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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전시 작업 <Doing without Being>









전병학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전공 졸업 ’15
독채펜션 에디토리얼제주 운영중


안녕하세요. 전에도 인터뷰 때문에 뵀었는데, 또 인터뷰 때문에 연락을 드리게 됐네요. 이렇게 제주도에서 뵈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반갑습니다.
네 반가워요. 저는 제주도에서 아내와 두 달 된 딸과 함께 살며 펜션을 운영하는 전병학이에요. 요즘 주로 하는 일은 잡초 뽑기, 잔디깎이, 가드닝하기, 펜션 관리하기이고 또 펜션 내부의 중정에 데크공사를 준비하고 있어요.

하시는 일들이 굉장히 현실적이네요. 과거로 돌아가서, 미술은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처음에는 공부를 싫어해서 미술을 시작했어요. 입시 미술 3년간 석고 수채화를 했는데, 저는 이때가 가장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미술학원 학생들과 함께하는 것도 좋았고요. 원래는 직접 식기를 만들고 싶어서 도예 과를 가고 싶었어요. 이때부터 한량 기질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주변에서 디자인 과를 권해서 디자인 과를 오게 됐죠. 디자인 과를 가서도 도예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이때만 해도 주변에서 하라는 대로 하는 스타일이었어요.

대학교에서는 어떤 학생이었어요?
1학년 땐 학점이 안 좋았어요. 학교를 안 나간 건 아니지만, 각종 행사에 열심히 가고 놀았거든요. 그래서 군대 다녀와서 계절학기를 열심히 다녀야 했어요. 1학년 때부터 한 타이포그래피 소모임활동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1, 2학년 때만 해도 소모임 회장 주도하에 다양하고 유익한 활동을 많이 했었어요. 3학년 때는 제가 회장을 맡게 됐는데, 하고 싶은 건 많고 하는 방법은 모르니까 저도 회원들도 고생을 많이 했죠. 좌충우돌이었어요. 디자인 분야 중에서는 폰트와 편집에 관심이 있었어요. 저는 그림을 잘 못 그리고 창작하는 디자인도 잘 못 하거든요. 그래서 디자인 중에서 그림을 안 그리고도 할 수 있는 쪽을 찾다 보니 편집디자인 위주로 공부하게 됐어요. 폰트를 기반으로 하는 디자인이니까요.

저도 창작을 참 힘들어하는데, 마지막 이야기는 정말 많이 공감되네요. 저도 그래서 편집에 관심이 많아요. 소모임 활동 외에 학교 활동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있나요?
학교 다니면서도 외주 작업을 많이 했어요. 다른 학교 전시 도록도 만들고, 사진촬영도 했죠. 일을 계약해와서 다른 친구들과 팀을 꾸려서 작업을 한 일도 있어요. 이런저런 일을 열심히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만족스럽지가 않더라고요. 이걸 사회의 베타테스트로 삼았을 때 ‘내가 디자인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내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살 수 있을까?’를 주로 고민했죠.

졸업 전시는 어떤 작업을 했나요?
1학년 때부터 사진 작업은 쭉 했었는데, 마침 그때 정신건강이나 명상에 관심이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머릿속의 생각도 다 그런 쪽이었죠. 현재를 살라는 얘기가 있거든요. 과거나 미래를 살지 말고. 생각해보니 미래의 어느 순간에 더 좋은 삶을 살기 위해 지금의 순간들을 그냥 지나쳐버리곤 했다는걸 알게 됐어요. 아무 생각 없이 미래를 위해 쳇바퀴 같은 삶을 사는 거죠. 그래서 이라는 이름의 작업을 했어요. 동평화시장에서 찍었는데 매우 바쁘게 돌아가는 곳이라 촬영 허락을 얻기가 많이 힘들었어요. 겨우겨우 양해를 구해서 진행할 수 있었어요.

졸업하고 어떤 일을 했나요?
졸업전시 즈음에 이미 사무실을 얻어서 인디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고 있었어요. 참신한 앱을 만들면 돈을 벌 줄 알았는데 생각만큼 잘 안 됐어요. 그리고 처음엔 시리즈로 만들 계획이었는데 첫 앱 수익이 생각보다 안 나와서 좀 더 대중적인 서비스를 만드려고 자금이 많이 필요해지더라구요. 정부 지원사업에 계속 지원하면서 진행해 나가다가 아깝게 자꾸 떨어졌어요. 결국 현실의 어려움과 능력의 한계를 느껴서 사업을 접게 됐어요. 그러고 나서 선배의 스튜디오에서 잠깐 일을 했어요. 한 프로젝트에서는 선배와 둘이서 거의 1,000개 넘는 시안을 작업했어요. 좋은 경험이었지만 힘들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제가 소진되는 느낌이었죠. TV 예능에서 두 가수를 봤는데 한 가수는 노래를 만들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서 얼굴이 점점 핼쑥해지는데, 한 가수는 즐겁게 하더라고요. 한 명은 한계를 깨며 작업하고, 한 명은 즐기는 거죠. 디자인하는 저도 즐기기 보단 한계를 깨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언젠가 제주도에 자리 잡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데요. 제주도로 오겠다고 생각한 건 언제인가요?
3년 전인데 졸업전시는 마치고 1학기가 남아있었어요. 그때 동기들과 제주도에 놀러 왔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여기서 살까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죠. 한창 디자인에 지쳐 있을 때이기도 했고요. 그 한 학기 동안 학교수업이 끝나면 제주도 오고 그랬어요. 일주일에 두 번씩은 온 것 같아요. 수업도 펜션 운영을 위해 경제학원론이나 회계원리 같은 수업을 들었어요. 수업에서 제주도에서 할 사업에 대해 발표도 했었고요. 법 알아보고, 살 집도 알아보느라 시간이 좀 걸리더라고요.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 해야 했어요.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거 같은데, 그 과정이 궁금해요.
학기를 마치고 유명한 펜션이나 게스트하우스에 연락해서 찾아다니며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 중 한 펜션에 펜션운영을 도와드리겠다고 하고 주인 부부의 집에 한 달간 함께 지내게 됐죠. 그러면서 펜션 운영방법을 많이 배웠어요. 직접 옆에서 일하면서 펜션 운영의 현실적인 부분들에 대해서 알게 됐어요. 그리고 그분들이 많은 분을 소개해주셨어요. 제주도는 외지인에 대한 배척이 있어서 정착하는 게 쉽지 않은데,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만들어주셨죠. 한 달 살기를 마치고 서귀포에 아파트를 빌려 지내면서 땅을 보러 다녔어요. 제주도를 거의 다 돌아다녔죠. 그러다 이 땅을 찾았고, 건물을 짓기 위해 설계사무소에 다 메일을 돌렸어요. ‘나는 누구고, 자금은 얼마고, 땅은 어디다, 어떤 집을 짓고 싶다’와 같은 내용을 담아 마치 구직자처럼 설계사무소를 찾아다녔어요. 우여곡절 끝에 16년 9월부터 건축을 시작하고, 작년 7월에 오픈했어요. 공사할 때는 여기 상주하면서 현장인부를 관리하고 감독했어요. 그때 결혼 준비도 할 때라, 같이 준비하느라 힘들었어요.

저번에 인터뷰로 뵀을 때 한창 사업 준비 중이라고 하셨던 게 기억이 나네요. 그럼 에디토리얼 제주 소개 부탁해요.
에디토리얼 제주는 오픈한지 일 년이 조금 안 된 독채 펜션이에요. 집을 구상할 때 ‘어떤 모습으로 지어주세요.’라고 하지 않고 추상적으로 그렸어요. ‘정문을 들어와서 얼마만큼 걸어서 현관이 나왔으면 좋겠고, 현관은 얼마나 컸으면 좋겠고, 설레는 마음으로 돌았을 때 거실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요. 그런 걸 바탕으로 건축가들이 노력하고 구체화해서 만들어진 집 구성이에요. 설계할 때 갤러리를 할 수 있는 시설을 해놨어요. 주변 친구들 그림도 걸고 전시도 열려고요. 그리고 집 안의 자생식물을 그려 책도 만들고, 제주에 생겨나는 카페들도 단행본으로 만들려는 계획도 있었어요. 그런 것들이 편집의 영역이다 보니 이름을 에디토리얼로 하게 됐죠. 저희의 취향을 전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생각보단 할 일이 너무나 많더라고요. 건축 후에 육 개월은 하자보수와 기존의 설계에서의 문제점을 보완해나가는 데 급급했던 것 같고요. 손님을 받는 일도 생각보다 변수가 많았어요. 2달 전까지만 해도 전기 문제가 있고 마당의 가드닝도 직접 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그래서 처음의 계획대로는 못 하고 있어요. 천천히 하려고요. 처음에는 손님이 없으면 불안했는데, 지금은 있으면 있는 대로 좋고 없으면 없는 대로 좋아요.

일과를 알려주세요.
펜션에서 손님이 나가는 시간이 11시에요. 그때 펜션에 와서 청소하고 다음 손님 받을 준비를 해요. 설거지하고 집안의 모든 침구류를 교체하고, 스팀 청소까지 직접 해요. 그러다 보면 집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고 고쳐야 할 것도 많이 보여요. 그렇게 청소를 다 하면 2시쯤 돼요. 그럼 쉬다가 손님을 받고 퇴근을 하죠. 처음에는 청소하는 데 10시간씩 걸렸는데 지금은 많이 숙달됐어요. 펜션이 좋은 게, 쉬고 싶을 땐 예약을 막아 놓으면 되기 때문에 아이 생기기 전에는 일본여행, 서울여행을 자주 갔어요. 아이 생기고 나서는 제주도에서 좋은 장소들을 계속 찾아다니고 있어요. 블로그에 정리해서 올리기도 해요. 손님들에게 추천해주기도 하고요.

디자인을 전공한 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제 생각에는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새로운 걸 창조하는 걸 배운거라기보다는 ‘기존에 있던 거에서 문제점을 발견해서 어떻게 바꿀까’를 4년 동안 훈련한 것 같아요. ‘다르게 보여줘야겠다’, ‘기존의 문제점을 어떻게 보완해야겠다’라는 생각이 펜션을 만드는 데 도움이 많이 됐죠. 그리고 디자인을 하면 영상, 사진 등 많은 걸 다 배우잖아요. 다 쓸 곳이 있더라고요.

지금 가지고 있는 꿈이 있나요?
펜션을 짓고 운영한 지 일 년 밖에 안 돼서 구체적인 다음 계획은 아직 없지만, 나중에 펜션 사업을 정리하고 나면 외국에 나가서 지내볼 생각이에요.

제주도에서의 삶을 꿈꾸는 후배나, 디자이너로의 진로에 고민이 많은 후배에게 조언 부탁해요.
혹시나 제주도의 삶을 생각하는 후배가 있다면, 현실적인 고민을 많이 해보길 바라요. 제주도에서 땅을 사기도 쉽지 않고, 법도 빨리 바뀌고, 돌발 변수가 많아요. 그리고 제주의 땅값이 예전보다 많이 올라서 투자한 만큼 벌고 다시 회수할 수 있는지 잘 생각해봐야 해요. 또 사업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제주라는 섬에서의 삶이 만만치 않기도 해요. 신중하셨으면 좋겠어요. 진로로 고민 많은 학생들에게는 뻔한 얘기지만 학창시절에 이런저런 경험을 많이 해보는 게 좋은 것 같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디자인뿐만 아니라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평생 해나가려면 좋아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과정이 나를 너무 괴롭게 하면 굳이 안 해도 되지 않을까요. 다른 길도 있으니깐요. 근데 사실 저도 아직 디자인의 꿈을 버리지는 않았어요.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즐기면서 할 수 있을 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2018년 6월 26일 에디토리얼 제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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