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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코* 


무사시노 미술대학 Visual communication design Dept. 졸업 ’87
홍익대학교 교양학부 일본어교수



안녕하세요. 선생님. 선생님 수업을 들었던 후배가 ‘안녕, 디자이너’에 선생님을 소개해 줬어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하루코*라고 해요. 국적은 일본이고요. 1992년부터 한국에 와서 생활하고 있어요. 남편은 한국사람이고 대학생인 아들 2명이 있어요.

요즘은 어떤 일을 하면서 지내시나요?
지금은 홍익대학교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어요. 2015년부터니까 만 3년이 됐네요. 그 전까지는 기업체에서 일본교육을 하고 대학원에서 일본 문학을 공부했어요.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셨는데, 시각디자인은 어떻게 선택하신 건가요?
학창시절에 공부를 진짜 안 했어요. 그래도 미술 성적이 좋아서, 미술로 진학하기로 마음먹었죠. 미술을 한다고 하면 미술 교사를 보통 떠올렸는데, 그건 저와 맞지 않을 것 같았고 경제성을 생각해서 디자인을 선택했어요. 집이 도쿄에서 3시간 정도 떨어진 나가노 현인데 사춘기 때 고민이 많기도 하고 부모님과 다투기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도쿄에 있는 대학을 가서 혼자 살려고 한 이유도 있었어요.

일본은 우리와 대학 입학시스템이 다를 것 같아 궁금한데요. 대학교 준비는 어떻게 하셨나요?
일본은 한국처럼 예술에 특화된 고등학교가 없어요. 그래서 제 학교도 특별한 미술 수업이 따로 없었죠. 학교 내 미술부가 있어 거기에서 활동했는데 수업 끝나고 미술 선생님이 지도해주시곤 했어요. 아, 이건 여담이지만 세계적인 아티스트 쿠사마 야요이(草間彌生) 씨가 제 고등학교 졸업생이에요. 신기하죠?(웃음) 그런데 제가 있던 지역이 시골이어서 미술학원이 없었어요. 그래서 고 3 여름 방학 때에야 처음으로 학원에 다니게 됐죠. 친척 집에 머물며 도쿄에 있는 학원에 다녔는데, 거기에 아톰 작가인 데즈카 오사무(手塚 治虫) 씨가 와서 직접 아톰을 그리는 방법에 대해서 가르쳐주기도 했어요. 학원 선생님에게 시골 출신이라 색감이 떨어지고 디자인 감각이 없다고 지적당해 고생했던 기억이 나네요. 고3 때는 대학교에 다 떨어졌어요. 그래서 재수를 하게 됐고 1년 내내 다시 연필로 소묘하고 포스터컬러로 그림을 그렸어요. 힘들었죠. 1982년에 무사시노 미술대학에 합격했어요.

저도 재수를 해서, 1년내내 학원을 다닌 마음을 알 것만 같네요. 그렇게 입학한 대학교 생활은 어땠나요?
수업은 재미있었어요. 기업체에서 광고 만드시는 분들이 와서 시나리오 뽑고 연습했던 기억도 있고, 학교 안에 인쇄소가 있어서 활자인쇄와 실크스크린을 배우기도 했어요. 사진 수업이 기억에 남는데, 필름을 현상하는 도구를 개인당 한 세트씩 사야 했어요. 그 도구를 방에 설치해 개인 암실을 만들었어요. 집에서 약품 냄새도 나고 그랬지만 재미있었어요. 밖에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 사진을 찍는 것도요. 근데 디자인은 작업할 때 면마다 어떤 색을 할지 정해서 깔끔하게 칠해야 하는데 그게 적응이 잘 안 되더라고요. 저는 소묘같이 그렸다 지웠다 하면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손맛이 좋았어요. 그래서인지 디자인에 흥미를 잃고 옆길로 많이 샜죠.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정말 좋아했는데 그때도 철학, 심리학, 문학책에 푹 빠져서 학교를 잘 안 다녔어요. 그러다 보니 1년을 유급해서 학교를 5년이나 다니게 됐죠. 아, 이때 같이 유급했던 사람 중에 지금 돌아가셨지만, 영화 <파프리카> 감독인 곤 사토시(今 敏) 씨가 있었어요.

요즘은 디자인도 표현이 자유로운데, 그 때는 아무래도 달랐나보네요. 졸업 전시도 궁금해요.
디자인을 안 할 거라고 생각하고 나니 졸업 전시가 정말 고통스러웠어요. 우리 학교는 일러스트레이션, 패키지, 인쇄, 광고 이렇게 나누어 졸업했는데, 일러스트레이션을 선택했어요. 그쪽으로 졸업하는 친구는 거의 취직 활동을 안 했거든요. 졸전 작업을 이야기하자면, 미국 여행에서 본 미국의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이 인상적이어서 그걸 이용해 보기로 했어요. Roy Lichtenstein, Jasper Johns, Andy Warhol 작품을 골라 재해석해서 큰 크기로 회화 식으로 그렸어요. 크기가 사무실 파티션 크기 정도 될 거에요. 꽤 크죠. 그 정도 크기를 색연필로 그렸으니까 작업량이 어마어마했죠. 제가 좋아하는 질감을 살리고 싶었는데 정말 고생 많이 했어요. 그래도 작업량이 많아서인지 교수님이 마음에 들어 하셨어요.

졸업하고는 어떤 일을 했어요?
일러스트레이션을 했지만 특별히 작가가 되고 싶지는 않았고 아직 정확히 하고 싶은 건 없더라고요.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고 싶은 게 뭔지 다시 생각해보자 했죠. 인재 파견 회사에 등록해서 정말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공장에서도 일하고 택배 물류창고에서도 일했죠. 그 외에 방문 설문조사 일도 한 적이 있어요. 집집이 다니면서 두꺼운 설문조사를 받는 일이었는데, 그게 10장도 넘는 설문지라서 다들 귀찮아하거든요. 쉽지 않은 일인데 잘 받아내기도 했고 재밌었어요. 그때부터 제 내성적인 성격이 외향적으로 많이 변했던 것 같아요. 그 후에 교육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회사에도 잠깐 취직해 다녔었어요. 이렇게 다양한 일을 하면서 사람을 접하고 영업 하는 거, 사람들 앞에 서서 교육하고 시스템을 설명하는 걸 떨지 않고 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이런 걸 직업으로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한 5년 정도는 이렇게 여러 일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다양한 책들을 많이 찾아 읽었죠.

단기로 이 곳 저 곳 일하면 적응도 쉽지 않고 체력적으로도 힘드셨을텐데 대단하네요. 다양한 일을 하면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찾는 모습도 멋있어요.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오게 된 거에요?
대학교 때 교류회가 있었는데 그때 한국 학생을 처음 봤어요. 한국의 존재를 처음 알았죠. 그러다 88올림픽 즈음 봄에 한국에 여행 오게 됐는데, 그게 제 인생에서 매우 큰 전환점이었어요. 일단 비행기에서 본 서울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일본은 땅이 검은색인데 한국은 노란 흙색이더라고요. 첫인상의 그 대륙적인 느낌이 신기했어요. 한국은 그 당시만 해도 일본과 산업이나 경제가 30년 정도 차이가 날 정도로 지금과 비교하면 불편한 것도 많았지요. 그런데도 말할 수 없는 매력이 있었어요. 의외였던 건 사람들이 너무 친절한 거에요. 일제 시대의 침략역사 때문에 일본인을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보니 다르더라고요. 일본인과는 다른 특유의 순진함과 밝은 모습이 좋았어요. 음식도 너무 맛있어서 이 나라에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 여행이 계기가 되어 한국을 많이 좋아하게 되고 90년에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92년에 완전히 한국으로 왔어요.

한국에 와서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한국에 왔을 때 한국말을 거의 하지 못하는 상태였어요. 원래라면 어학원을 갔어야 하는 데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서 그러지 못했어요. 만약 경제사정이 좋았으면 좋아하던 공부를 계속했거나 주부가 됐겠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 일을 시작했죠. 그런데 한국에서 일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한정적이더라고요. 소개를 받아서 강남의 어떤 어학원에 취직했는데 그때 고급회화반을 가르치게 됐어요. 거기서 일본어를 가르치면서 한국말 표현을 많이 배웠죠. 그러고 나서 경제 상황 때문에 계속 이사를 했죠. 대전에서도 4~5년 학원 강사를 하고 그다음은 천안으로 왔어요. 천안에는 큰 기업체가 있어서 임직원을 위한 일본어 1:1 과외를 하게 됐어요. 업무 시작 전 30분 정도 집중 수업을 했고 아침, 점심, 저녁 중 두 타임 수업도 하면서 경제적으로 약간 여유가 생겼죠. 그런데 매일 같은 일이 반복되니까 자신에 있어서 발전도 없는 것 같고 일에 대한 흥미도 떨어지더라고요. 마침 그즈음 더 시골 쪽으로 이사를 하게 됐어요.

그 때부터 일본어 강의를 그만두신건가요?
네. 강의 일을 그만뒀어요. 이전에 하던 공부를 계속하려고 대학원에 등록했죠. 일본 문학을 공부했는데, 서울까지 하루에 왕복 3시간 이상 매일 통학했어요. 석사과정만 이수하려고 했는데 하다 보니 공부가 재밌어서 박사까지 마치게 됐죠. 그러다 홍대에 오게 돼서 이렇게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어요. 교수를 목표로 해서 온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까 교수를 하고 있네요. 학생들을 다시 가르치면서 느낀 게 있어요. 제가 일본어를 열렬하게 교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동시에 학생들에게 일본과 일본문화에 접할 좋은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요. 전에 기업에서 가르치던 직원이 일본어 배운 게 계기가 돼서 일본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기도 하고 기계공학을 공부하던 학생이 일본에 취직한 걸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요.

디자인 과를 나온 게 어떻게 영향을 주고 있나요?
문학비평을 공부하며 디자인과 비슷하다고 많이 느꼈어요. 어떤 걸 내 시각으로 보고, 여러 자료를 재구성해서 생각해서 표현해내는 게 결국 같더라고요. 대학 때 디자인을 전공했던 관점이나 시각이 문학비평을 하는 데 도움이 된 거 같아요. 결과물은 다르지만, 그 과정은 매우 비슷하니까요.

그럼 마지막으로 디자이너가 아닌 다른 일을 할까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디자인을 공부한 사람만의 시각이 있을 거예요. 현실을 표상적으로 보거나, 디테일하게 보거나요. 이런 자유로운 시각을 무기로 해서 다양하게 다른 직업도 얼마든지 전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기 진로는 어떤 식으로 돌아가도 잘 되고 있는 거라고 믿으면 돼요.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장래 길로 선택을 안 했다고 해서 난 안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안 했으면 해요. 다른 직업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어요. 문제없죠. 아, 그리고 무사시노미술대학에 마우진 (www.maujin.com                              )이라고 학교를 졸업한 각계 유명인들의 인터뷰를 다루는 콘텐츠가 있는 데요. 이걸 한번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2018년 5월 30일 선생님의 연구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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