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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건국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졸업 ’15
라니앤컴퍼니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 매니저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구글 폼으로 연락해주셔서 이렇게 처음 뵙는 분들은 항상 더욱 반갑네요. 자기소개 부탁해요.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라니앤컴퍼니에서 브랜드 컨설팅을 하는 이야기*예요. 지금 디자인 업무는 전혀 안 하고 있고 4년 차가 되어 매니저로 일하고 있어요. 브랜딩을 하지만 클라이언트에 따라 작업의 범위가 정말 달라서 사실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정의하기 어렵네요.

그러고 보니 인터뷰했던 고연정 씨와 같은 회사네요. 전혀 다른 경로로 같은 회사 분을 만나니 신기해요. 그때는 회사 이야기를 많이 못 들었는데 오늘 좀 들려주시면 좋겠네요. 그럼 회사 이야기 전에 먼저 미술을 시작한 얘기부터 시작해볼까요?
사촌 언니가 그림을 잘 그렸는데 그걸 따라 그리면서 관심을 두게 됐어요. 초등학교 때부터는 반에서 그림 잘 그리는 아이로 통했죠. 왜,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캐리커처 그려달라’, ‘만화 캐릭터 그려달라.’ 이러면서 몰리는 친구가 있잖아요. 그때부터 항상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가 장래희망이었어요. 예고도 가고 싶었는데, 부모님의 반대로 못 갔는데 결국, 공부를 열심히 해서 부모님을 설득했죠. 고2 때부터 미술학원에 다니며 미대입시를 준비했어요. 저는 사실 미대만 가면 상관이 없어서, 가군은 서피스디자인, 나군은 산업디자인, 다군은 도예 과를 썼어요.

그렇게 꿈에 그리던 미대에 오셨는데요. 학교생활은 어땠어요?
1학년 수업은 제품디자인 위주로 배우더라고요. 제품을 스케치하고 명도를 표현하고 콘셉트를 잡아 그리기를 배웠어요. 캐드, 일러스트레이터, 포토샵 등 그래픽 툴도 골고루 배웠죠. 그런데 저는 수업 과제보다 학교생활을 더 열심히 하는 아이였어요. 동기들에게 ‘여기여기 모여라’라고 말하며 다니는 아이였죠. 2학년 때는 과대표를 하고 3학년 때는 과 회장도 했어요. 회장을 하다 보면 행사 및 워크숍을 기획하고 진행해야 하는데 그런 게 더 재밌었어요. 야작을 하면서 동기, 선배들과 노는 것도 재밌고요. 수업 중에는 3학년 때 디자인마케팅이라는 수업이 가장 기억나요. 수업 때 만든 브랜드의 상표를 등록하고 디자인 소품을 만들어서 팔았어요. 엽서, 에코백, 동화책 등을 만들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하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팀 안에서 저의 역할은 직접 작업물을 만들기보다는 어떤 걸 만들면 좋겠고, 어디에 팔면 좋겠고, 어떤 방법으로 실현해야 할지 고민하고 방향을 정하는 것이었죠. 3학년 때 이렇듯 기획과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많은 매력을 느꼈어요. 2, 3학년이 되니까 동기들이 다들 색깔이 뚜렷해지는데 저는 보통 디자인의 전 스텝, 그 후 스텝에 더 고민하고 시간을 쏟았던 것 같아요.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되어야 하는지, 어떻게 전달되었으면 하는지를 더 고민했어요.

와, 학교 다니면서 브랜드를 운영하셨다니 대단하네요. 졸업 전시는 어떤 작품으로 했나요?
메타, 제품, UX, 공간 중 2가지를 선택해서 해야 했어요. 저는 제품과 UX를 선택했는데요. 제품디자인의 큰 주제를 도시 양봉으로 해 팀 작업을 했죠. 뉴스에서 도시 양봉에 관한 내용을 접하고 선택했어요. 직접 선유도 노들섬에 있는 도시양봉장에 가서 양봉 체험을 하며 벌에도 쏘이고 그랬어요. 실제로 만든 건 3단 벌통이었는데, 이때도 제품을 어떻게 서비스할지, 어떻게 판매할지에 더 관심을 가졌어요. 그리고 어떤 시나리오로 이 제품을 소개할지 공을 많이 들였죠. 실제 양산할 것도 아닌데 사용성도 많이 고민해서 만들었어요. UX는 시간을 주제로 했는데, 만든 구조물이 잘 움직이지 않아서 완전한 전시를 하지는 못했어요.

졸업을 앞두고 했던 고민이 있나요?
취업이었죠. 근데 저는 앞서 말했듯이 작업을 주로 팀으로 했거든요. 졸업하고 지인의 소개로 한 소방서의 입구를 디자인하는 일을 했었는데, 이때도 디렉터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3명이 함께 팀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였는데, 서로의 역할을 명확하게 정하진 않았지만, 어느새 제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더라고요. 팀을 이룬 친구들은 각자 전문 영역이 있었어요. 그래픽 담당, 도면 담당 파트가 있었고, 전문적인 스킬이 필요한 캘리그라피같은건 주변 친구에게 의뢰해서 해결하였고요. 이런 제 작업 성향 때문에 졸업하고 3개월을 힘들게 지냈어요. 대기업을 가려니 준비할 서류가 많고, 중소기업을 가려니 보통 디자이너 직군만 있더라고요. 저는 디자이너 직군과는 맞지 않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다른 직군을 쓰려니 보통 마케터더라고요. 근데 마케터는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니까 지원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보통 주변 친구들은 편집, 영상, 브랜딩 등 한 분야로 특화된 포트폴리오를 만드는데 저는 뚜렷하게 두각을 나타내는 작업물이 없이 너무 중구난방이었죠.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면서도 저는 디자인 일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굳어졌어요. 무언가를 기획하는 것이 더 재밌는 것 같다는 생각이 점점 커지게 되었고요. 그러다 공간기획이라는 포지션을 뽑는 지금 회사를 소개받아 지원했어요.

그럼 이제 회사 이야기를 해볼까요? 먼저, 브랜드 컨설턴트라는 직업은 어떤 직업이에요?
브랜드 컨설턴트라는 직업은 전략 컨설팅과 디자인 컨설팅의 중간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기존에는 아무래도 디자인에 많이 국한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더 폭이 넓어졌어요. 직업으로 자리 잡은 지가 얼마 안 됐죠. 그래서인지 직업과 관련된 사이트에도 아직 브랜드 컨설턴트라는 카테고리가 없더라고요. 브랜드 컨설팅이란 업무는 보통 기업 내부에서 어떤 변화를 해야 하는데, 진행하기 어려울 때 외부 전문가로 개입해 프로젝트를 진행해요. 임원과 실무진들 사이에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도 있어요. 프로젝트를 분석하고 기획하는 선에서 일이 그칠 때도 있지만 보통 그 기획을 실현하는 것까지 맡기도 해요.

구체적으로 하는 일도 궁금해요. 요즘은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우리 회사는 기획파트와 디자인파트가 있는데 저는 기획파트에서 일하고 있어요. 클라이언트에 따라서 정말 다양한 일을 하죠. 상품 기획, 공간 기획, 사업 프로세스 기획까지요. 최근 프로젝트로는 E사의 새 화장품 라인, M사의 플래그쉽스토어, G사의 건물 내부 리뉴얼 등의 작업 등이 있어요. 또, 한 프로젝트 안에서 다양한 역할을 하기도 해요. 최근에 일한 국내 가스 업체와 일을 예시로 들어 볼게요. 여러 개가 있는 가스 종류 중에 공장용 연료 가스의 운영모델 컨설팅을 했는데요. 이 모델을 영업하기 위한 제안서, 안전 점검 프로세스, A/S 기사의 유니폼, 차량 리뉴얼 등을 진행했죠. 차량 리뉴얼은 전문 업체와 같이 협업했어요. 근데 요즘 고민하는 게, 일할 때는 그 분야를 잘 알아야 해서 열심히 공부하지만, 프로젝트가 끝나면 그 전문성이 사라져버려 허무하다는 거에요.

한편으로는, 다양한 분야를 알게 되니 좋은 것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럼 요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우리 회사가 인원과 비교하면 프로젝트가 많은 편이라 근무시간이 긴 편이에요. 저는 마지막에 문 닫고 나오는 편이라 이르면 10시, 늦으면 새벽까지 일하죠. 클라이언트에게 전화가 오면 대응하고, 보고 자료와 미팅자료를 만드는 것부터 프로젝트 초기에는 시장조사, 트렌드 조사, 클라이언트 인터뷰 등 클라이언트와 주변 이야기에 집중하고 반응을 보죠. 그다음 시나리오를 짜서 어떻게 클라이언트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지를 고민해요. 매니저가 되고부터는 다른 파트너나 거래처도 관리하고 있어요. 보통 컨소시엄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요.

야근이 많으면 개인 시간도 많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래도 요즘 관심을 두고 있는 활동이나 분야가 있나요?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 취미 찾기가 유행이에요. 취미 박스도 있고 취미 애플리케이션도 있죠. 저도 디자인은 안 하지만 무언가 만들고 싶다는 욕구는 항상 있어요. 그래서 이번에 을지로에 작은 공간을 마련했어요. ‘co-made it club’이라고 이름 지었고 7월부터 사용할 것 같아요. 친구랑 둘이서 당장에 쓸 수 있는 돈이 얼마인지 얘기해서 그 돈으로 바로 구했죠. 집에서 하지 못했던 실크스크린도 하고, 캘리그라피도 하고, 그때그때 관심 있는 활동들을 하려고 해요. 마침 요즘 공유공간도 뜨니까 공간 대여 사업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죠. 친구는 팟캐스트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요즘 대단히 충동적인 삶을 살고 있어요. 야근하다가 뛰쳐나오고 그래요.

‘이야기’ 님은 디자인 과를 나온 게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있나요?
디자인 과를 나온 친구들이 자기만의 개성이 있어서 좋은 점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개성이 뚜렷한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기 개성을 표현하고 시각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이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자신의 의견을 조리 있게 얘기하는 것도 매번 훈련하고요. 그건 무슨 일을 하든 유용하게 작용해요. 이런 것들을 보면 디자인을 배운 사람들은 어디를 가도 독립할 수 있다고 봐요.

지금 가지고 있는 꿈이 있어요?
게스트 하우스를 하고 싶어요. 1층에 카페 운영하고 밤에는 Pub을 운영하기도 하고요. 을지로에 보면 한약방 컨셉으로 카페를 하면서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는 곳이 있어요. 그 거리가 허준이 활동하던 거리라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공간에 이야기를 풀어내는 걸 하고 싶어요. 이야기를 만들어 놓으면 디자인이 더 폭넓게 나올 수 있잖아요? 저는 그 길을 닦아주고 비춰주고 판을 벌이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스토리메이커라고 할까요. 오늘 이야기하면서 ‘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라고 정리하게 됐어요.

디자이너는 어쩌면 스토리메이커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럼 가명은 ‘이야기’로 할까요? 이제 마지막 질문이에요. 디자이너가 아닌 다른 길을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우선은 졸업하고 어떤 일을 하든 간에 취업을 하면 새롭게 일을 배워야 해요. 디자인 회사를 가더라도 그 회사의 스타일이 있을 테니까요. 디자인하던 안 하던 결국 새로 배워야 한다는 거에요. 그리고 전공이 디자인이라고 해서 못할 것도 없고, 남들이 못하는 걸 잘할 수도 있는 거예요. 제가 취업 준비하며 생각한 게 ‘할 줄 아는 게 디자인밖에 없는데 과연 잘할 수 있을까?’였어요. 하지만 이렇게 잘 해내고 있잖아요? 만약에 지원하려는 회사에 흥미가 간다면 주저 말고 도전해보세요. 얼마 전에 어머니와 통화를 했어요. 그랬더니 어머니가 대뜸 ‘사람은 다 자기 자리가 있는 거야’ 라고 하시더라고요. 지금 회사에서 과연 잘하고 있는지 고민하던 때인데 어떻게 아시고는 그 말을 해주셔서 마음이 후련해졌어요. 결국, 디자인을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고,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아요.

2018년 6월 6일 그녀의 회사 근처의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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