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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숙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전공 졸업 ’07
前 문학동네, 북하우스 북디자이너
여우책방 협동조합 부이사장
경기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인터뷰 당시, 현재 임기 만료)



안녕하세요. 홍지숙 선배님. 저희 교수님이 동기인 선배님을 소개해 주셨어요. 페이스북으로 무작정 연락드렸는데,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반가워요. 먼저 자기소개 부탁해요.
네. 안녕하세요. 저는 홍지숙입니다.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전공 01학번으로 입학, 회화과를 복수 전공했고 2007년에 졸업했어요.

오늘 만나고 있는 이곳은 홍지숙님이 운영하는 책방이죠? 정치인이라는 직업으로 생각하고 연락을 드렸는데, 이렇게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조금 놀랐어요. 요즘 어떤 일을 하며 지내시나요?
오늘 만나고 있는 이곳은 여우책방이고 저는 5명의 조합원 중 한 명이에요. 이 공간은 낮에는 서점 여우책방, 밤에는 막걸리집 별주막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그리고 녹색당의 당원이고 지금은 경기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으로 있답니다.

제가 연락을 드렸을 때, 과거에 디자인 과를 나와서 어떤 일을 할지 많은 고민을 하셨다고 말씀해주셨는 데요. 디자인과는 어떻게 해서 들어오게 되셨나요?
꿈을 찾아 헤매던 고등학교 시절에 한 CF 감독님을 다큐멘터리를 통해 알게 됐어요. 당시 굉장히 센세이셔널한 광고를 찍던 분이셨는데, 그분이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를 나온 걸 다큐멘터리를 통해 알게 됐죠. 그래서 저도 CF 감독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그분을 따라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를 지원했어요. 근데 막상 대학 들어갈 때가 되니까 광고가 사람들에게 ‘당신의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이 제품을 사세요.’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하고 싶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이야기를 하는 영상인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입학해서 바로 영상소모임에 들어가 영상을 공부했어요. 3학년 때까지 영상 수업만 열심히 듣고 다른 수업은 과제를 잘 안 하고 거의 출석만 하고요. 그런데 영상을 계속하다 보니 제 작업이 텅 빈 껍데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당시 묵직한 메시지를 주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작업이 마음에 안 드니까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어요.

그러면 그때부터 디자인과 안 맞는다고 생각하신 건가요? 회화과 복수전공은 언제부터 하신 거예요?
흑역사라고 할 수 있는데, 원래 4학년을 앞두고 휴학을 하려 했어요. 근데 휴학계를 내야 할 마감일을 놓친 거예요. 손 쓸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당시 학과장님이 힘을 많이 써주셔서 전공만 10학점 정도 들을 수 있었어요. 그때가 4월 중순이라 이미 수업 분위기도 형성되고 팀 작업은 팀도 다 짜인 상황이어서 중간에 시작하려니까 많이 힘들었어요. 바보 같은 실수를 했다는 생각에 창피했고요. 이런 상태로 대학생활을 끝내고 싶지는 않았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회화과 수업을 듣고 싶었는데, 재밌게도 부전공은 학점제한이 있고 복수전공은 학점제한이 없더라고요. 그렇게 4학년 2학기에 회화과 복수전공을 시작했어요. 휴학 없이 온전히 6년 동안 학교에 다니게 됐죠. 그때도 디자이너는 안 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라 회화과 수업을 통해 제 알맹이를 채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알맹이를 채우면 매체는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될 거로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6학년이 되어 두 전공의 졸업 전시를 같이하게 되었어요.

졸업 전시는 어떤 작업을 하셨어요?
회화과에서 바느질로 작업하고 있어서, 시각디자인과 졸업전시도 그 연장선으로 실드로잉을 했어요. 실밥이 터져 나온듯한 느낌을 살려서 놀이터에서 노는 어린이들을 표현했죠. 원래 드로잉한 것 그대로 전시하려고 했는데, 당시 지도교수님이 디자인에서는 그림이 어떻게 사용되는지가 중요하다고 하셔서, 티셔츠에 실드로잉을 해 전시했어요. 돌이켜보면 그 작업을 졸업전시에 걸었던 것 자체가 저에게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고, 제 수준을 받아들이자는 움직임이었어요. 전혀 마음에 드는 작업이 아니었거든요.

대학 생활을 6년 동안 하다 보니, 사회로 나가면서 하신 고민도 다른 분들에 비해 더 치열했을 것 같아요. 북디자이너로 첫 근무를 하셨다고 들었는데, 출판사는 어떻게 들어가게 되신 건가요?
4학년 무렵에 다니던 교회에서 소식지를 디자인하게 됐어요. 책과 좀 더 친해지고 싶어서 일부러 편집장을 맡았죠. 소식지를 만들기 위해서 매주 목요일마다 밤을 새워야 했어요. 힘들었지만 완성된 소식지를 받아들었을 때의 황홀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이런 일련의 활동들과 책에 대한 로망 때문인지, 대학을 마치고 직장에 간다면 그것은 출판사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문학동네와 어떤 작은 출판사, 두 곳에 원서를 냈어요. 작은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이 왔는데, “홍지숙 씨의 포트폴리오로는 출판사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하기 힘들 것 같네요”라고 하더라고요. 상심이 컸고 자괴감에 빠졌어요. 그런데 며칠 뒤, 합격자 발표일이 지난 후인데 문학 동네에서 연락이 와서 합격했다고 하는 거예요. 연락이 늦은 이유를 알고 보니 저를 채용하기 위해 없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더라고요. 제 감수성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어요.

상심한 후라 합격의 기쁨이 더욱 컸을 것 같은데요. 문학동네에서의 직장 생활 이야기가 궁금해요.
뭐랄까요. 저는 한국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재상은 확실히 아닌 것 같아요. 직장에서도 크고 작은 규칙을 잘 어기고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꾸 튀는 행동을 했어요. 이를테면 편집자가 작업물의 기한을 정해주면 “일단 그려봐야 기한을 맞출 수 있을지 알겠다”라고 답하곤 했죠. 그렇잖아요. 그려보지 않고 어떻게 확답을 해요. 그래도 정말 다행인 건 동료들이 이런 제 행동을 잘하고 싶어서 하는 거라고 이해해주고 작업물의 완성도를 알아봐 주었다는 거예요. 마감 시간을 못 지키긴 했지만 저는 정말 열과 성을 다해서 일했거든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약속 시각에 맞춰 끝내는 훈련을 많이 했죠. 돌이켜보면 좋은 동료들을 많이 만난 덕이에요. 당시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저를 특히 아끼고 살펴주는 팀장님도 계셨어요. 매일 끝나고 한 시간 동안 붙잡아두시고, 밤늦게까지 저 앉혀두고 이야기하시고 그랬어요. 그렇게 문학동네에서, 또 거기서 독립한 북하우스에서 총 4년을 일했어요.

그래도 그쯤이면 회사에 적응도 하시고, 안정적이었을 텐데 퇴사를 결심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편집디자인에 매력을 느낀 큰 이유가 소식지가 나왔을 때의 황홀감이었어요. 출판사에서 일하며 책 한 권이 나오면 얼마나 행복할지 기대를 많이 했었죠. 그런데 막상 제가 디자인한 책이 나왔는데 하나도 기쁘지 않은 거예요. 생각해보니 교회에서 소식지를 만들 때는 모든 과정에 참여했는데, 직장에서는 모든 것이 결정되어 제게는 꾸미는 일만 주어지고 있더라고요. 대량생산 컨베이어벨트에서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스스로도 부끄러워 밖으로는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사실 전 작가가 되고 싶었거든요. 글이든, 그림이든, 영상이든 제 작업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어요. 그런 생각 끝에 퇴사 하고 프리랜서 디자인 일을 시작했어요.

퇴사 당시에도 많이 들으셨겠지만, 정말 큰 결심이지 않았을까 싶네요. 지금 선배님의 직업은 크게 녹색당 당원과 여우책방의 주인인 것 같은데요. 먼저 녹색당에서의 활동은 어떻게 시작하셨는지 궁금해요.
2012년에 교회 목사님의 소개로 녹색당을 처음 알게 됐어요. 그 당시 교회를 다녔는데 기독교 신앙의 절실함이 녹색당의 가치에 다 녹아있어서 신기했죠. 제가 사는 과천에 지지하던 무소속 시의원이 있었어요. 그분이 2014년에 과천시장 녹색당 후보로 나온 거예요. 제가 지지하던 후보가 제가 관심이 있던 녹색당으로 나오니 신기했죠. 바로 당원으로 가입하고 선거운동을 돕게 됐어요. 그때 전국 녹색당 당원들을 알게 되고 우리 동네에서 제가 추구하는 가치를 함께 만들어 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 거예요. 지뢰 찾기라는 게임을 해보면 하나씩 열리다가 한꺼번에 열리는 때가 있잖아요. 그 느낌처럼 고민을 함께 나누고 실천할 시민사회를 알게 된 거예요. 신이 났어요. 저는 프리랜서라 시간 사용이 자유롭고, 동네에서 시간 대부분을 보내니 “과천의 녹색당 사무책임자를 해봐라.” 이렇게 된 거예요. 동네에 현안 생기면 연대하러 가고, 현수막 붙이고, 소식지 배포하고, 회의록 예쁘게 만들고 그런 일을 했어요. 그러다가 2016년에는 의왕·과천의 국회의원으로 출마도 했어요.

국회의원 출마도 하셨나요? 대단해요. 어떻게 출마하게 된 거예요?
우리 녹색당이 추구하는 의제들, 이를테면 동물권, 생명권, 정치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 환경 이야기 등 정치에서 뒤편으로 밀려난 것들, 중요하지 않다고 치부되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앞에서 말이라도 하고 싶다는 마음이었고, 우리 의제가 얘기되지 않는 선거판을 상상하기가 싫었어요. 근데 역시 힘들더라고요. 비유하자면 연습이 하나도 안 된 배우가 관객이 정말 많은 무대에, 갑자기 올라가게 된 거예요. 과제를 안 해도 수업은 갈 수 있었지만, 연설해야 하는 날 연설을 안 할 수는 없었거든요. 학교 다닐 때 “더 잘하고 싶어서” 작업하지 못하던 저는, 선거라는 짧은 시간과 무대에서 지금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줘야만 했어요. 어쨌든 사람들 앞에 서야 했고 어쨌든 말해야 했으니까요. 더도 덜도 말고 있는 그대로의 저를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되었어요.

정말 소중한 경험이네요. 그때 국회의원이 되셨다면, 여우 책방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났을 수도 있겠네요? 그럼 이제 여우책방 이야기 좀 해주세요. 책방은 어떻게 열게 되신 거예요?
제 SNS에 동네 책방에 관한 내용을 공유했는데 거기에 이웃 몇 분이 댓글을 다신 거예요. ‘나도 동네 책방 만드는 로망이 있어.’라고요. 그렇게 바로 여기 별주막에 동네 사람 5명이 모여서 이야기를 시작했죠. 책방 견학을 가고, 사업 계획 세우고, 책방 운영 계획을 세워 일사천리로 준비했어요. 그렇게 책이 꽂혀있는 모습인 11월 11일에 오픈을 했어요. 여우 책방을 소개하자면 동네 사람 다섯 명이 만든 협동조합 책방이고 생태여성주의 책을 다뤄요. 생태여성주의라는 말이 생소할 수 있는 데요. “우리가 누리는 풍요가 누군가의 삶을 파괴하거나 괴롭히거나 착취하는 방식의 풍요라면 거부하겠다. 내 풍요를 받치고 있는 아래를 살피겠다.”라는 걸로 저는 이해하고 이야기해요. 그런 관점의 책들과 그 언저리에 우리가 나눠 읽고 싶은 책들을 함께 읽는 곳이에요.

밤에는 막걸리를 마시는 별주막으로 변신한다고 하니, 다음에는 밤에 한번 찾아뵐게요. 그럼 요즘은 책방 운영하시고, 녹색당 일을 하시는 건가요?
일주일에 이틀 반은 책방에 출근하고 나머지 시간은 녹색당 일과 디자인 일을 해요. 프리랜서 디자인 일은 많이 줄였어요. 이제 작가로서의 작업을 조금씩 준비하려고요. 얼마 전에 경기도에서 지원하는 출판제작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첫 책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 원고 작업이 바쁘네요. 그리고 날이 좋으면 밖에 나가 초상화 작가로 활동하고, 경기도 젠더문화네트워크의 단원, 과천시 참여예산위원회 위원, 차차산악회의 총무를 맡고 있어요. 또, 다섯 평 작은 텃밭을 일구는 농부이기도 하고 노래하는 걸 좋아해 친구들끼리 지구밴드를 만들어 활동 중이기도 해요.

와, 정말 많은 일을 하고 계시네요. 하나의 직업으로는 홍지숙 님을 표현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그런 다양한 일을 하는 것에 디자인 과를 전공한 게 영향을 많이 주고 있나요?
정말 유익해요. 디자인을 전공할 때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 항상 배우잖아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무엇으로 보여줘야 할지, 어떤 그릇에 담아야 할 지를요. 학교에서 기술을 많이 안 알려준다고 불평을 많이 했는데, 지금 보니까 생각하는 훈련을 많이 했더라고요. 그리고 좋은 교수님들과 친구들을 만나 시간을 보냈다는 게 평생의 자산인 것 같아요. 현실적인 영향은 제가 외주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것도 디자인 전공이어서죠. 사실 우리는 귀농을 하더라도, 부업으로 디자인할 수 있잖아요.

지금 가지고 있는 꿈이 있나요?
제가 돈 욕심이 없는데, 독립해서 살아 보니까 제 공간에 대한 욕심이 생겨서 돈을 벌어야겠더라고요. 지금 사는 월셋집의 계약이 2020년 3월인데, 그때까지 전세금 2억을 버는 게 제 꿈이에요. 숲 그림을 팔아서요. 제 별명이 지숲일 정도로 숲 그림을 좋아하거든요. 어쨌든 지금처럼 창작하는 사람으로, 재밌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진짜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는 게 되게 어려웠는데 최근에 알겠더라고요. 무엇을 보내주고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지요. 보내줄 건 디자인 일, 붙잡을 거는 지금 하는 일들이요.

홍지숙 님처럼 디자인 과에서 치열한 고민을 하는 후배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해요.
대학생들의 고민을 봤는데, 제가 학교 다닐 때 고민하던 것과 정말 비슷해서 신기했어요. 존중하고 응원해요. 졸업하고 10년이 훨씬 넘는 동안, 친구들도 저마다 다른 일을 찾아 살아가고 있더라고요. 광고대행사에 다니거나, 휴대전화를 디자인하는 친구도 있고요, 건축가가 되겠다고 건축대학원에 들어가 공부하는 친구, 1초에 10장이나 되는 그림을 그리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친구, 가구 회사를 운영하는 친구, 신발 회사를 운영하는 친구도 있어요. 어떤 친구는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고요, 그림책 작가, 활자를 디자인하는 친구, 포털 회사에서 일하는 친구, 만화가도 있어요. 학창 시절에 한 교수님이 말씀하셨어요 “가장 나름다운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라고요. 또 한 교수님은 “디자인은 멋짓이다, 멋짓은 그것의 고유의 결을 살려 내는 것이다.”라고 하셨어요. 내가 원하는 것, 나와 맞는 게 무엇인지 누가 뭐래도 조바심 갖지 않고 한번 찾아보길 바라요.

2018년 6월 14일 여우책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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