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graynk
서울대학교 디자인학부(디자인) 3학년 재학
타투이스트
자기소개 부탁해요.
안녕하세요. 저는 디자인을 공부하며 타투 작업하는 dimgraynk라고 해요.
미술은 어떻게 시작했나요?
중1 때부터 중국에서 학교에 다녔어요. 어쩌다 보니 고등학교를 1년 일찍 졸업하게 됐는데, 입시를 미리 하기가 싫은 거에요. 그래서 다니던 기숙학원을 도망쳐 나와서 있던 돈을 모아 원룸을 빌렸어요. 이사 첫날, 밥을 시켜 먹으려고 본 전단지에서 미술학원 광고를 보고, 바로 학원에 가서 등록했어요. 아무것도 안 하면서 중국에 있을 수는 없으니까, 중국에 남아있을 명분이 필요했거든요. 그러다 칭화대학교 조소과에 합격했고, 1년을 다니다가 자퇴를 했어요.
자퇴는 왜 하신 거에요?
대학교에서 배우는 게 너무 없는 것 같은 거에요. ‘이대로는 졸업해도 남는 건 졸업장밖에 없겠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그 당시에는 배울 자세가 안 되어 있던 것 같아요. 대학교는 스스로 찾아서 공부하는 곳이라는 걸 몰랐던 거죠. 원래는 자퇴가 아니고 디자인 과로 전과를 생각했어요. 지금은 다르게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중국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는 것보다 다른 영어권 국가에서 배우는 게 더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우선 한국으로 돌아왔죠.
디자인에는 관심을 두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중국에 처음 갔을 때, 말이 잘 안 통하다 보니 그림을 그려가며 의사소통을 했어요. 그때 처음 시각언어의 가능성을 경험하게 된 거죠. 특별한 교육 없이도 소통할 수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말로 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으로 의사전달이 가능하다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그렇게 ‘미술’이 아닌 ‘언어’로서 그림을 대하니 자연스럽게 디자인에 관심을 두게 됐죠. 물론 디자인뿐만 아니라 다른 조형활동도 언어로서 작용하지만, 당시엔 그냥 ‘이런 게 디자인이다’라고 생각했어요.
한국에 돌아와서는 어떻게 지냈어요?
바로 군대에 갔어요. 유학을 가려다 보니까 군대가 계속 걸리더라고요. 도중에 가면 감을 잃을 것 같고, 졸업하고 가자니 군대가 발목을 잡을 것 같았어요. 전역하고는 다시 유학을 준비하고 한국 대학교도 준비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마음처럼 잘되지 않더라고요. 25살쯤 됐을 때, ‘디자인하는 데 굳이 대학교에 가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어 학원에서 알게 된 친구들, 소개받은 친구들과 작은 회사를 만들어서 디자인 일을 주먹구구로 시작했어요. 독학으로 디자인툴을 익혔죠. 현대 무용하는 그룹의 웹진도 만들고, 아트디렉팅을 했는데 계속하다 보니까 제 작업의 부족함이 보이더라고요. 클라이언트에게 설명할 논리도 부족하고 예뻐 보이기 위해서 작업을 한다고 할까요. 조금만 지나도 작업이 부끄럽더라고요. 그래서 대학에서 디자인을 더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죠. 그리고 이때부터 한국의 문화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어요. 중국에서 대학생활을 하며 고민하긴 했지만, 본격적인 고민은 이때부터예요. 그렇게 생각하니 한국에서 학교에 다녀야겠더라고요.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 이야기와 입학 후의 이야기가 궁금해요.
입시준비를 하다 보니까 ‘이게 과연 좋은 디자이너가 되는 일에 도움이 되는 걸까?’ 라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입시만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좋은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시간을 고민했어요. 독학하며 강연도 많이 들었죠. 그러다 운 좋게 26살이 되는 해에 16학번으로 입학하게 됐어요. 학교생활은 되게 좋았어요. 배움에 목마름도 있었고, 왜 배워야 하는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도 알았으니까요. 학교에 다니며 좋은 기회도 많이 얻었어요. 올해 4월에는 밀라노 디자인위크에 참가해 전시도 하고, 또 7월에는 베이징에서 발표도 했고요. 주로 독강을 해서 학교에서 항상 혼자 다니는 거 빼고는 다 즐거워요.
타투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전역하고 나서 논현역 근처를 지나가는데, 갑자기 아버지 기일이 궁금해졌어요. 제가 많이 어릴 때 돌아가셨고 아버지 얘기만 나오면 분위기가 무거워져서 기일을 물어보지 못했거든요. 바로 어머니한테 전화로 물어봤어요. 지금까지 잊고 살았던 게 죄송스러운 거에요. 그래서 즉흥적으로 제 몸에 새겨서 평생 기억해야겠다고 결심하고 근처 타투샵에서 손목에 기일을 새겼어요. 그 경험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는지 계속 생각나더라고요. 타투를 받으면 작업을 받는 순간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선명하게 떠오르거든요. 누군가가 오랜 시간 떠올릴 순간을 함께한다는 것도 매력적이고요. 그렇게 관심을 두고 있다가 대학교 합격 통지를 받고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어떻게 준비를 시작했나요?
보통은 타투이스트를 찾아가서 문하생으로 들어가거나 수강을 받는데 저는 유튜브와 외국 서적으로 독학했어요. 그러다가 궁금한 게 생기면 타투이스트에게 무작정 연락해서 찾아가서 배우고요. 제 이름을 걸고 활동을 시작한 건 16년 2월쯤이에요. 처음부터 잘할 수 없으니 사람 몸에 작업할 기회를 얻는 게 힘든데, 다행히 제 그림을 좋아하던 친한 동생이 저를 믿고 작업 모델을 해줘서 무난히 준비할 수 있었어요.
디자인을 전공한 게 타투를 하는 데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브랜딩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데, 타투도 대상만 다를 뿐 브랜딩이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거잖아요. 그래서 구분 짓지 않고 똑같이 생각하고 있어요. 디자인을 전공한 건 대단히 큰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해요. 기술적인 측면뿐 아니라 디자인을 전공하며 좀 더 다각적인 시선을 갖게 되었거든요. 작업을 대하는 태도와 제 삶에도 영향을 끼쳤고요.
디자인과 타투를 어떻게 병행할 생각인가요?
제가 요즘 자주 하고 다니는 말인데, 경제활동은 타투로, 디자인은 하고 싶은 작업 위주로만 하고 싶어요. 꿈같은 얘기지만 경제활동과 디자인을 분리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보수와 상관없이 의미 있고 재미있는 작업만 하는 거죠. 뜻이 있고 의미 있는 일을 하는 분 중에 경제적인 문제로 디자인을 이용하지 못하는 분들도 돕고 싶고요. 여담이지만 전 디자인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거든요. 아니, 디자인이 사회를 만든다고 믿어요. 제가 처음 접한 디자인은 언어의 일종이었지만, 그렇게 언어로서 디자인을 대하다 보니 조금씩 넓은 의미의 디자인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언어는 문화를 만들고 문화는 사회를 형성하니까요. 그래서 디자인은 사회적인 책임이 있어야 하는 행위인 거 같아요. 그래서 더욱더 경제활동과 디자인을 분리하려고 해요. 저는 자본의 유혹을 견딜 자신이 없거든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지금은 타투 인식개선을 위한 책을 만들고 있어요. 간략히 소개하자면 타투를 받은 사람들의 간단한 소개와 함께 타투를 받은 이유 등을 말해주는 내용을 담은 책이에요. 이 책을 통해서 타투가 불량한 사람들의 문화가 아니라 주위 평범한 사람들도 누리는 문화라는 걸 알리고 싶어요. 전시도 함께 계획 중인데 곧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할 예정이에요. 그리고 이번 학기 종강 후에는 캐나다에 있는 타투샵에서 게스트 워크 제의를 받아 토론토로 가요. 방학 동안 머무를 생각인데, 상황을 보고 한 학기 정도 휴학하고 더 있을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졸업 후에는 우선 디자인 회사에 다니며 디자인 실무를 익히고 공부를 더 하거나 창업을 할 거 같아요. 물론 계속 타투를 병행할 생각이고요.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주세요.
저는 디자인을 전공한다고 무조건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디자인은 단순히 조형활동을 전제하는 전문 기술이 아니라, 다각적인 시야를 갖고 문제를 해결하고, 또 개인과 개인 혹은 개인과 사회를 연결해줄 수 있는 매개라고 생각하거든요.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하며 저 또한 제 생각을 다시 정리할 수 있었던 기회가 된 거 같아서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2018년 8월 27일 그의 작업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