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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미


덕성여자대학교 실내디자인전공 졸업 ’04
보이스 연출가
성균관대학교, 용인대학교, 홍익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의 중



선생님 안녕하세요. 지난 1학기에 이어서 선생님의 발성 수업을 수강하고 있는 데요. 수업을 듣다가 이렇게 인터뷰하는 사이로 만나니 다소 어색하네요. 먼저 자기소개 부탁해요.
안녕하세요. 저는 보이스 연출을 하는 류미에요. 지금은 가르치는 일 반, 연극·뮤지컬 연출 작업 일 반 이렇게 일하고 있어요.

미술은 언제부터 시작했어요?
중3 때 시작했어요. 사촌 오빠가 홍대 미대 출신인데, 화실에 놀러 갔다가 재미있어 보여서 시작했죠. 그리고 곧잘 했어요. 사촌 오빠는 저에게 회화하라고 했는데, 그때는 마치 속물처럼 ‘회화는 돈을 못 벌잖아'라고 하면서 디자인을 하게 됐죠. 특차로 합격했는데, 원래는 다른 학교를 목표로 해서 주변에서는 재수를 권했어요. 하지만 더는 입시를 하기 싫었고 합격한 덕성여대에 바로 입학했어요. 거슬러보니 유치원도 미술학원이었고, 사촌 동생도 미대를 다녀서 그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어떤 전공을 했나요?
실내, 섬유, 시각디자인을 학부로 뽑았어요. 조명하고 가구 디자인 이런 걸 좋아해서였는지 실내디자인으로 전공을 선택했어요. 그리고 서양화과와 시각디자인과를 부전공했고요.

부전공을 두개나 하셨네요. 학교를 열심히 다닌 학생이었나 봐요. 어떤 학생이었나요?
학교 성적은 뛰어나지도 않고 못하지도 않는 중상위 권이었어요. 1학년 때는 기본 실기 수업을 해서 정말 재미있었고, 2학년 때 수업도 나쁘지 않았어요. 그때 개념에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걸 어떻게 잘 구현해주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게 잘 안 맞았어요. 작가가 하고 싶었죠. 그래서 3학년 2학기부터는 서양화과 수업을 위주로 들었어요. 4학년 때는 졸전 수업 빼고는 다 서양화과 수업만 들었고요. 그리고 과 활동보다는 연극동아리 활동을 더 열심히 했어요.

이제서야 선생님이 발성 수업하시게 된 실마리가 잡히는 것 같은데요. 연극 동아리 활동 얘기 좀 해주세요.
1학년 때부터 많이, 열심히 했어요. 과 친구들보다 동아리 친구들과 더 친할 정도였죠. 연출도 하고 배우도 했고, 무대디자인도 잠깐 했어요. 무대디자인은 제 길이 아니라 포기했지만요. 그때는 여름방학에 연습해서 9월에 공연하고, 겨울방학에 연습해서 3월에 공연하고, 5월에 워크숍 발표를 해서 총 3번의 활동을 매년 했어요. 단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매해 참여했죠. 그때만 해도 열심히 하려고 한 게 아니고, ‘방학이니까 이런 활동이라도 해야지’라는 느낌으로 했던 거였어요. 회장도 맡아서 했었고요.

졸업 전시는 어떤 작업을 했어요?
연극에 관심이 많아서였는지, 마로니에 공원을 극장 개념과 결합해 리모델링하는 작업을 했어요. 기존 실내디자인과 작업과는 많이 달랐어요. 반 원형의 극장을 모티프로 해서, 공원에 높낮이를 줘서 내려간 부분에서 공연할 수 있게 하고, 깊이가 얕은 곳에서는 1인 공연을 하고 깊은 곳에서는 조금 큰 공연을 하는 형태였죠. 공원에서 연극이 어떤 흐름을 갖고 보여줘야 할지를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그 작업보다는 서양화과의 마지막 발표 작품이 더 기억에 남아요. <말을 먹다.>라고, 1.5m 높이로 설탕 바른 알파벳 모양의 비스킷을 쌓은 작업이에요. 학교 앞 공터에 쌓아서 개미가 먹어 없어지도록 만들었어요. 일종의 개념미술인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현대사회에서는 잘할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으로 인해서 내 말이 먹히고 없어진다’는 걸 표현하려고 했죠.

상상만 해도 스케일이 엄청난 작업이네요. 지금 보니 1학년 때부터 디자이너가 될 거라는 생각은 안 하신 것 같은데, 졸업 즈음했던 고민은 어떤 거였어요?
휴학을 두 번 했는데 한 번은 여행하던 중에 르브루박물관에 갔어요. 몇 작품을 빼고는 흥미가 없더라고요. 오페라를 본 것과 퀴어퍼레이드를 경험한 게 더 재미있고 기억에 남았어요. 그때 그림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확신하게 됐죠. 그래서 더 하려던 여행일정을 접고 바로 한국으로 돌아와 밀양으로 갔어요. 당시 연희단이라는 연극 극단에서 축제 때문에 자원봉사자를 모집했거든요. 거기에서 한 달 동안 지냈어요. 그때는 연극을 하고 뮤지컬 이런 게 너무 좋았어요. 자퇴하고 관련된 과를 갈까 했는데 주변에서 졸업은 하는 게 좋을 거라는 조언도 많이 들었고, 부모님에게 미안해서 학교는 졸업은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졸업 후 연극 쪽으로 유학을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졸업 이후에는 어떤 일을 했나요?
대학로에서 두 작품 정도 조연출 일을 했어요. 하지만 제 성에 차지 않았고, 일단 어학연수를 가려고 생각하던 중에 호주의 직업훈련과정 뮤지컬 학과에서 처음으로 외국인을 뽑는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시험을 봤고 합격해서 일 년 간 호주에서 생활했어요. 연기도 좀 배웠는데, 연기는 아닌 것 같아서 그만두려고 했고 영어 선생님을 해볼까 싶었어요. 그래서 캐나다로 건너가서 테솔 공부를 했죠. 하지만 막상 다른 걸 해보니 제가 보이스나 노래를 정말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영국으로 가서 Voice studies라는 과정을 배웠어요. 배우에게 발성과 화술 관련 부분을 가르치는 사람을 양성하는 과정이었죠. 학교가 오로지 영화, 뮤지컬, 연극만을 위한 드라마스쿨 이었는데, 그래서인지 그 특유의 에너지가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1년 반 정도 다니며 석사를 땄고, 또 1년 반은 영국 여러 곳에서 활동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너무 즐거웠는데 막상 한국에 오니까 또 너무 좋더라고요. 아마 인식을 하진 못했지만, 힘이 들었나 봐요.

한국에 와서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2011년 말에 한국에 왔는데, 우연히 어떤 분에게 소개를 받아서 한 극단에서 보이스 코치를 하게 됐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테스트 같은 거였나 봐요. 그때 제 모습을 좋게 봐주시고는 국립극단에서 젊은 배우들의 발성을 가르치게 됐어요. 그 후에 음성 치료쪽에 관심이 더 많이 생겨서 이화여대에서 언어병리학 석사를 병행했어요. 공부해보니, 의료 쪽에 계시는 분들과는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운 부분이 좀 있더라고요. 음성 치료 공부는 재미있었지만, 병원에서 일하는 게 저랑 잘 안 맞고 넥타이를 목 끝까지 조인 느낌이었죠. 그래서 수료만 하고 논문은 내지 않은 상태예요. 그리고 좋은 기회로 2014년부터 강의가 들어와서 대학과 대학원에서 강의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용인대에서 시작했고, 지금은 홍익대 초빙교수, 성균관대는 겸임교수로 있어요. 성대 연기예술학과, 용인대 연기전공, 한예종 연기과, 홍익대 공연예술융합전공 수업을 하고 있어요. 호흡, 발성, 화술, 연기에 대한 수업을 주로하고 이번 학기부터는 처음으로 장면 만들기라고 연출과 관련된 수업도 진행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상태예요.

보이스 연출이라는 말이 생소한데요. 어떤 걸 다루는 일인가요? 실용음악과는 다른가요?
공연마다 다른데, 큰 프로덕션에 주로 있는 일이에요. 배우를 캐스팅할 때부터 그 역할에 어울리는 목소리를 가진 배우를 찾고, 안되면 신이 진행되면서 상황에 맞게 목소리 톤을 잡아주고 도와주죠. 그리고 혹시나 목소리에 문제가 생기면 배우와 함께 고민하면서 그 문제를 다뤄요. 그리고 새로운 목소리를 내고 싶어하는 배우가 있으면 함께 고민하고 도와주는 역할을 해요. 한국에는 생소한 일이라서, 지금은 연기 지도와 관련된 일도 많이 하고 있어요. 발성과 실용음악의 노래가 노래를 하는 거라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조금 달라요. 물론 기본적으로 해부학적인 좋은 발성은 똑같지만 활용하는 방식이 달라요. 실용음악은 개인의 색깔을 우선시해서 노래해요. 발성과는 별개로요. 반면 발성에서는 사람들에게 내용을 잘 전달하고, 인물을 잘 전달하는 방법을 다뤄요.

전공과 다른 일을 해서 힘들지는 않나요?
유학을 다녀와서 힘들었던 건, 제가 연극 관련 쪽을 전공한 게 아니니까, 인프라가 없는 거예요. 아는 선후배가 없으니까 완전에 맨땅에 헤딩하듯이 직접 해나가야 했어요. 필드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학부에서 만든 인연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거에 대한 아쉬움이 좀 있어요. 국립극단과 인연이 닿은 게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디자인을 전공한 것이 어떤 도움이 되나요?
없는 것 같은데, 이런 건 있는 것 같아요. 무대 디자인을 직접 하진 않아도, 연출할 때 문의 높이나 찬장 높이, 공간에 대한 고민을 더 하게 되고 공간에 대한 감각이 좀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시각디자인도 배워서 색깔에 관련된 걸 볼 때도 분명 영향이 있죠. 어떤 것을 디자인한다고 했을 때 개념을 잡고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콘셉트를 어떻게 가져가고 발전시킬까를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 연출가가 하는 일이 많기도 해서, 이미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기도 하고요.

일과가 궁금해요.
요즘은 월, 화, 수, 목, 금, 금, 금의 삶이에요. 월요일부터 목요일은 강의해요 특히 월요일, 화요일은 아침 9시부터 5, 6시까지 수업이 있어서 집에 가면 방전되기 마련이죠. 그리고 다음 주에 공연이 올라가서, 요즘 금, 토, 일은 공연 연습 및 관련 일에 매진해요. 얼마 안 남아서 수업이 있는 날에도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연습을 하기도 하고요. 집에 가면 11시이고, 무대 구상하고, 다른 공연 관련 제반 사항 점검하고 하면 1시고, 강의 관련 내용 준비하다 보면 또 2, 3시가 되요. 아침 7시, 8시에 일어나니까 하루에 4, 5시간정도 자네요. 12개 월중 10개월은 이렇게 지내고 보통 방학 시작하고 있는 1개월씩 2개월은 조금은 덜 타이트하게 지내요.

정말 바쁘게 지내시네요. 방금 말씀하신 곧 있을 공연 소개 좀 해주세요.
제목은 <할머니>고, 수원에 사시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위안부피해자 할머니와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만든 음악극이에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생물선생님이 위안부 할머니의 배에 있는 낙서와 칼자국이 그려진 표지의 타임지를 가져오셨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 그걸 보고 언젠가 그것과 관련된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었죠. 기존에 위안부 피해 관련 콘텐츠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픽션이 많았는데, 저는 인터뷰한 내용을 기반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할머니의 일상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경기문화재단에서 지원을 받은 작업이고, 10월 12, 13일에 수원에서 공연해요. 잘 돼서 내년에도 공연하면 정말 좋겠네요.

지금 가지고 있는 계획이 있나요? 선생님의 꿈은 무엇인가요?
<할머니> 공연이 끝나면 금, 토는 서울문화재단에서 일반인을 위한 예술프로그램을 진행해요. 자기 목소리에 대해 알고, 탐구할 수 있는 시간을 함께 가질 거에요. 이번 겨울에는 내년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의 연출 단에서 관련 행사를 준비할 예정이고요. 그리고 얼마 전에 굿을 봤는데요. 그분이 장군을 모시려고 하는 이유가 자신의 안위나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고, 오신 분들이 탈 없이 살고, 남은 일이 다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좋아하는 걸 해도 취미로 할 때는 좋지만, 직접 그 분야에 와서 살게 되면 많이 팍팍하거든요. 그러다 보면 일을 하는 목적도 잊게 되고, 사람들과 싸우면서 왜 이걸 해야 하는 지도 잊게 돼요. 그분의 말을 듣고 연극으로 나를 표현하는 것만이 아니고, 보러 온 관객이 자기 고민을 털기도 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자기의 것으로 가져가기도 할 수 있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지키는 게 지금의 꿈이에요.

다른 진로를 생각하는 후배들에게 조언 부탁해요.
돌아보면, 제가 열심히 하고 있다고 느끼지 못할 때가 오히려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냥 하는 건데, 남들은 저보고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몰두해야 한다는 생각을 안 할 때 더 몰두한 것 같아요. 그리고 학생들한테 가끔 ‘하고 싶은 걸 찾아서 해라’라고 말하는데, 저는 하고 싶은 게 뭘지 생각한 적 없이 그냥 했어요. 해봤는데 좋으면 계속했고, 해봤는데 아니면 다른 걸 했어요. 요즘 안타까운 건, 학생들이 결정하기까지 고민하는 시간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해보지 않으면 모르거든요? 오늘도 인터뷰를 하다 보니 제가 정말 산만하다고 느꼈어요. 근데 아직도 저는 계속 길을 찾아가면서 사는 것 같아요. 어떨 때는 살고 있으니까 또 다른 길이 생기고, 그 길이 열리기도 하고, 내 길인 줄 알고 갔는데 닫히기도 하고, 그러면 또 다른 길을 가고요. 어떤 사람은 꿈을 정해놓고 그걸 향해서 가기도 하고, 목적을 이루거나, 도달하거나, 한 분야에서 훌륭한 어떤 업적을 이룬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건 어쩌면 1% 정도의 사람이 아닐까요? 대부분은 계속해서 각자의 길을 가는 중인 것 같아요.

2018년 10월 1일 홍익대학교 대학로캠퍼스 6연습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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