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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코소


세종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시각디자인 전공) 졸업 ’08
1인 일러스트레이션 브랜드 운영, 그림책 준비중
前 카페 주인장 외 현재까지 10여 개의 직업



자기소개 부탁해요.
안녕하세요. 저는 세종대 산업디자인학과를 2008년에 졸업했고요. 오늘의 직업은 폐업을 2일 앞둔 카페의 주인장입니다.  

공간이 정말 좋네요. 일본의 한적한 동네에 있는 카페 같기도 하고 슬로우무비 감성도 느껴지고요. 이런 공간이 이틀 뒤에 사라진다니 아쉬워요. 카페 이야기는 조금 뒤에 하고 먼저, 미술은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어렸을 때 형편상 인형을 가질 수 없어 아이스크림 스푼을 인형 삼아 옷을 입히며 놀았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그걸 보고 ‘미술에 적성이 있다’고 생각하신 거에요. 당시 앙드레김 선생님이 디자이너로 가장 인지도가 있었을 때라 자연스레 꿈이 패션디자이너가 됐고 고등학교 때까지 변하지 않았어요. 부모님이 어렸을 때부터 주변 분들에게 제가 만든 인형 옷을 자랑하시니까 스스로 미술을 잘한다고 생각했고, 학교 미술 시간에도 칭찬을 종종 들었죠. 친구들 앞에서 발표도 하고요. 그런 경험 때문에 저의 미적 감각에 대한 의심이 없었어요. 청소년 때는 새벽 시장을 매주 구경하며 패션 디자이너라는 꿈이 더 확고해졌어요.

그러게요. 예전에는 디자인하면 앙드레김 선생님을 많이 떠올렸죠. 그런데 패션디자인과를 가지 않고 시각디자인과로 오게 된 이유가 궁금하네요.
입시 미술을 고2 때 시작했어요. 소묘와 수채화를 배웠는데, 수채화가 저랑 안 맞아서 못 하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진학할 수 있는 학교가 거의 없는 거예요. 고민하다 시각디자인과에 지원하기로 했어요. 어릴 때, 우연히 도서관에서 웹 색상표를 보고 수많은 색이 6가지 코드로 표현된다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고 그때부터 취미로 홈페이지를 만들며 놀았던 기억이 있어요. 혼자 웹디자인으로 실험도 하고, 책도 보면서 독학으로 여러 기능을 익혔죠.. 그래서 패션디자인과가 아니라면 시각디자인과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어요. 그리고 당시 웹사이트, 플래시 같은 것들이 부흥하던 시기여서 취업이 잘 될 것 같기도 했고요.

웹 디자인에 흥미가 있었다면 시각디자인과도 잘 맞았겠네요. 실제 학교생활은 어떠셨나요? 잘 맞았나요?
1학년 첫 수업 때 교수님이 ‘디자인은 심미성과 실용성을 겸비한 학문이다.’라고 정의하셨죠. 실용성은 아예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이 말이 큰 충격이었어요. 아름다운 게 전부인 줄 알았거든요. 혼란스러웠어요. 고등학생까진 그저 옷을 특이하게 입고, 손톱에 원색 매니큐어를 바르고 다니는 것 정도가 ‘디자인’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시각물에 대한 이해가 없다 보니 과제를 하는 것도 버거웠어요. ‘나’를 주제로 한 과제가 기억에 나요. 다른 친구들은 자신의 사진을 편집한 포스터나 살고 싶은 건축물을 모형으로 제작해 왔는데 저는 앞에 나가 화려하게 치장된 겉옷을 벗는 퍼포먼스를 했어요. 벗어둔 옷가지가 제 내면보다 더 정확한, 패션에 대한 열망 가득한 저 자신이라는 뜻이었죠. 앞에서 보여준 행위 자체가 과제였기 때문에 시각물로 남은 게 없었어요. 그래서인지 교수님과 친구들은 잘못된 과제라고 지적했죠. 저 자신도 당시에는 틀린 거로 생각했어요. 그런 일이 몇 있다 보니 계속 위축됐죠. 밤새 작업한 작업을 지하철 쓰레기통에 버리고 학교에 안 간 일이 있을 정도로요.

학교생활을 힘들게 보내셨네요. 그래도 전공 외에 다른 경험들이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떤 것들이 있나요?
2학년 때는 원래 하고 싶었던 패션디자인과 수업을 열심히 들었어요. 하지만 전공 수업이 아니다 보니 따라가기 힘들었고 고가의 컬렉션 위주 패션디자인은 제가 꿈꾸던 일과 달랐어요. 그렇게 패션디자인의 꿈을 포기했죠. 아, 글을 쓰는 건 좋아했어요. 싸이월드에 글을 꾸준히 올려서 ‘권 작가’라고 부르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지금은 포스팅이라는 것이 아주 일반적이지만 그때는 그런 게 많이 없었거든요. 공원을 산책하며 떠오르는 생각 같은 것을 정리한 글을 ‘공원일기’라는 이름으로 2년 정도 썼어요. 제 개인 일과의 나열이지만 그 속에 공통적인 청춘들의 불안과 희망을 담았죠. 그 외에 국문과 전공 수업을 듣기도 하고 철학아카데미에서 인문학 수업도 듣고 그랬어요. 영화도 좋아해서 영상자료원이나 시네마테크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어떤 글일지 궁금하네요. 그때도 독립 출판이 있었다면 출판을 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럼 권 작가님, 졸업 작품은 어떤 걸 하셨어요?
대다수의 학생은 아이덴티티 디자인, 패키지디자인 2점을 졸업작품으로 제출해야 했어요. 저는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수업 과제를 잘 다듬어 제출하고, 패키지 디자인은 친환경 디자인을 주제로 했어요. 휴학하고 리사이클링 브랜드에서 인턴으로 일했던 영향을 받았죠. 친환경 패키지를 공부하다 보니 패키지가 없는 게 가장 친환경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납득하지 못하면 타협도 없는 성격이라 그 생각에서 더는 나아갈 수 없었죠. 그리고 저는 이미 스스로 디자인과 맞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에 졸업전시에 쓸 큰 비용이 부담스러웠어요. 그래서 모니터 1대만으로도 전시를 할 수 있는 영상을 시작했죠. 졸업전시를 한 달 앞둔 때였어요. 급하게 영상을 만들어야 하는데 다룰 줄 아는 툴이 플래시뿐이더라고요. 플래시로는 영상 편집이 어려워 촬영 대신 그림을 그려 움직이게 했어요. 시나리오가 필요 없는 스테이션 ID를 만들었죠. 그런데 주변 반응이 좋은 거에요. 학교에 다니면서 처음으로 칭찬을 받으니까 뿌듯하고 자부심도 느꼈어요. 좀 더 일찍 영상을 만들어볼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이미 졸업을 앞둔 상황이었죠.

어려운 선택이셨을 것 같은데, 가끔은 그런 선택이 이렇게 예상하지 못하는 결과가 보여주는 게 재미있는 거 같아요. 이제 졸업 후의 이야기를 해볼까요? 졸업하고 어떤 일들을 하셨나요?
어제 졸업 후 지금까지의 제 경험을 기록해봤어요. 꼭 디자인을 주변을 못 떠나고 맴도는 귀신같더라고요. 4학년 2학기에 웹디자인 에이전시로 조기취업 했어요. 적은 월급에, 매일같이 밤을 새웠어요.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죠. 마지막엔 결국 혼자 다른 학교라는 이유로 퇴사를 종용당했어요. 첫 회사를 그만두고 여기저기 단기 일을 했어요. 대학교 메일링 콘텐츠 구축, 미술 실기대회 진행 등 프로젝트 단위로 일을 많이 했죠. 그러다가 친구의 소개로 CI, BI를 만드는 회사에 들어갔어요. 기회를 많이 줘서 유명한 회사의 작업도 많이 했죠. 제 졸전이 그림을 이용한 영상이었잖아요? 그래서 주로 손드로잉, 일러스트 작업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프랜차이즈 매장 유리나 메뉴판에 제 그림이 쓰이는 게 신기하더라고요. 안 좋은 기억도 있어요. 대표님과 외부 미팅에 참석했던 건데 고객사 마케팅팀 대리분께서 저희 대표님께 함부로 말을 하는 거예요. 충격이었어요. ‘디자인에이전시 대표라면 디자인에서의 최고의 자리일 텐데 저렇게 하대를 당하는구나’를 느껴 디자인에 회의적이 됐어요. 그만두고 나서는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했어요.

아, 그래서 이 공간에서 일본 느낌이 많이 났군요. 저도 워킹홀리데이를 갈 생각이라 더욱 궁금한데요. 워킹홀리데이는 어떠셨나요?
일본 워킹홀리데이는 1년에 두 번을 뽑고 경쟁률도 높아요. 상반기에 합격이 안 돼서 또 일자리를 찾았고 대학 내 과학부 실험공모사업에서 잠깐 일했어요. 그러다 워킹 홀리데이를 합격했고, 일본어 수업을 듣던 유학원에서 하루 4시간씩 유학원 홍보물을 만들었어요. 준비금을 모아 일본으로 떠났죠. 일본어가 익숙해질 동안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작은 한국인 회사에 취직했죠. 다양한 한국 물건을 들여와서 일본에 유통하는 곳이었어요. 패키지를 만들기도 하고 직접 판매장에 나가 판촉도 했죠. 새벽 5시부터 9시까지는 편의점에서, 9시부터 오후 7시까지는 회사에서 일을 했어요. 그런데 회사에 취업비자를 약속받고 도쿄에 머물기로 했을 즈음, 애석하게도 도쿄대지진이 일어났어요.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셔서 결국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무사하길 정말 다행이네요. 그럼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어떤 일을 하셨어요?
또 열심히 구직활동을 했어요. 학점 관리를 못 해서 일자리가 쉽게 구해지지는 않더라고요. 그리고 그때 나이가 28살 정도였으니까, 신입으로 들어가기에는 많은 편이었죠. 결국, 대기업 디자인팀의 계약직에 들어가게 됐어요. 부장님이 “너랑 같은 스펙의 친구들과 비교해 기대에 못 미치는 대우를 받을 텐데 괜찮으냐?”라고 물으셨어요. 그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 그러다 우연히 정사원의 반도 안 되는 월급을 받는다는 걸 알았어요. 정직원에 대한 희망을 이용해 일도 많이 시키고, 사내 정치에 저를 이용하는 때도 있었어요. 결국 계약 만료로 퇴사하고 나서 ‘이번엔 디자인을 완전히 버리자’하고 마케팅 쪽으로 일을 알아보다 한 식품 제조기업의 마케팅팀에 입사했어요. 그런데 팀장이 되어 버린 거에요. 다른 팀장은 저를 인정해주지 않는데 팀장회의도 가야하고, 팀 발표도 준비해야 하는 등 일만 많았죠. 그러던 어느 날 소이 캔들을 알게 된 거에요. 그 땐 주로 수입 소이 캔들만 판매되던 때라 꽤 비쌌어요. 그래서 한번 만들어보자고 시장에 갔는데, 재료를 대량으로만 팔더라고요. 남은 재료들로 캔들을 30여 개 만들어 집 근처에서 열리는 플리마켓에 들고나서 판매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은 거에요. 회사 월급보다 많은 돈을 벌게 됐죠. 사업자가 필요해지면서 회사를 그만두고 1인 브랜드를 시작했어요. 소이 캔들 유행이 끝나감에 따라 손자수를 하기도 하고, 간단한 문구류를 만들기 시작했죠. 그러다 망원동에 소품 샵을 차렸어요.

정말 다이나믹하네요. 그럼 그 이후 이 카페를 열게 되신 건가요?
네, 그렇게 소품 샵은 계약 기간을 채운 후 장소를 옮겨 이곳에 카페를 열었어요. 그런데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보이는 시간 외에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더라고요. 처음 시작할 때는 소품샵보다는 카페가 방문객들과 소통도 쉽고 더 좋을 것 같았어요. 하지만 음식은 오히려 평가받기 쉽더라고요. 손님들의 요구에 중립을 지키는 것도 어려웠죠. 같은 음식도 누구는 짜다고 하고, 누구는 싱겁다고 하고, 누구는 많다고 하고, 누구는 적다고 하죠. 제가 만든 소품을 판매할 때는 우선 제 작업이 마음에 드신 분들만 만나니까 다들 친절했죠. 하지만 카페라는 공간은 주인에 대한 호감과 무관하게 선택하잖아요. 저에 대한 점수가 처음부터 없으니까 마이너스점수를 주는 것도 쉬운 거에요. 그런 거에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카페를 접은 후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특별히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낙서수준이었고 누구나 낙서를 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그림과 관련해서는 꽤 운이 좋은 편이라 좋은 기회가 많았어요. 그렇게 올해 좋은 기회로 제 책을 만들게 됐어요. 카페도 올해 안에 출간할 계획이라 급하게 정리하게 된 거에요. 여러 가지 일을 했지만, 노력만큼의 성취감이나 보상을 받았다고 느낀 적이 많이 없었는데, 그림을 그리며 그런 걸 느꼈어요. 늘 제가 선택한 것, 이뤄온 것에 불만이 있었고 조금은 실패했다고도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의 선택과 정반대의 선택을 하기로 했죠. 지금까지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그런 선택을 하는 거에요. 어차피 지금까지의 인생이 실패였다면 밑져야 본전이니까요.

지금 가지고 있는 꿈이 있나요?
올해 첫날 이런 생각을 했어요. ‘10년 전, 25살 때 나의 서른다섯을 상상해 본 적이 있었나?’ 아무것도 상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스물다섯과 똑같은 상태의, 성장하지 못한 저를 마주하게 된 것 같아요. 후회보다도, 앞으로의 십 년 뒤, 마흔다섯을 또렷이 상상하기로 마음먹었죠. 얼마 전에 작가 안자이 미즈마르의 책을 읽었는데,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까지도 그림 작업했다고 쓰여 있더라고요. 저도 죽기 바로 직전까지 일하고 싶어요. 70살까지 그림을 그리자고 생각하는데 사실 자신은 없어요. 생각해보면 제가 하고 싶어 했던 건 아직 세상에 없거나, 제가 모르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아요. 글을 쓰고 싶지만 소설은 아니었고, 옷을 만들고 싶지만 유행을 따르는 옷이나 일상에 먼 컬렉션은 아니었어요. 이것저것 하다 보면 하나 정도는 잘 풀리는 장르가 있지 않을까요?

디자이너가 아닌 다른 진로를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조언 부탁합니다.
저처럼 1인 브랜드를 하는 지인이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보통 사람이 2~3 정도 하는 일을, 내가 5~6 정도 해낼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하고 그 일을 하겠다’고요. 제가 그림을 하려고 했을 때도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겁나서 포기할까 생각도 했어요. 그래도 하기로 마음먹은 건 남들보다 2 정도는 잘할 수 있을 거 같은 거에요. 10을 하려고 하면 즐겁지 않을 거예요. 10을 포기하면서 해방감을 느꼈어요. 또 한가지, 우리가 디자인 업무를 계속해서 하든, 하지 않든 처음 디자인 과를 선택했을 때, 분명 어떤 그룹의 사람들보다 더 빨리 ‘선택’과 ‘결정’을 경험한 거잖아요? 그런 선택을 하게 한 우리의 미적 감수성이나 희망 같은 것들이, 우리를 대체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줄 거에요.

오늘 너무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야기 들으면서 저도 어쩌면 권코소님과 같은 인생을 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미래의 모습을 본 것 같은 묘한 감정이 드네요. 고맙습니다.
저도 오늘 이야기를 하고 나니 디자인에 대해 잘못 이해했던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디자인은 아름답고 가독성이 있고 레이아웃이 멋있는 시각물을 만드는 전공이 아니라, 생각할 거리가 있는 걸 찾아서 프로젝트화 하고 기획해서 결과물로 남기는 걸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아는 전공자들은 모두 ‘프로젝트’가 생활화되어있거든요. 인생을 풍부하게 만드는 많은 질문과 기획들로 새로운 것을 계속 시도하고 변화하면 되지 않을까요. 끝나버린 프로젝트에 안녕, 하고요. 그래서인지 저도 무언가 시작할 때 ‘일단은’을 붙여요. 이름도 언젠가 또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권코소에요.

2018년 5월 28일 그녀가 운영하던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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