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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전시 <황금해파리 사회> 중 에서




졸업전시 <일상의 일상 (日常의 溢像)> 중 에서

임재형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전공 졸업 유예 중
OOO감독 CF촬영팀 써드 어시스턴트


바쁜 와중에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고마워요. 너무 오랜만에 만나네요. 자기소개 부탁해요. 동기 님.
안녕하세요. 저는 임재형이고, 올해 스물일곱, 졸업 유예 생이에요. 현재 CF 촬영팀에서 써드 어시스턴트로 일하고 있고 촬영이 없는 날은 외주를 받아 영상 작업을 하고 있어요.

사실 동기긴 해도 깊은 얘기는 잘 안 하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어떻게 해서 시각디자인과에 오게 됐어요?
만화를 잘 그렸어요. 주변에서 좋아해 주니까 욕심이 생겨서 계속했고 그러다 보니 흥미를 갖게 됐고요. 입시는 고2 때부터 마음을 잡고 시작했죠. 그리고 테크놀로지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그림을 좋아하는 것과 테크놀로지를 좋아하는 성향이 합쳐지니까 순수계열보다는 디자인 전공으로 자연스럽게 기울었어요. 원래는 산업디자인 과를 가려 했는데 신입생 설명회 때 시각디자인 과의 홍보영상이 너무 멋있는 거에요. 1년 정도는 시디과를 가도 괜찮겠지라는 생각에 시디과를 갔어요. 우리 학교는 학부제라서 이동이 쉬울 것 같았거든요. 나중에야 알게되었지만 생각만큼 전과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참 중요한거에요, 홍보영상이라는 게.

그때부터 영상과의 인연이 시작됐나봐요. 대학교에서 임재형은 어떤 학생이었어요? 항상 저랑 술 마시고 수업시간에 맨 뒤에 앉아서 정신 못 차리던 기억이 있는 데요.
원래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일러스트레이션을 하려고 했어요. 근데 1학년 때 학교생활을 열심히 했는데, 친했던 선배들이 다 영상소모임이었던 거에요. 그래서 자연스레 영상소모임 활동을 시작했어요. 설명회 때의 홍보영상 영향도 있었고요. 1학년 때 수업들이 전공수업보다는 기초실기 수업이다 보니 수업보다 소모임 활동을 더 열심히 했어요. 소모임에서 영상의 기본 기능, 컷들의 이름과 원리, 편집 프로그램을 배웠죠. 그리고 거의 모든 촬영에 스태프로 참여했어요. 사진도 좋아했는데, 이 것도 디자인 중에 기술과 가장 밀접한 분야를 찾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다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대에 갔어요.

제 기억에 군대에서, 그리고 전역하고 나서도 영상을 그만한다고 했던 기억이 나는 데요. 지금은 다시 영상을 하고 있잖아요? 어떤 사연이 있는 거예요?
군대에서는 카메라를 만질 수가 없잖아요. 몸에서 멀어지니까 자연스레 영상과 멀어졌고 전공하지 말아야겠다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작가적인 작업을 할 수 있는 사진에 관심이 더 커졌어요. 아무 개입 없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통로라고 할까요? 전역하고 나서는 한 두 달 사이에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 가고 싶기도 했고, 바로 복학하기도 싫었어요. 그래서 어학연수 목적으로 필리핀에 갔죠. 영어도 배우고 동남아시아 여행도 다니고 스쿠버다이빙 자격증도 따고 사진도 정말 많이 찍었어요. 일부로 영상기능이 없는, 사진 촬영만 가능한 카메라를 가져가기도 했어요. 그런데 가서 사진을 실컷 찍으면서 푹 쉬니까 또 슬슬 영상이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맞아요. 당시 갑자기 필리핀으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좀 놀랐었어요. 그럼 필리핀에서 돌아와서는 무엇을 하며 지냈어요?
군대에 있을 때 3D 쪽에 관심이 생겨서 학원 다닐 계획을 세웠었어요. 필리핀에서 돌아와 그 계획대로 3D 학원에 갔어요. 그런데 계속하다 보니까 흥미가 떨어지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어요. ‘나는 일단 시작하고 겪어봐야 포기를 하는 성격이구나.’를요. 그 후에 공연 관련 스타트업 회사에 1년 동안 다녔어요. 제가 남에게 피해 주는 걸 싫어해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구하려다 보니 실사 영상을 다시 하게 됐죠. 거기에서 콘서트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했어요. 주로 콘서트 현장 스케치 영상이었죠. 하다 보니 직접 연출하는 거에 욕심이 생겼고, 3학년 2학기에 복학을 해 연출 작업도 하고 틈틈이 영상 작업을 계속 외주로 했어요.

책임감이 강한가봐요. 학교에 다시 복학하고, 곧 졸업전시를 맞았을 텐데요. 졸업전시 작업이야기 좀 해주세요.
<황금해파리 사회>라는 사진 작업과 <일상의 일상 (日常의 溢像)>이라는 영상 작업을 했어요. 두 작업이긴 하지만 서로 연관이 있고 주제의식은 같아요. 이야기하고자 한 건 현대 사회 속에서의 공허함, 우울함, 자아 찾기에 대한 건데 “이 경쟁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라는 이야기를 황금해파리를 소재로 표현한 작업이에요. 해파리는 보통 독이 있는데, 황금 해파리가 사는 곳은 포식자가 없어서, 스스로 독을 버렸어요. 그래서 그들의 일과는 태양을 쫓아 헤엄치는 것뿐이에요. 자유롭고 여유롭죠. 원래 영상 작업의 처음 계획은 직접 팔라우 호수에 가서 황금해파리를 쫓는 셀프 다큐멘터리였어요. 그런데 해파리 보호 차원에서 관광객을 제한했고, 결국 계획이 물거품이 되어 버린 거에요. 결국, 다큐멘터리 요소를 걷어내고 각색해 영상을 찍었어요. 그래서인지 약간 모호한 느낌의 작업이 나왔어요. 사진 작업은 일 년 동안 여행한 홍콩과 필리핀, 태국 그리고 서울 사진에 3D로 만든 황금 해파리들이 둥둥 떠다니는 사진 작업이에요. 두 작업을 비교하자면, 사진 작업이 더 상상의 여지가 많아서 좋아요.

졸업 작품을 하고 나서 진로에 대해 고민을 했을 것 같은데요?
졸업 작품 자체가 사회 준비를 하러 나가는 저의 고민이었어요. 저도 영상의 주인공 처럼 사회에 나가 경쟁하기 싫었고 자신도 없었어요. 그리고 졸업 작품에서 연출과 촬영을 병행하면서 어려움을 느꼈어요.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는 없겠더라고요. 한 가지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정했죠. 전시 후에 Calarts 단기 해외연수를 다녀왔어요. ‘실사영상에 3D 오브젝트를 합성하는 VFX를 작업을 해보는 건 어떨까.’라는 졸업 전 마지막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다녀오고 나서 확실하게 답을 찾았어요. 재미는 있지만, 역시 3D 작업을 직업으로 삼을 자신은 없더라고요. 2월 초에 한국에 돌아왔는데 바로 2월 중순부터 지금 하는 CF 촬영팀 일을 시작했어요.

CF 촬영팀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다소 의외였는데요. 거기에서 일하겠다고 생각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촬영하는 걸 좋아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떤 역할로 시작할 수 있을지 불분명했어요. 길은 정말 많았어요. 촬영 전공 학부나 대학원으로의 진학, 영상팀이 있는 회사나 프로덕션에서 일하는 것 등의 방법이 있었죠. 그러던 중 영상 프로덕션에 있는 선배에게 소개를 받았어요. 촬영팀도 영화나 드라마, 뮤직비디오 등 여러가지 팀이 있지만 그 중에서 CF 촬영팀은 최신의 장비를 매 프로젝트마다 촬영 특성에 맞게 바꿔가며 다뤄야 해요. 사실, 제가 지금하는 외주 규모에선 시네마카메라를 마음대로 쓸 수 없거든요. 인터넷과 잡지에서 보기만 하던 카메라와 렌즈들을 직접 만지고 다룰 수 있다는 것이 좋았어요. 그리고 특성상 짧은 시간내에 내용을 전달해야하고 트렌드에 민감하기 때문에 시각적 스토리텔링에 뛰어나야 하고요.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저에게 분명 이점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그동안 한 촬영이 시골 산골에서 계곡 물에 발 담그고 장난치는 정도라면, CF계는 상어가 헤엄치는 바다에서 수영하는 느낌이에요. 짧은 시간 안에 가장 많이 배울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죠.

써드 어시스턴트는 어떤 일을 하나요?
촬영은 구성요소가 딱 두 가지에요. 감독과 카메라, 그리고 그 외에는 다 어시스턴트에요. 촬영팀 외에 촬영을 보조해주는 그립팀과 필요에 따라 스테디캠, 지미집, 테크노, 암카, 로우로더팀 등이 있어요. 촬영팀은 상황에 따라, 특성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5명으로 구성돼요. 감독, 퍼스트 어시스턴트, 세컨드, 써드, 데이터 매니저로요. 퍼스트는 포커스를 맞추고 카메라 노출을 맞추는 역할을 하죠. 세컨드는 카메라 옆에 붙어서 오퍼레이팅을 보조하고 카메라를 옮겨요. 데이터 매니저는 데이터를 백업하고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고, 데이터 스크립트를 작성해요. 그다음이 써드인데 현장의 장비를 관리하고, 촬영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모니터를 볼 수 있게 설치하고 관리하죠. 그리고 그 외에 촬영에 필요한 모든 일을 해요. 사소한 일 까지요.

디자인 과에서도 영상을 다루잖아요. 실제로 촬영을 담당하는 디자인 전공 학생이 많을 텐데, 디자인과 촬영이 많이 다른가요?
외주로 영상디자인을 하는 임재형과 촬영팀 안에서 일하는 임재형은 분명히 다른 사람이에요. 저 자신도 두 일을 할 때의 저를 다르게 생각해요. 외주하는 메일에는 Graphic&video 디자이너라고 쓰고 촬영일 할 때의 메일은 아예 다른 메일을 쓸 정도로요. 우리 과에서 한 건, 촬영을 가지고 디자인을 하는 거였어요. 다시 말해, 디자인하기 위한 소스로 촬영을 하는 거죠. 학교 다닐 때의 영상 작업과 가장 다른 점은 촬영 현장의 규모와 거기서 오는 상당한 압박감이에요. 또한, 용어도 다르고. 체계가 매우 세분되어 있어요. CF 촬영은 더 많은, 최신의 장비를 알아야 하고 손도 정말 빨라야 해요. 호흡이 정말 빠르거든요. 그리고 촬영팀은 프리프로덕션이나 포스트프로덕션을 하지 않고 딱 촬영만 하고 끝나요. 촬영이라는 과정 안에서 모든 걸 쏟아 붓는 거에요. 물론 촬영 감독은 프리와 포스트를 포함한 프로젝트 전 과정에 참여해요.

촬영과 외주,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게 힘들지는 않나요?
저는 이렇게 두 가지를 하는 게 행복해요. 매일 촬영만 하면 지칠 때가 많거든요. 그러다 쉴 때 외주가 들어오면 영상 디자인을 하는데 그게 행복해요. 또 영상 일을 하다가 촬영을 하면 일이 너무 깔끔해서 좋아요. 디자인은 일을 넘겨도 수정이 있고, 그에 대한 생각을 계속 머릿속으로 하게 되는데, 촬영은 현장을 떠나면 완전히 끝나는 거니까요. 그 두 가지가 밸런스가 잘 맞아서 지금은 만족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렇게 바쁘게 지내는 와중에도 우울하지 않은 이유는 지금 두 일을 다 잘 해내고 있기 때문이에요. 경력이 많은 사람보다는 못하겠지만, 지금의 제 위치에서는 일을 잘 해내고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면 제 개인 작업도 계속 하고 싶어요. 촬영팀 일이나 영상 외주나 어찌되었든 클라이언트 잡이니까요. 아무래도 가장 행복할 때는 제 이야기를 할 때 같아요.

일과를 알려주세요.
촬영이 잡히면 그 전날 렌탈샵에 가서 촬영에 쓸 장비들을 점검해요. 촬영 당일, 짐을 싸서 촬영을 떠나죠. 최소 1시간 전에는 렌탈샵에 모여서 장비를 실어서 촬영장으로 출발해요. 지방 촬영이라면 좀 더 일찍 출발하거나 전날에 미리 출발해요. 그다음 촬영현장으로 도착해서 촬영 준비를 해요. 장비를 설치하고, 촬영할 모든 준비를 마치죠. 그 후 각자의 역할 안에서 임무를 수행하면서 열심히 촬영해요. 저는 주로 카메라 배터리를 관리하고 현장의 모니터를 설치하고 관리해요. 그리고 또 다른 어시스턴트가 필요로 하는 요청을 수행하죠. 아직은 제가 직접 카메라를 만지는 일은 드물어요. 근무 일수는 우리 팀의 경우 한 달에 평균 12회 정도 촬영을 해요. 적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날에 항상 장비를 점검해야 하기 때문에 24일 정도 일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대부분 첫 차 전에 집을 나서서 막차가 끊기고 돌아오는 스케줄이기 때문에 출퇴근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어요. 렌탈샵에서 가까운 곳에 집을 얻을까도 생각 중이에요.

디자인을 전공한 게 지금 하는 일에 어떤 도움이 되고 있나요?
모니터 색을 조절할 때 가장 많이 느껴요. 모니터 제조사마다 아무리 같은 값을 줘도 미세하게 다르거든요. 캘리브레이터로 미리 교정을해도 모니터 환경이 시시각각 변하는 현장에서는 사람이 손수 맞춰야 하는데, 디자인을 전공해서 그런 미세한 차이를 더 잘 잡아내죠. 사소한 것 같지만 촬영장의 모니터는 매우 중요한 장비에요. 무엇을 어떻게 찍고 있는지 알아야 모두의 작업효율를 높일 수 있으니까요. 다빈치리졸브나 파이널컷 같은 편집 프로그램을 다뤄봤다는 것도 큰 장점이에요. 그리고 화면 안에서 레이아웃을 구성할 때 다른 사람보다는 더 조화롭게 할 수 있다는 것도 있네요. 그리고 타이포그래피에 관한 사항이 정말 많이 보여요. ‘커닝을 좀 더 해야 하는데’, ‘글꼴은 다른걸 써야 하는데’ 같은 거요. 하지만 아무래도 디자인을 전공했기 때문에 현장의 촬영 전공자들보다 부족한게 사실이에요. 그만큼 더 노력하고 공부해야죠. 매 촬영 때 마다 정말 많이 배우고 있어요. 특히나 조명, 아트, 특수효과, 연출에서 많이 배우죠.

지금 가지고 있는 꿈이 있나요?
촬영 감독은 좋지만, tvCF만 촬영하는 감독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요즘은 tvCF외에도 퀄리티 높은 영상들이 유튜브나 웹상에 많이 릴리즈 되고, 사람들에게 쉽게 노출되고 기억되고 하니까요. 꼭 공중파를 타는 것이 정답은 아닌 것 같아요. 바이럴 영상 시장도 매우 크고요. 그리고 촬영도 너무 재밌지만, 후반 작업 중에 컬러 그레이딩에도 관심이 있어요. 두 개를 같이 하고 싶어요. 말하자면 비주얼 이펙트도 할 수 있는 촬영 감독이랄까요? 어떤 포지션이라고 딱 말하기는 힘든 것 같아요. 롤 모델이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말이죠. 시간적 네러티브가 들어간 영상도 좋아해서 영화 촬영감독에도 관심이 있어요. 아무튼, 어떤 일을 하던 계속 영상이라는 분야 안에 있을 것 같아요.

디자이너가 아닌 다른 일을 하려고 하는, 혹은 진로에 고민이 많은 후배에게 조언 부탁해요.
저는 한번도 디자이너가 되어 있는 저를 상상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리고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적도 없었어요. 시각디자인과를 6년이나 다녀 놓고 하는 얘기라기엔 이상한 것 같지만, 디자인적 사고와 시선을 가지고 촬영을 하는 건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참 애매한 것 같아요, 디자이너라는 말이. 결국엔 그냥 좋아하는 걸 하면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저에게도 많은 선택지가 있었어요. 사진을 더 배울 수도 있고, 영상 안에서도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었고요. 하지만 직업으로는, 좋아하는 것 보단 잘하는 걸 먼저 고려해서 선택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저도 사진을 좋아하지만, 영상을 좀 더 잘해서 이쪽으로 온 것 처럼요. 혹시 고학년인데도 자신이 잘 하는 게 뭔지 아직 모른다면, 잠시 학교를 쉬고 관련된 직군의 학원이나 학교를 가거나 일단 실무를 시작해봐야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일을 직업으로 꾸준히 할 수 있는지, 적성에 맞는지, 남들보다 잘 할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결국 그 시간을 보낸 후 스스로만이 내릴 수 있으니까요.

2018년 6월 10일 tailorcoffee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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