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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희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회화과 졸업 ’07
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arts décoratifs. 애니메이션전공 석사졸업 ’12
현재 프리랜서 애니메이션 작가 http://jeongdahee.com



안녕하세요. 홍지숙 님의 소개로 이렇게 뵙게 되었네요. 선배님이 친한 동기들에게 물어봤는데, 정다희님이 ‘난 디자이너 아니야.’ 라고 말씀하셨다고요. 그럼 먼저 자기소개 부탁해요.
저는 정다희라고 합니다. 2007년에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했고, 그 후 광고 회사에서 일하다가 프랑스에 유학을 다녀왔어요. 직업은 애니메이션 작가예요.

반가워요. 처음에 미술은 언제 시작했어요?
엄마가 말씀하시길, 어렸을 때 필요하거나 갖고 싶은 게 있으면 그림으로 그려서 보여줬다고 해요. 한 5살 때부터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자연스레 예고를 갔고 미대에 진학하게 됐어요. 회화과를 가고 싶었는데 그해에 경쟁률이 너무 세서, 그다음으로 가고 싶었던 디자인 과에 지원해 입학하게 되었어요.

대학생 정다희는 어떤 학생이었나요?
실사 영화랑 애니메이션을 정말 좋아했어요. 그래서 수업도 영상 위주로 들었어요. 2학년 때 애니메이션을 처음 만들어 보고 나서는 모든 영상 수업 과제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갔어요. 애니메이션 동작이랑 사운드 디자인을 배우러 세종 캠퍼스 수업도 들었어요. 우리 과에서는 애니메이션을 자세히 배울 수 없어서 궁금했거든요. 통학이 힘들기는 했지만, 그때 들은 수업들이 도움이 됐어요. 회화과를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2학년 때부터는 회화과 부전공을 하고, 나중에 복수전공으로 바꿨어요. 좋아하는 드로잉 선생님이 있었는데, 선에도 감정이 있다는 걸 처음 배웠죠. 그걸 익히기 위해서 혼자서 반복해서 많이 그렸던 기억이 나네요.

대학생 때부터 확고한 영상 인이었네요. 졸업전시 작업은 어떤 걸 했어요?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어요. 연필로 그리고 컴퓨터로 채색한 8분짜리 단편이었어요. 어떤 사람이 신발 한 짝을 잃어버려서 그걸 찾으러 갔다가, 이상한 공간들 속으로 들어가 모험을 하는 이야기에요. 몸의 등이 붙어 항상 함께 다니는 두 사람, 옆구리가 붙은 두 사람, 겉모습을 다 가리고 온갖 물건들을 그 속에 갖고 있다가 사람들한테 주는 사람 등 여러 인물을 만나면서 죽을 고비도 넘기고 하는데, 결국 신발은 찾지 못해요. 결핍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결핍된 걸 꼭 찾지 않아도 괜찮다, 다른 방법으로도 살 수 있다.’ 라고요. 당시 저의 역량에 비해 너무 긴 이야기를 써서, 완성하기가 참 힘들었어요.

학부생활 내내 같은 분야로 작업하고 졸업작업까지 완성한 걸 보면 부럽기도 하고 멋있기도 하네요. 그럼 졸업 이후에는 어떤 일을 했나요?
졸업하고 바로 광고 애니메이션 회사에 취직했어요. 1년 동안 일하면서 선배들한테 애니메이션 기술을 많이 배웠어요. 사내 밴드도 하고, 영상 소모임도 하고 재밌었어요. 그런데 제작 기간이 짧아서 야근이 많더라고요. 아이디어를 구상할 시간도 매우 적었죠. 비슷한 작업 패턴을 반복하게 되고, 창의적인 작업을 하기가 힘들다고 느껴졌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내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되니까, ‘내 일이 내 인생에서 아주 중요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프랑스로 떠났어요. 대학교 때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갔었는데, 프랑스가 제일 좋았거든요. 예술이 사람들 가까이에 있고 그것을 즐기는 문화가 좋았어요.
그렇게 떠나간 프랑스 유학은 어땠어요? 유학 이야기를 들려주세요.처음에 리옹에서 1년 동안 프랑스어를 배웠어요. 그러고 나서 프랑스 전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국립 미술 학교들의 편입 시험을 봤어요. 원래 제가 가고 싶었던 학교의 어학시험에 떨어져서, 먼저 푸아티에에서 에꼴 드 리마쥬(École de l’image)라는 학교에 다녔어요. 그런데 이 학교 교육 과정도 참 좋았어요. 학생마다 각자 자기 주제를 가지고 작업을 하는데, 철학자, 페인터, 설치 미술 작가, 인터렉티브 아트 작가, 사운드 디자이너 등 다양한 선생님들과 1:1로 대화하며 자기 작업을 발전시켰어요. 1년 후 파리 국립 장식 미술 학교(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arts décoratifs)로 편입해서, 애니메이션 전공으로 석사과정을 마쳤어요. 1년은 논문을 쓰고, 1년은 졸업 작품을 만들었어요. 제가 경험한 프랑스 교육은 제가 경험한 한국 교육과 많이 달랐어요. 한국에서는 여러 가지를 동시에 배웠기 때문에, 하나를 깊이 있게 다루기가 어려웠어요. 그런데 프랑스는 내 것 하나를 아주 깊이 파요. 한 작업을 가지고, 이 수업, 저 수업에 다 가져가도 돼요. 그래서 졸업할 즈음에는 각자 자신만의 세계를 갖고 있어요. 저도 그 때부터 연구했던 주제들을 계속 발전시켜서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고 있어요.

석사과정을 마치고부터 애니메이션 작가로 활동을 시작하신 거예요? 어떤 작업들을 했어요?
석사 졸업 작품으로 <나무의 시간>*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프랑스에서 일할지 한국으로 돌아올지 고민하던 중에 비자가 끝나서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CJ 문화재단에서 단편애니메이션 제작지원을 받아 새 작품을 만들게 됐어요. 그때 프랑스 퐁트브로 수도원(Fontevraud Abbey)의 레지던시에서도 한 달간 작업했어요. 그때 만든 작업이 <의자 위의 남자>**인데, 성과가 매우 좋았어요.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되고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았어요. 그 후 <빈방>***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었고, 히로시마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았어요. 저는 영상의 상영 공간에도 관심이 많은데요. <빈방>을 영화관용 버전이랑 갤러리용 버전으로 만들어서, 나중에 현대어린이책미술관에서 전시를 했어요. 그리고 부끄럽지만 한 가지 더 자랑하자면 최근에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 회원이 되어서 아카데미 시상식에 올릴 후보작들에 대해 투표를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정말 대단하네요. 발표하시는 작업마다 대상을 타시다니요. 애니메이션 작업 기간이 꽤 긴 것 같은데 어떤 과정으로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나요?
먼저 저는 이야기를 2~3년 정도 써요. 살면서 생각나는 아이디어들을 작은 노트에 적고, 스케치도 하고, 책도 보고, 오랫동안 여러 방면으로 연구하다 보면, 어느 순간 ‘아, 이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제작 지원을 신청해요. 기획 의도, 시놉시스, 시나리오를 쓰고 스토리보드, 캐릭터, 배경을 그려서 신청 서류를 내요. 면접을 보고, 최종 선정이 되면 그때부터 제작에 들어가죠. 저는 보통 연필과 목탄으로 그리고 컴퓨터로 채색해요. 하루에 2초 정도 작업해서, 한 달에 1분을 만들어요. 영상이 완성되면 사운드 감독님이랑 사운드 작업하고, 음악 감독님이 음악도 만들어 주고, 마지막에 최종 편집을 해서 영화제에 배급하기 위한 형태로 제작해요. 그 후에 영화제 상영, TV 방영 등 배급료가 발생하고, 수상하면 상금을 받죠. 이전 작품 수입으로 다음 작업을 준비하고 진행해요. 외국의 경우 감독과 프로듀서가 나뉘어 있는데, 우리나라는 시장이 작아서, 감독이 프로듀서를 같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저도 그렇고요.

애니메이션 작가의 매력은 무엇이고,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저한테는 여행을 많이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에요. 세계 일주를 하고 싶거든요. 제가 만든 애니메이션이 해외 영화제에서 상영되면, 저도 따라가요. 그리고 해외 애니메이션 레지던시에서 여러 나라 감독들이랑 한 두 달씩 같이 살면서 작업하기도 해요. 그게 정말 재밌었어요. 어려운 점은 거의 혼자서 작업을 하다 보니, 작업하는 1~2년 동안 이게 뭐가 될지 모르는 채 혼자서 작품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완성을 해내야 한다는 거에요. 고독한 시기에요. 굉장히 고독한 시기와 아주 많은 사람을 만나며 여러 영화제에 가서 노는 시기가 다 있어요.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지금은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을 하는 다른 두 감독님과 같이 작업실을 쓰고 있어요. 애니메이션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라,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체력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마라톤 같은 일이에요. 아침 10시쯤 와서 일정 시간 동안 작업을 해요. 저녁에 약속이 있으면 친구를 만나고, 아니면 요가를 해요. 그리고 일찍 자요. 그 외 한가한 시간에는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책 모임, 영화 모임 하고. 6월에는 제작지원 심사가 있어서 마감해야 했는데 그때는 하루에 12시간씩 일했어요. 지금은 새로운 작업을 하고 있어요. 지난가을에 프랑스 퐁트브로 수도원 레지던시와 캐나다 몬트리올 시네마테크 레지던시에서 두 달간 작업했어요.

그럼 이쯤에서, ‘난 디자이너 아니야'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궁금한데요. 어떤 이유에서 디자이너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나요?
시각디자인 전공에서 배운 게 제 작업에 큰 도움이 된 건 사실이에요. 애니메이션을 처음으로 접할 수 있게 해줬고, 학교에서 배운 다양한 공부가 제 작업의 풍부한 밑바탕이 되었죠. 사진 수업에서 조명에 대해 배운 게 그림에서 조명을 다룰 때, 타이포그래피는 영상에 들어갈 글자를 다룰 때 도움이 됐죠. 그래서 포스터 디자인도 직접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상하게 저는 학교 다닐 때부터 한 번도 제가 디자이너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지금은 디자인이 뭔지도 잘 모르겠네요.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디자인은 멋짓이다'라고 하셨었는데, 저는 ‘멋짓’을 하고 싶은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잘하지도 못하고요. 저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고, 그걸 영상으로 표현하고 싶은 사람인 것 같아요.

지금 가지고 있는 꿈이 있나요?
사람들 마음속에 오랫동안 살아 있는 좋은 이야기를 쓰는 게 꿈이에요. 그게 글이 될 수도 있고 실사 영화가 될 수도 있어요. 애니메이션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지금 제 주위에도 디자인 과를 전공하고 애니메이션을 하려는 친구들이 꽤 있어요. 이 친구들에게, 또 디자이너가 아닌 다른 직업을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조언 부탁해요.
애니메이션 작가가 되려는 후배들에게는, 자기 작업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단편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는 영화제들에 가서 애니메이션을 많이 보고, 지금 활동하는 작가들도 많이 만나고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서울애니메이션센터나 한국콘텐츠진흥원 등 단편 애니메이션 제작 지원을 해주는 곳에서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참고하면 좋겠어요. 다른 직업을 고민하는 친구들에게는, 할까 말까 망설이기보다 일단 시도해보면서 다양한 경험들을 해보길 추천해요. 그리고 자기가 꼭 무엇을 하고 싶은지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 나무의 시간 The Hours of Tree (Le Temps de l'Arbre)   보러가기
2012 | 8mins 20secs

** 의자 위의 남자 Man on the Chair  트레일러
2014 | 6mins 55secs

*** 빈방 The Empty  트레일러
2016 | 9mins 27secs


2018년 7월 4일 그녀의 작업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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