사계절이 궁금했어요. 그래서 제주도에서 직장을 구하기 시작했죠. 1순위가 제주도였고 2순위가 육지로 돌아가는 거였어요. 다행히 지금 회사에 입사하게 돼서 계속 머물게 된 거에요. 하지만 사실 아직도 제주도에 완전히 살겠다는 생각은 아니에요. 일단 살아보고 있는 거죠.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좋은 점은 뭐에요?
플레이스캠프 성산이라는 호텔의 크리에이티브팀에서 일하고 있어요. 호텔에서 주최하는 행사에서 필요한 디자인을 주로 해요. 5월 초에 입사했으니까 얼마 안 됐고 요즘은 맥주 페스티벌 디자인을 하고 있어요. 엄청난 자연경관이 너무 가까이 있어서 좋아요. 요즘도 퇴근하고 날 좋으면 오름 하나 올라가고, 바닷가 놀러 가고 그래요. 최근에는 텐트 용품을 사서 동료들과 바닷가에 텐트 치고 놀곤 하고요. 그리고 가장 좋은 점은 직원 숙소와 식당이 있어서 숙식이 해결된다는 점이에요.

일과가 궁금해요.
근무는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해요. 숙소가 가까워서 8시쯤 나와서 9시까지 출근하고요. 점심시간이 1시간 반이고, 6시면 퇴근하는데 스텝식사가 6시까지라 5시에 나와서 저녁 먹고 퇴근해요. 여긴 야근이 없어요. 그래서 퇴근하면 필라테스하고, 출근 안 하는 날은 카페에서 책 읽고, 여기저기 구경하러 가요. 그리고 회사가 문화공간을 지향하고 있어서 북 콘서트, 버스킹, 장터 같은 다양한 행사들을 기획하고 디자인해야 해서 지루하지가 않아요. 성산이라서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요. 그래도 최근에는 육지에서 차를 가지고 와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어요.

제주도에서 살면서 달라진 점이 있나요?
장소에 관한 관심이 커졌어요. 원래 집에서 살 때는 주변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평소와 다른 지역에 오래 지내다 보니까 제 위치에 대해 계속 인지하게 되더라고요. 장소에 대한 애착도 생기고요. 그리고 이제 육지를 예전에 제주도 오듯 생각하게 됐어요. 아무래도 제주에 있으면 육지에서는 쉽게 하던 걸 못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 리스트를 적어 놨다가, 서울에 가면 할 일 적어놔서 하고, 유명한 카페 가고 맛집 찾아다녀요. 인천에서도 집 근처를 여행하듯 다니게 됐어요. 신포시장 가고 차이나타운 가고요. 그리고 제주도가 가장 좋은 게 무언가 배우기에 좋은 곳이더라고요. 외국어 회화 과외도 하고 필라테스도 배우고 있어요.

가지고 있는 계획이 있나요? 꿈은 뭐에요?
제주도에는 최소 1년은 더 있을 것 같아요. 나중의 꿈은 제주가 아니더라도 제가 원하는 공간을 직접 꾸며볼 기회를 얻고 싶은 거예요. 내 가게를 갖고 싶긴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공간이나 브랜드를 만들어서 인테리어도, 메뉴도 기획한 그런 관여를 크게 한 공간을 갖고 싶어요.

후배들에게 조언 부탁해요.
꼭 제주가 아니더라도, 자리를 옮기는 건 한 번은 필요한 것 같아요. 자리를 옮기는 게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요. 이동할 것과 지낼 곳만 구하면 바로 갈 수 있어요. 제주를 오게 된 것도 비자도 없어도 되고, 가까웠던 게 컸어요. 혹시 그런 걸 꿈꾼다면 일단 한번 가보면 좋겠어요. 전공과 다른 일을 생각하는 후배에게는 대학 등록금 아깝다고 ‘전공 살려서 일해야지’하는 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제 사촌 언니가 유치원에서 오래 일하다가 디자이너 일을 하는데, 처음에는 유치원에서 일한 시간이 아까웠다고 해요. 그런데 지금은 아동복 쪽 일을 하면서 유치원에서의 경험을 매우 유용하게 쓰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일을 하던 과거에 했던 일이 쓸데가 있을 거예요. 어떤 일을 했던 다 피와 살이 된다고 생각해요.

2018년 6월 22일 플레이스캠프 성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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