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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레이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 석사과정 수료 ‘04
사주보는 여행작가
제주 생활 12년 차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사주보는 여행작가 제주레이라고 해요. 웹디자인을 13년 정도 했고, 제주도에서 산 지는 12년 차가 됐어요.

미술을 시작하게 된 건 언제이고, 이유는 무엇인가요?
디자인이나 예술 쪽에 대한 관심은 어렸을 때부터 있었어요. 항상 미술을 가장 좋아해서 예중 입시 시험도 봤을 정도로요. 예중 입시에 떨어진 게 어린 나이에 꽤 큰 좌절감을 주더라고요. 이 길은 내 길이 아닌가 보다 하고 접었는데, 끌리는 것은 피할 수가 없었나 봐요. 살면서 틈틈이 사진, 유화나 데생, 캘리그라피, 도예 등을 꾸준히 취미로 해오고 있어요. 대학교에서는 교육학을 전공했는데, 공부하다 보니 그것도 내 길이 아닌 것 같더라고요. 4학년 때 동기들 임용고사나 취직 준비할 때 저는 스타일리스트 학원에 다녔어요.

스타일리스트 일은 어땠나요? 잘 맞았나요?
학원을 1년 동안 다녔는데, 일은 고작 3개월 했어요. 제가 생각했던 일과 매우 다르더라고요. 발품 팔 일이 많고, 밤낮도 바뀌고, 거의 육체노동이었어요. 고민을 길게 할 필요도 없이 그만뒀죠. 그리고 교육학을 졸업해서 취득한 중등학교 영어 교사자격증으로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어요. 특별활동 같은 수업이라 수업이 오후에만 있었죠.

결국 다시 전공으로 돌아갔군요. 그러면 디자인을 시작한 건 언제부터에요?
수업을 오후에만 하다 보니 낮에는 시간이 비어 있었어요. 낮에 할 일을 찾다가 우연히 디자인 툴을 배우면서 일할 수 있는 회사를 알게 됐는데, 3개월간 일할 사람을 찾더라고요. 그 회사에서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HTML을 배울 수 있었어요. 포토샵을 처음 배웠을 때는 엄청난 희열이 느껴지더라고요. 손으로만 그림을 그리다가 컴퓨터를 사용해서 뭔가 창조해 내고 사진을 보정하고, 움직이는 이미지를 만드는 게 신세계 같았어요. 그래서인지 몰입해서 빠르게 배웠고, 이 길로 가야겠다는 확신이 생겨서 일 년 정도 더 다니다가 큰 웹디자인 회사로 이직했어요. 

웹디자인 일은 잘 맞았군요. 비전공자로 일하기 힘들었을텐데 어땠어요?
말하자면 제가 웹디자인 1세대인데, 당시는 웹디자인이 이제 막 시작돼서 디자이너가 HTML 코딩까지 모두 하던 때였어요.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웹사이트라는 것을 처음 만들던 시절이었죠. 발을 일찍 담갔고 아직 디자인 전공자들이 그 분야에 뛰어들지 않았던 시절이다 보니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3년쯤 지났을 즈음부터 분업화가 되어서 디자인, 코딩, 영상 전문 파트로 나뉘기 시작했어요. 디자인만 해도 되는 때가 왔고 디자인을 전공하신 실장님과 함께 일하며 많이 배우고 영감도 많이 받았죠. 우리나라보다 웹디자인이 더 일찍 발달했던 미국의 유명 커뮤니티를 보면서 많이 배웠고요. 타고난 예술 감각이 있었던 것도 도움이 되었을 거예요. 웹디자인은 사용성과 기획력이 되게 중요한데 저는 두 가지를 늘 같이 고민했어요. 그래서 ‘기자이너(기획자+디자이너)라는 별명도 얻었죠. 전공자가 아니라는 점이 저에게는 부족함으로 다가왔고 미술만 한 사람들과 다른 장점도 있어야 한다는 강박도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웹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찾기 전에는 잠시 방황했지만 시작하고 나서는 그 매력에 푹 빠져들었고 10년 넘게 워커홀릭처럼 일만 했어요.

대학원에서 디자인을 전공하셨는데, 일을 하다가 어떻게 대학원에 가게 됐어요?
웹디자인 업계에 초창기에 뛰어들었다 보니 주변보다 일찍, 그리고 오래 경력을 쌓았잖아요. 게다가 좋은 포트폴리오가 많다 보니 전공자도 아닌데 승진이 빨랐어요. 꽤 많은 인원의 디자인실을 이끌었는데 이 분야에서 더 오래 일하려면 공부를 보충해야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시각디자인대학원에 등록해서 회사 다니면서 저녁에는 디자인 공부를 했어요.

어떻게 보면 뒤늦게 디자인을 공부한건데, 해보니 어땠나요?
저는 체계적으로 지식을 쌓고 일을 시작한 것이 아니었잖아요. 반대로 실무에서 체득했던 것들을 거꾸로 이론적으로 보충을 하니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원하던 공부를 필요할 때 하니까 갈 때마다 신날 정도로 정말 흥미로웠어요. 주말에는 쉬지 못하고 과제를 해야 했지만 그 시간이 즐거웠고  누구보다 열심히 했어요. 지도 교수님도 유명한 분이어서 그분의 철학과 디자인에 대한 자긍심을 느낄 수 있었고요. 같이 대학원 다니던 분들도 다양한 디자인 업계 사람들이라서 배우는 게 정말 많았죠.

천직을 만나신 거네요. 그럼 디자인을 그만두고 제주도에는 왜 오게 됐어요?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다시 회사에 나가기가 힘들어졌어요. 잠시 재택근무도 했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더 오래 일할 줄 알고 대학원도 갔는데 수료만 하고 디자인도 결국에는 그만두게 됐어요. 경력 단절이 시작된 거죠. 그러다 첫 아이가 6살쯤 됐을 때, 남편이 제주도에 있는 기관 관련 일을 하면서 출장으로 같이 왔다 갔다 하게 됐어요. 자연스레 제주도에서 애를 키워보면 어떨까 하는 얘기를 나누게 됐죠. 당시가 제주도가 떠오르기 시작한 때였거든요. 마침 미리 와서 살던 지인이 있기도 했고, 서울은 교육이 굉장히 치열한데 세상을 좀 더 넓게 봤으면 싶었어요. 제주도도 좋고 향후 외국까지도 폭넓게 생각하면서 먼저 제주살이의 경험을 해보자 싶어서 내려왔어요.

제주도에 와서는 어떤 일들을 했어요?
서울에서 살 때 동네에 한 엄마가 일상 블로그를 하고 있었는데 그게 재미있어 보였고 제가 해도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사 올 때 DSLR 카메라를 하나 장만해서 내려왔죠. 뭔가 운명처럼 느껴졌어요. 오자마자 블로그를 만들었고 날씨만 좋으면 늘 카메라를 들고 나갔어요. 회사 다닐 때 사진 동호회도 했었고, 여행도 좋아했던 터라 적성에 아주 잘 맞았고 블로그를 하면서 글쓰기 훈련이 많이 되었던 것 같아요. 정말 열심히 올렸는데, 어느새 하루 방문자가 6,7천명이 되더라고요. 나중에는 제주관광협회의 객원기자로 제안을 받아서 매거진 취재 활동도 하고 제주교통방송에 일요일마다 여행지를 소개하는 패널도 했었어요.

저도 얼마 전까지 블로그를 운영했는데, 정말 새로운 세상이더라고요. 그럼 책은 어떤 계기로 쓰게 된 거에요?
객원 기자로 활동하면서 여행작가님들을 몇 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출판 쪽에 눈을 뜨게 되었죠. 당시 눈여겨보던 책 중에 ‘핀란드 디자인 산책’이 있었거든요. 보면서 제주에도 소개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데 하는 생각에 ‘제주 디자인 산책’을 기획하게 됐어요. 제주의 색, 음식, 문화, 공간, 음악, 자연 등등 제주의 아이덴티티를 소개한 책으로 제주의 아름다움을 이어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책이에요. 출간을 위해 디자인에 관심이 있을 법한 5개의 출판사에 기획안을 냈고, 그렇게 첫 책인 <제주감각>이 출간된 거예요. 그 후에도 제주에 대한 기획안을 써서 출판사에 제안해 놓았던 게 있었는데 마침 코로나 팬데믹이 오면서 제주도가 떠오르고, 시기가 잘 맞아서 두 번째 책인 여행 가이드 북 <리얼 제주>를 낼 수 있었어요.

최근에는 어플을 통해서 사주도 보시는 것 같은데,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나요?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계획되어 있던 해외 취재 일정이 다 취소되어 버렸어요. 그러던 중 우연히 명리학책을 펼쳤어요. 원래 관심이 많긴 했는데 워낙 어려워서 독학으로 하다 말기를 반복하던 중에 코로나를 계기로 다시 책을 보게 된 거예요. 지금은 세상이 바뀌어서 교육기관이 많아졌더라고요. 서울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사주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디자인도, 블로그도, 책도, 사주도 직업으로 해야겠다는 거창한 생각보다는 관심을 갖게 되면 푹 빠져서 하는 편이에요. 그러면서 직업을 바꿔온 것 같아요.

디자인과를 나와서 지금 하는 일에 어떤 점이 도움이 되는지, 혹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궁금해요.
디자인은 상품의 장점을 잘 부각시키고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 같아요. 온라인으로 상담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제 상품을 더 돋보이게 하는 거라면 자신있죠. 물론 식당은 맛이 가장 중요하듯 제게는 상담실력이 가장 중요한 것은 진리고요. 자기 PR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보니 아이덴티티 디자인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주변에 개업을 하는 친구들이 있으면 간판, 명함, 메뉴판, 로고, 브로슈어 등을 제가 디자인 해주기도 해요. 그리고 향후 상담소를 만들 생각인데 네이밍과 서비스 아이디어, 인테리어등을 늘 머리속으로 구상하고 있어요.

지금 가지고 있는 꿈이 있나요?
저는 꿈이 늘 있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의 꿈은 일 년에 11개월은 일하고 한 달은 외국에서 사는 거예요. 얼마 전에 혼자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갔는데, ‘혼자서도 여행을 재밌게 할 수 있구나’를 깨달아 더 구체적으로 꿈꾸게 됐죠. 지금은 한창 명리학에 관심이 많다 보니 먼 미래에 한국 명리학의 계보를 잇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책은 평생 쓰고 있을 것 같고요. 내년의 계획은 유니크한 사주 상담 공간을 만들 계획이에요.

제주레이님에게 제주도는 어떤 의미의 공간인가요?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해준 곳이에요. 제주도에 오지 않았으면, 블로그도 시작하지 않았을 거고 그럼 글쓰기에 재주가 있는지 몰랐을 것 같아요. 명리학도 마찬가지고요. 나를 더 알게 해준 그런 운명 같은 곳이에요.

디자이너가 아닌 진로 선택을 고민하고 있는 후배에게 조언 부탁드려요.
꼭 한 우물만 파야 한다는 것은 고정관념이 아닐까 싶어요. 하고 싶은 분야에 전속력으로 달리다 보면 그냥 이뤄져요. 내가 이룬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모두가 함께 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종교를 믿는 분들이라면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고 부처님의 뜻이라고 하셔도 되고요.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한 분야에서 전문성으로 끝을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보이는 것보다 자아실현이 중요한 사람도 있으니까요. 꼭 일등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마음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죠. 그러니 ‘내가 하는 게 정답이다’ 생각하고 전속력으로 가는 게 가장 최고인 것 같아요.

다른 곳에서의 삶을 살고 싶은 사람에게 해주실 조언이 있나요?
우리는 모두 혼자가 아니에요.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더라도 지금 살고 있는 곳과 똑같은 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는 사람이 없어서 도전하지 못하거나 외롭다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연고 없는 곳에 가서 살면서 느끼는 외로움은 의외로 그렇게 오래 가지 않아요. 내가 의지할 만한 혹은 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을 만나서 교류하다 보면 나뭇가지가 자라듯 점점 불어날 거예요. 새로운 환경이고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더라도 ‘스며들어야겠다는 마음가짐’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2024년 8월 19일 바이러닉 에스프레소바 제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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