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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서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시각디자인과 졸업 ‘21
농사짓는 디자이너
주식회사 안녕농촌 대표
제주 생활 2년 차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제주도에서 귤 농사를 짓고 있는 3년 차 농부 라서현이에요. 대학교에서는 시각디자인과와 창업 융합 전공을 복수 전공했어요.

미술을 시작하게 된 건 언제이고,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릴 때 꿈이 화가였고 그림도 열심히 그렸던 걸로 기억해요. 근데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미술 하면 돈이 많이 들 것 같아 화가의 꿈을 아예 접게 됐어요. 철이 일찍 든 편이었죠. 그리고 전공은 취업에 도움이 되는 공대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원 없이 핸드폰을 보고 싶은 마음에 디스플레이 연구원을 꿈꿨고요. 중고등학교 다닐 때 저만 핸드폰이 없었거든요. 그렇게 공대이면서 국립대 중에 가고싶은 과를 찾다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전기정보공학과에 지원했어요.

공대와 미대는 정말 먼 분야라고 생각하는데요. 입학한 공대 생활은 어땠나요?
학교에 오니까 브레드보드라고 하는 걸 사용한 전기 회로를 공부하는 과더라고요. 핸드폰만 생각하고 왔는데, 와서 보니 생각했던 분야가 아니었어요. 전공이 잘 안 맞는다는 생각에 많이 겉돌았죠. 공대에서 코딩을 제일 못하는 학생으로 유명할 정도였고, 대외활동에서 전공과 맞지 않는 학생을 위한 강연도 했어요. 그러다 목표로 하던 기업에서 일하는 선배님을 만났는데, 제가 꿈꾸던 모습과 매우 다르더라고요. 졸업하고 회사원이 되어 출퇴근할 모습을 상상해 보니 즐겁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다른 전공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죠.

그렇군요. 그럼 왜 디자인과를 선택하신거에요?
재수하며 경제적인 독립을 해야 했던 터라 장학금이 필요했는데, 학교 홍보대사를 하면 받을 수 있더라고요. 그 길로 학교 홍보대사에 지원해 5년이나 활동했어요. 홍보실에 카드뉴스, 홍보 영상 등을 만들 일이 종종 있더라고요. 그때 자원해서 하다 보니 포토샵을 처음으로 접했어요. 그러면서 ‘미술이라는 분야가 세부적으로 나뉘어 있구나’, ‘그림을 못 그려도 할 수 있는 분야가 있구나’ 깨달으면서 디자인 쪽에 관심이 생겼고요. 안 그래도 전공이 잘 안 맞는다고 생각하던 터라 디자인과 전과를 고려하게 된 거예요.

전과가 쉽지 않다고 알고 있는데, 과정은 어땠어요?
일단 디자인과 T/O가 1년에 1명 혹은 2명 정도로 거의 없어서 힘들었어요. 학교 수업 끝나면 미술학원 가고, 학원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주말에는 포트폴리오에 넣을 광고제 수상을 위해 대외활동도 했어요. 특히 저는 입시 미술을 안 하다 보니 성인 미술학원 다니면서 연필 깎는 것부터 배워야 했죠. 그리고 공대 수업은 전공으로 인정이 안 된다고 해서 창업 융합 전공을 복수전공하면서 디자인 관련 수업도 미리 들었어요. 돌아보면 정말 바빴는데, 그만큼 절박했던 시기였어요.

말로만 들어도 정말 대단하네요. 전과 후 경험한 디자인과 수업은 어땠나요?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무엇인가요?
전과하고 나서 1, 2, 3학년 수업을 동시에 듣는 게 힘들었어요. 그리고 일러스트레이션같이 그림을 그리는 수업은 확실히 어렵더라고요. 다른 친구들과 그림 실력 차이를 분명하게 느꼈어요. 그래도 광고 같은 상업적인 디자인 수업은 잘 따라갔고, 특히 UX 디자인 수업을 처음 듣고는 “아, 이게 내가 하고 싶었던 거였구나"를 느꼈어요. 잘 몰라서 디스플레이 연구원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거지, 사실은 디스플레이 화면 안을 디자인하고 싶었던 거였죠. 과 내 서비스 광고학회에서 활동했던 것과 학교 내 학생 지원을 받아 창업한 것도 기억에 남아요. 돌아보니 학교를 6년이나 다녔네요.

졸업 전시는 어떤 걸 하셨어요?
복수 전공인 창업 융합 전공은 논문을 제출해 수료하고, 다음 해에 시각디자인과 졸업 전시를 했어요. 시각디자인과의 6개 트랙 중 UX/UI과 광고 디자인을 선택했죠. 마지막 학기 때 ‘기부니가좋다’라는 광고 기부 플랫폼을 창업했는데, 회사 운영과 졸업 전시 준비를 동시에 하기는 힘들 것 같더라고요. 다행히 사업 아이템으로 졸업 작품을 만드는 것으로 교수님이 양해해 주셨어요. ‘기부니가 좋다’의 광고와 서비스 디자인을 했는데 그래도 사업 아이템과 연계해서 졸업 전시를 하게 되어서 더 옳은 방향으로 에너지를 쏟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졸업을 앞두고 가장 고민하던 것이 있다면요?
취업과 창업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어요. 물론 학교 다니면서 창업을 경험했던 터라 창업으로 기울어져 있긴 했는데, 창업은 성공 전까지 불안이 가득하다 보니까 선뜻 결정하기 어렵더라고요. 당시 회사가 팀원 월급도 제대로 주기 어려운 상황이었고요. 일단은 창업하되, 취업하게 될 경우에는 어디를 갈지도 고민했어요. 그러다 서울시 지원을 받아 공유오피스에 사무실을 오픈하게 되며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죠.

창업도 쉽지 않은데, 잘 됐나요?
사무실이 생기니, 제대로 된 결과를 내야겠더라고요. 정말 사업에 매진했어요. 그런데 코로나가 오면서 기부문화 자체가 축소되어 버리더라고요. 큰 타격을 받아 사업을 접게 됐죠. 그 후 계속 아이템을 찾아 시도와 실패를 반복하다가, 전공을 좀 더 살리고, 저자본으로 할 수 있는 무인 사진관을 창업했어요. 서비스 디자인을 배운 게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고객이 어떤 과정으로 구매하는지를 잘 이해하고 있으니까, 무인 시스템 기획이 어렵지 않더라고요. 게다가 당시 무인 사진관이 유행할 때여서 시기도 좋았고요. 지점을 3개 정도 운영했는데 인수하겠다는 분이 생겨서 운 좋게 엑시트를 하게 됐어요.

엑시트라니, 축하할 일인데요. 그런데 갑자기 제주도에는 왜 오신거에요?
대학생 때 대외활동을 하다가 지금 같이 일하고 있는 첫째 현왕이 형을 만났어요. 무인 사진관 사업을 할 때 형 집을 자주 가며 더 친해졌죠. 그러다 제주도 여행을 같이 갔는데, 형이 그때 제주도에 아예 눌러앉기로 결정한 거예요. 형 직업이 한의사였는데, 코로나 때 역학조사관을 하며 지쳐서 1년만 놀자 싶었다고 해요. 이왕 결정한 거 더 재미있게 놀기 위해 사람들을 모을 방법을 찾다가 원하는 만큼 머물고 기부 형태로 돈을 내는 도네이션 하우스를 만들었어요. 저도 덕분에 제주도를 자주 오가며 운영을 도왔죠. 그러다 마침 사업을 정리하게 됐고, 형의 도움 요청에 저도 아예 내려오게 된 거예요.

제주도에 살겠다고 결정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어떻게 결정했어요?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내려왔다기보다는 도피에 가까웠던 거 같아요. 어린 나이에 사업도 여러 번 실패하고, 군대도 늦게 다녀오면서 고민이 많던 시기였거든요. 그리고 당시 디지털 노마드가 막 유행할 시기여서, 디자인 일은 장소가 중요하지 않을 것 같아 제주도에 살면서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하면 좋겠다 싶었죠. 처음에는 부모님도 금방 올라올 거로 생각하셨는데, 작년에 인간극장 출연한 걸 보고, 진심을 느끼신 것 같아요.

요즘은 귤 농사를 짓고 있는데요. 현왕귤집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요?
현왕이 형이 <고민하우스>를 운영할 때 저는 워케이션과 농촌을 결합한 팜케이션, 고민이 중심이 되는 고민캠프를 2박 3일 프로그램으로 운영했어요. 육지에서 온 사람들 스무명 정도를 모아서 여행 코스를 짜주고 같이 여행하고, 농사도 짓고 마을도 돕는 캠프였죠. 그 앞에 귤밭이 있어서 틈날 때마다 귤을 따서 팔았는데, 맛이 좋다는 평이 많더라고요. 한 번 제대로 팔아볼까 싶어서 본격적으로 귤 농사를 짓게 된 거예요. 그리고 작년에 셋째 상진이가 합류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현왕귤집이라는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어요. 같이 농사짓고, 사무실도 같이 쓰지만 현왕이 형은 현왕귤집을, 저는 주식회사 안녕농촌이라는 회사에서 팜케이션과 농산물 유통 사업을, 상진이는 제작소라는 여행사업자를 운영하고 있어서, 사실상 각자 대표고 사무실을 같이 쓰는 형태예요.

세 분의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아요. 인간극장도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그럼 요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농사가 있는 날은 새벽 6시쯤 일어나서 세 명이 같이 전정을 하거나 예초를 해요. 한두 시간 농사 일을 하면 녹초가 돼서, 사우나에 가서 씻고 나서 사무실에 출근하죠. 송장 마감이 매일 아침 9시라서 오자마자 송장을 마감하고, 물량을 체크해서 택배사에 보내요. 그러면 현장에 있는 팀원이 포장을 하죠. 물량이 많으면 저희도 도와주러 가기도 하고, 아니면 디자인이나 사진 작업 등 사무실 업무를 해요. 릴스를 만들거나, 콘텐츠를 기획하는 등 홍보 일도 하고요. 퇴근은 보통 6시쯤 하고 있어요.

현재 직업 외에 다른 관심사가 있으신가요? 어떤 취미가 있어요?
바쁜 대학 생활과 사업으로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다가 제주도에 와서 삶의 여유가 생기니까, 예전에 좋아했던 취미를 다시 떠올렸어요. 중·고등학교 때 했던 밴드 경험을 살려 직장인 밴드를 시작했죠. 대부분 이주민으로 구성된 밴드인데 목수, 선생님, 공무원 등 직업도 다양하고, 타지에서 서로 의지를 많이 하는 느낌이에요. 음악을 매개체로 자주 어울리고 있고요. 합주가 있는 날은 퇴근하고 합주를 가고, 가끔 공연도 해요. 명확한 직장과 취미, 여가 시간이 생기니까 요즘 꽤 재미있게 살고 있다고 느껴요. 그리고 지금은 음악이 취미지만 언젠가 직업이 되는 기회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수익성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놓지 않고 계속할 것 같아요.

서현님에게 제주도는 어떤 의미의 공간 인가요?
지금은 제2의 고향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서울이나 수도권 사는 사람들에게는 고향이라고 할 게 따로 없잖아요. 근데 제주도는 내가 선택한 고향이라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특히 오랜만에 경조사가 있어 육지에 가면,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공기도 답답한 느낌이고요. 그런 걸 보면 제주도를 고향으로 인지하고 있구나 싶죠. 그리고 제주도의 여유롭고 안정적인 삶이 좋아요. 저 자신에게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 같고요. 사무실도 앞에는 바다가 보이고 뒤에는 한라산이 보이는 곳으로 구한 이유예요.

지금 가지고 있는 꿈이 있나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일하는 게 재미있어서,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경제적 자유가 어느 정도 기반이 되어야 할 것 같아 성공한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 계속 쓰임이 있는 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요. 어릴 때 집안이 갑자기 안 좋아지는 걸 보고는, 가난의 대물림을 제 선에서 끊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말하자면 제 꿈은 경제적인 고민에서 벗어나지는 거라고 할 수 있겠네요.

미래를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려요.
저도 제주도에서의 삶은 커녕 부산도, 수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살아보니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더 좋더라고요. 물론 초반에 적응이 쉽지는 않았지만, 하고 나니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누군가 시도를 특별히 주저하는 이유가 없다면 일단은 시도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돌아가는 걸 추천하고 싶어요. 요즘은 한달살이도 많이 하니까 기간을 정해두고 테스트를 해 본 뒤 결정하는 것도 좋을 것 같고요. 그리고 전공이 잘 안 맞는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있다면 뭘 하고 싶은지 깊이 고민해 보고, 저처럼 바꿔도 좋을 것 같아요. 만약 하고 싶은 다른 게 없다면 찾아보는 노력은 필요하겠죠?

2024년 8월 19일 현왕귤집 사무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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