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리미사보
김은아
인천대학교 디자인학부 졸업 14’
하은이, 하영이 엄마
글로리미사보 운영
instagram.com/glory_holyvei
안녕하세요. 제가 반수 하기 전에 항상 같이 다니던 소울메이트인데, 결혼식 이후로 처음 보네요. 먼저 자기소개 부탁해요.
안녕하세요. 저는 28살 김은아고요. 하은, 하영이의 엄마예요.
미술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고, 디자인 과에 입학한 이유는 뭐에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집 앞 도자기 학원에 잠시 다녔어요. 만들 때마다 모양이 달라지고, 구워서 나오기 전에는 어떤 모양을 할지 알 수 없는 게 신기하고 재밌었어요. 하늘이 만들어주는 모양이라고 생각했어요. 미대를 가야겠다고 확실히 정한한 건 엄마가 생일선물로 정기구독해주신 <보그 걸> 때문이었어요. 디자인 관련 내용이 많다 보니까 패션디자이너를 꿈꾸게 됐죠. 물론 패디과는 금방 접었지만요. 그 후에는 어릴 때의 경험 때문인지 도자 문화 과를 준비했어요. 지원한 학교가 다 멀어서 가까운 인천대학교만 디자인학부로 지원했는데, 다른 곳은 불합격해서 인천대에 입학했어요.
도자기 만드는 걸 좋아하는지는 전혀 몰랐네요. 그럼 디자인학부는 생각과는 많이 달랐을 거 같은데, 학교생활은 어땠어요?
입학 때부터 디자이너로 취업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학교 다니면서 도자기를 배우려고 했었죠. 실제로 1학년 2학기 때부터 학원에 다녔는데, 직업으로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을 것 같아 그만뒀어요. 그 후에는 아동 미술을 지도하는 사회복지사를 준비했어요. 성당에서 5년 정도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가르쳤는데 그게 재미있었거든요. 학교 다니면서도 아동 미술학원에서 아르바이트하고, 복지관에서 실습도 하고 그랬어요. 나중에는 아동 미술지도사, 사회복지사, 미술치료사 자격증을 땄어요.
사회복지사도 잘 어울리네요. 졸업 즈음에는 어떤 고민을 했어요?
4학년이 됐을 때, 졸업을 위한 전공학점이 10학점 정도 모자라더라고요. 전공수업으로 10학점을 채우기에는 너무 무리인 것 같았어요. 과제도 많고 관심도 많이 없었거든요. 그러다 창업 관련 수업이 전공학점으로 분류된다는 걸 알게 돼서 3개의 수업을 수강하게 됐어요. 당시 학교에 창업지원단도 생길 정도로 청년 창업을 장려할 때였거든요. 저는 천주교가 모태신앙인데, 교회와 비교하면 선물용 용품이 많지 않다는 걸 생각해서, 선물용 성물제작 판매 회사 <착한 목자>를 창업했어요. 학교에서 받는 지원금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창업 관련 프로그램이나 워크숍도 참여하고, 상하이로 출장도 다녀왔죠. 크지는 않아도 매출도 생겼고요. 그러다 졸업 직후에 결혼하게 되면서 사업을 접었어요.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졸업 즈음에 지금의 남편과 연애한 지 4년 정도 됐었어요. 원래도 “결혼은 이 사람과 해야겠다, 이 사람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기는 힘들 것 같다"라고 생각했어요. 여러 가지 외부적인 상황도 있었고, “어차피 결혼할 것 바로 해버리자”라는 생각에 졸업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결혼했죠. 24살이었어요. 지금은 아이 둘을 가진 엄마가 됐네요.
인스타그램을 통해 카페를 오픈한 걸 봤어요. 사실 카페를 운영한다고 생각하고 섭외를 했는데, 지금은 운영을 안 한다는 소식을 듣고 조금 당황했어요. 어떤 사연이 있었나요?
카페는 작년 10월에 열었어요. 지금 인터뷰를 하는 집이 우리 가족의 5번째 집인데요. 3번째 집에 살고 있을 때 저희 오빠의 사무실 근처에 저렴한 상가 건물이 나온 거에요. 그래서 2층에 저희가 살고, 1층에 무언가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 이사하게 됐어요. 마침 그때 남편도 직장생활에 지쳐 할 때라서 같이 1층에 카페를 열어 3개월 정도 같이 운영하며 자리를 잡고 가족은 2층에 살기로 했죠. 그런데 20년이 넘은 건물인 데다 아파트가 아닌 곳에서 사는 건 처음이다 보니 어려움이 있더라고요. 전체 인테리어를 다 하고 들어갔는데도, 집에 곰팡이도 나고 단열도 잘 안 됐어요. 아이 둘을 데리고 추위를 견디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아이들이 안 걸리던 독감에 걸려 힘들어하고 저도 몸도, 정신도 너무 힘들었어요. 카페도 계속 신경 써야 하고, 아이는 아프고, 춥고, 집도 계속 신경 써야 했으니까요. 그러던 중 지금 집을 알게 돼서, 카페를 정리하고 이사 오게 됐어요. 올해 2월에 닫았으니까 4개월 좀 안 되게 운영했네요.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대학교에 다니며 창업한 사업은, 아이템과 캐릭터, 상품을 친오빠에게 넘겨서 오빠가 계속 키우고 있어요. 운영하던 카페도 오빠 회사의 오프라인 쇼룸으로 쓰고 있고요. 저는 오빠의 회사에서 디자인실장으로 일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힘들었는데 아이들이 크고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일이 있을 땐 출근도 하고, 집에서 근무하기도 하고 하면서 오빠 일을 돕고 있죠. 그리고 최근에는 오빠 회사 내 프리미엄 제품으로 <글로리미사보>라는 미사보 사업을 시작했어요.
<글로리미사보> 소개 부탁해요.
미사보는 성당에서 자매분들이 머리 위에 쓰는 건데요. 미사보 제품을 기획하고, 동대문에서 자재를 산 후 봉제공장에 맡겨 상품을 제작, 오프라인 쇼룸과 인터넷을 통해 판매하고 있어요. 아직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가장 열심히 하고 있죠. 일을 안 할 때는 임신을 두 번 하니까 살도 많이 찌고 자존감도 많이 떨어있었는데 지금은 다시 일하면서 성취감도 느끼고 생기가 많아졌어요. 이전에는 집에서 나가지도 않고 SNS에서 친구들 보면서 스스로 초라해지고 그랬어요. 요즘은 운동도 하고 가족이 여행도 다니면서 비교적 생산적으로 살고 있어요.
디자인 과를 나온 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디자인실장이지만 주로 하는 일은 주로 일러스트레이터로 이미지를 수정하는 일이나, 간단한 이미지 만드는 일이에요. 사실 그래서 전공자들 앞에서 디자이너라고 하기에는 좀 부끄러워요. 하지만 비전공자들 앞에서는 디자이너라고 하죠. 저희 고객 연령층이 4-50대이다 보니 디자인에 대한 기준이 좀 다른 것 같더라고요. 가장 도움을 받는 부분은 고객들이 디자인 전공자가 만든 거라고 하면 더 믿음을 주시는 거에요. 제가 외판 일을 자주 나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에요. 또, 상품을 기획하는 능력에도 디자인을 배운 영향이 정말 커요.
인터뷰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게, 인생에서 결혼은 떼 놓을 수 없는 주제잖아요. 그리고 여성 디자이너의 직업과 일을 이야기할 때 결혼과 육아는 더욱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했어요. 결혼을 해보니 어때요?
결혼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할 텐데 사실 결혼한 이후의 삶은 연애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물론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지죠. 아이를 키우면 남편도 남자 친구나 남편의 느낌보다는 우리 가족의 일원이라는 느낌이 강해요. 그리고 연애할 때는 마냥 좋지만, 막상 결혼해서 생활하면 많이 달라요. 결국, 결혼은 준비하는 게 아니라 각오를 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저는 결혼은 때 되면 해야 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좀 일찍 한 편이긴 한데 시기에 맞춰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나중에도 혼자 산다고 하면 좀 외로울 것 같아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가장 달라진 건 이야기 주제와 인간관계에요. 가정이나 아이 이야기를 많이 하고 인간관계도 아파트 이웃 엄마들과 어린이집 엄마들로 바뀌었어요.
그래서 앞서 직업을 간단하게 소개해 달라고 말했을 때 하은, 하영 엄마라고 한 건가요?
사실 디자인 실장이라고 하기에는 출근도 많이 안 하고, 좀 부끄러워요. 저희 부모님도 출퇴근을 바라시기고 저를 답답해하시는데, 저는 지금이 좋아요. 제가 하고 싶은 일만 골라서 하고, 아르바이트식으로 일하는 게요.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할 지라도 지금 버는 돈으로 아이들 간식 하나 더 사주고 가족들 다 같이 외식 한 번 하고 하는 거에 만족해요. 지금 하는 사업도 더 커지는 것은 바라지 않고 지금을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실장보다는 엄마라고 불리고 싶어요.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친구나 후배들에게 조언해주세요.
사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뼈자이너가 아니라면 다른 걸 해도 되지 않나 싶어요. 하지만 이왕 전공했으니 버릴 건 버리되 취할 건 잘 취했으면 좋겠어요. 전공도, 대학생활도요. 대신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겠죠. 그리고 무언가 때문에 참으며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전공 때문에 관련 직업을 구하고, 돈 때문에 회사를 다니고, 자식 때문에 살고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면서 산다면 행복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아요.
2018년 10월 5일 그녀의 5번 째 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