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민
유한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졸업
'17
도슨트
밴드 꼬리물기 보컬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해요.
안녕하세요. 밴드 꼬리물기 활동을 하고 있는 기민이에요.
어떤 계기로 미대를 오고, 디자인을 전공하게 되었나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지만, 실기를 따로 배우지 않아서 실기가 없는 과를 선택해야 했고 고등학교에서 디자인 툴을 접하기도 해서 디자인 과를 왔어요. 전부터 미술에 대해 무겁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것이 스트레스가 되는것도 정말 원치 않았고요. 그래서 아무것도 몰랐던 저는 순수 미술보다는 디자인 과를 선택했지만, 디자인에서도 그런 접근이 많이 있더라고요. 완전히 착각한거죠. 생각했던 것과 배우는 게 많이 다르다 보니 학업보다는 음악을 더 많이 했어요. 대학교 동아리실에 들어가 거의 그곳에서 살았죠. 졸업전시 때 학생들은 지금까지 해온 작업을 담은 책을 만들었어요.
졸업을 앞두고 고민하던 건 무엇이었나요?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이 분야로 직업을 이어나가야 할까’, ‘얼마나 오래 이 분야에서 일할 수 있을까’하는 취업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디자인 쪽은 야근도 많고, 클라이언트를 대상으로 해야 해서 저와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요. 위에서 말한것처럼 즐거움이 스트레스가 되는 일은 정말 싫어해요, 그래서 한때 다른 전공을 선택한 친구들과 저를 비교를 하기도 했죠. 졸업하고 1년간 쉬면서 먹고살 정도의 아르바이트와, 음악 활동만 했어요. 그러다 다시 일하려니까 1년의 공백이 정말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더군요. 학업에 집중하지 않고 하고 싶은 걸 했으니 쌓여있던 벌을 받았다고나 할까요?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일과는 어떻게 보내고 있어요?
중학교 때부터 6년 정도 웨딩홀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졸업을 하니 이제 직업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에 야근이 너무 혐오스러워, 디자인회사는 플랜B로 두고 다양한 일을 찾아봤죠. 여러 회사에 면접을 봤지만, 마음에 드는 곳이 없더라고요. 그들도 저를 마음에 안 들어했을거고요. 그러다 우연히 사람들에게 말을 하는 일을 하게 됐어요. 일은 스케쥴 근무이긴 한데 9시부터 6시까지 일을 하고, 그 외에는 음악 작업을 해요. 합주, 연습, 녹음을 하죠. 공연도 자주 보러 가고요. 도슨트 일을 하면서 말을 많이 하다 보니 발성이 좋아져서 밴드 활동에 도움이 되기도 해요.
음악 활동은 언제부터 했어요?
중학교 때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하고, 즐겨 봤어요. 2006년에 인상적인 결승전 경기가 있었는데요. 저의 그때 경기가 끝나고 피날레에서 My Chemical Romance의 노래가 나오더라고요. 그 전에는 록음악을 거의 듣지 않았는데, 그 노래에 꽂혀서 디깅을 시작했죠. 뮤직비디오도 멋있고, 당시 중2 감성에 너무 잘 맞더라고요. 그러면서 Emo punk, Pop punk 등 세부 장르에 관심을 두게 되어 음악을 더 좋아하게 되고, 기타도 잡게 됐어요. 집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유튜브를 통해서 고등학교 때까지 계속 혼자 기타를 쳤어요. 본격적인 활동은 대학교 밴드 동아리에 들어가면서부터 했고요. 동아리 원들과 말도 잘 통하니까 더 음악에 빠져들게 됐죠.
꼬리물기는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나요?
2015년에 동아리에서 홍대의 라이브 홀 하나를 빌려서 공연을 했어요. 동아리 내에서 팀을 나누고, 다른 밴드와도 함께 해보자고 해서 인터넷 사이트에서 밴드를 모집했거든요. 당시에 선택지로 여러 밴드가 있었는데 제 눈에 딱 들어왔던건 그때 양반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영국인 솔로 아티스트였어요, 음악도 좋고 당시 봤던 영상의 조명까지 완벽히 멋있어서 반해버렸어요. 특히 그가 부르던 노래의 가사가 “하얀 물결위에 빨갛게 비추는 햇님의 나라로…” 였는데 이런 가사를 보고 제 마음은 완전 굳혀진거죠. 그 후 저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베이시스트와 드러머를 구해 꼬리물기의 전신인 밴드를 꾸려서 활동하고 있었고, Tommy는 양반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음악을 하고 있었어요. 마침 둘 다 인천에서 지내던 터라, 저와 종종 만나곤 했죠. 그러다 어느 날 같은 무대에서 공연을 하게 됐어요. 그때 아이디어를 주고받다 보니 이야기가 잘 맞았고 그때부터 합류를 결정하고 지금의 꼬리물기가 됐죠. 나중에 알게 된 사실 이었지만 아까 말했던 가사의 노래는 신중현선생님의 <햇님>이라는 곡의 커버였더라고요. 꼬리물기는 인천, 런던, 시카고, 서울 출신의 서로 다른 문화와 삶을 살아온 4명의 멤버가 모인 인디락 밴드예요.
어떤 음악을 하고 있나요?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이에요?
DIY 정신과 Lo-Fi를 넘어 Lo-Est-Fi 라는 단어로 밴드를 소개하고 있어요. 펑크, 인디, 개러지록 등을 기반으로 다양한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며 부르고 있는데 사실 저희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있어요. 학문적으로의 음악을 한다거나, ‘우리 밴드의 사운드는 무엇무엇이다’ 라고 정의할 만한 것보다는, 저희가 들을 때 좋은 음악을 하고 있죠. 제한을 두고 싶지 않아요. 우리는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거지, 거창하고 멋있는 거를 하려는 거는 아니에요. 저희의 목표는 계속 즐겁게 웃으면서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거예요. 물론 계속 즐겁게 하려면 현상 유지만 하면 안 되고 계속 조금씩 성장을 해나가야겠죠. 높은 무대에서 공연하고 싶기도 해요. 올해에 EP하나를 낼 계획이에요.
음악을 직업으로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나요?
직업으로 선택하는 게 좀 애매한 것 같아요. 돈을 버는 것이 전부는 아닌 것 같거든요. 저에게 음악은 밥 먹는 거랑 비슷한 것 같아요. 혹은 기호, 취향이고요. 아메리카노 대신 카페라떼를 선택했다고 왜 아메리카노를 선택했냐고 묻지는 않잖아요. 꼭 음악으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은 안 하고 있어요. 음악을 좋아하니까 계속 꾸준히, 자연스럽게 해 나가려 해요.
디자인을 배운 것이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밴드를 한다는 건 작은 중소기업이라고 생각해요. 음악도 만들지만, 사진도 직접 찍고, 홍보도 해야 하죠. 그러다 보니 그림을 그리고, 앨범 커버를 만들고, 포스터를 만드는 일, 혹은 홍보물을 만드는 일은 제 일이 됐죠. 꼬리물기의 아트디렉터 역할을 하고 있어요. 제가 만든 음악에 직접 그림을 그리다 보니 뿌듯하기도 하고 보람도 있네요.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해요.
제가 가지고 있는 철학이 ‘사람 한번 X 돼 봐야 한다’는 거에요. 힘들고 격변의 시기가 있어야 다른 것도 생기고 나아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인생의 위기는 다르게 보면 뛰어넘을 수 있는 도약점이기도 한 것 같아요. 다른 걸 무서워하지 말고 본인이 할 수 있는 걸 찾아서 상황을 타개해가면서 하는 것이 좋겠어요. 그리고 저도 어려운 시기에 지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거든요. 좋은 친구를 많이 사귀어두면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것에 큰 도움이 될 거에요. 먼저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어야하는건 당연하구요.
2019년 9월 10일 홍대 락밴드 공연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