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혁
계원예술대학교 애니메이션과 졸업 ‘06
항해하는 디자이너 / BRUDER 대표
제주 생활 7년 차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항해하는 디자이너 정규혁입니다. 2010년부터 디자인 스튜디오 BRUDER를 운영하고 있고, 제주에 내려와 산 지는 7년 차가 됐어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미술을 시작하게 된 건 언제인가요?
중학생 때부터 공부보다는 만화 그리는 거나 운동을 좋아했어요. 고등학생 때까지 그림과 운동 중 고민하다가 고3 때 그림 쪽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고등학생 때 만화 동아리를 만들고 보니, 친구들이 다 대학 입시 준비를 하느라 다 미술학원에 있더라고요. 그렇게 고3 때부터 6개월 정도 미대 입시를 준비했어요.
졸업 이후 지금까지 어떤 일을 해 오셨나요?
전공이 애니메이션이어서, 사실 디자인 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졸업반 때 아르바이트로 제일모직의 FUBU라는 브랜드의 도안을 그리며 그래픽 디자인 일을 한 게 인연이 됐죠. 아르바이트 후 어느 날 버스정류장에서 제가 그린 티셔츠를 입은 사람을 발견한 거예요. 그 기억이 매우 강렬하고 신선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애니메이션 작가나 감독만 생각할 때였는데, 디자이너라는 직업의 매력을 느낀 거죠. 디자이너가 돼야겠다 싶어서, 평소 좋아하던 포스터를 작업하신 박시영 디자이너가 일하는 회사에 지원해 입사했는데, 박시영 디자이너는 퇴사를 하신 후라 그 역할을 제가 맡게 되었어요. 디자이너로서의 첫 커리어인데, 회사와 프로젝트를 잘 만나서 성장을 많이 했어요.
BRUDER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그렇게 1년 6개월 정도 회사 생활을 하다가 드웨인 웨이드라는 스튜디오를 만들어 독립해 프리랜서 활동을 시작했어요. 활동을 하다 보니 더 큰 에이전시를 만들어서 규모 있는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트위터를 통해 박시영 디자이너에게 연락이 왔는데, 동업 제안을 받아 같이 만들게 된 회사가 BRUDER에요. 당시 박시영 디자이너는 ‘스튜디오 빛나는’을 운영하면서 영화 포스터 작업을 많이 하고 있었는데, 저도 그쪽을 하고 싶었어요. 졸업 작업을 할 때 포스터 작업을 즐겁게 했던 기억이 있거든요. 그렇게 같이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블록버스터부터 인디영화까지 수많은 영화의 포스터를 작업했어요.
지금은 영화 포스터보다는 브랜딩 관련 작업을 많이 하시는 걸로 아는데,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한 2년 정도 지나고 보니까 작업이 너무 영화 포스터 위주로 진행되고 있더라고요. 현장 일이 너무 재미있긴 했는데, 좀 거칠기도 하고요. 거의 죽기 직전까지 몰아쳐 일하다 보니 번아웃이 왔죠. 그리고 한 편으로는 브랜딩 작업에 대한 니즈가 있었어요. 그렇게 2012년쯤에 홀로서기 이야기를 했고, 박시영 디자이너는 다시 ‘스튜디오 빛나는’을, 저는 BRUDER를 운영하기로 정리를 했어요.
제주도에는 어떻게 오게 됐어요?
홀로서기를 하고 지난날을 돌아보니 여행다운 여행이나 휴가도 못 가고, 몸을 혹사하면서 20대를 다 보낸 것 같더라고요. 그때 친구들과 양양 여행을 가서 처음으로 서핑하면서 서핑의 매력에 빠지게 됐어요. 그리고 도시를 벗어나고 싶은 생각으로 제주도에 3~4개월 내려와 살았죠. 중문 해수욕장 쪽이 제주도의 서핑 성지라서, 중문에 머물면서 서퍼들과 함께 지냈어요. 그 후 프리랜서로 디자인 작업을 했는데 그때 했던 프로젝트 몇 개가 너무 잘 된 거예요. 아마 놀면서 작업해서 더 잘되지 않았나 싶어요. 그 작업 덕분에 일도 많이 받게 되고, 규모가 큰 프로젝트도 맡게 되면서 다시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 됐어요. 그래도 번잡한 서울로 가고 싶지는 않아서 파주 헤이리에 마당 있는 오래된 집을 얻어 고쳐 살면서 집 겸 사무실로 썼죠.
저도 처음 뵀던게 파주에서 작업하던 시절인 것 같아요. 그럼 파주에서 어떻게 다시 제주도에 오게 된거에요?
처음 회사에 다닐 때 아직 인턴일 때인데도, 여러 잡지 인터뷰로 소개되면서 빠르게 유명세를 치렀어요. 아마 수염도 있고, 옷도 좋아하고, 여러모로 아이코닉하다고 느껴서인 거 같아요. 그렇게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고 소위 지금의 인플루언서 같은 활동을 많이 하면서 제 실력에 비해 지나치게 유명해진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그리고 디자인보다는 제 라이프 스타일이나, 패션 같은 게 더 많이 부각되면서 미디어에 반짝 노출되다가 사라지진 않을까 우려됐어요. 뭔가 거품 같은 느낌이었죠. 그리고 아내가 몸이 안 좋아지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죠. 너무 일만 몰두하다가 아픈 건가 싶어서 미안한 마음이 너무 크더라고요. 한창 바쁠 때였는데 대부분의 활동을 멈추기로 했죠. 일을 멈추기 직전에 했던 게 9.81파크 제주 프로젝트였는데요. 저희가 일을 쉰다는 얘기를 듣고, 대표님들이 제주도에 아예 내려와서 같이 일하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주셨어요.
그런 인연이 있었군요. 요즘은 어떤 일들을 하시며 지내나요?
9.81파크는 처음에는 인허가도 받기 전이었는데,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4만 2천 평 규모의 스마트 테마파크가 됐어요. 지금은 디자인 R&D를 맡아서 계속 함께하고 있죠. 보통 3~10개월 정도 프로젝트가 끝나면 디자인 납품하고, 운영은 클라이언트가 자체적으로 했는데요. 관리가 잘 안되는 경우도 있어서 안타까울 때가 많았는데, 9.81파크 일하면서 직접 운영까지 관여하니까 그런 약점이 많이 보완되더라고요. 이런 형태로 파트너십을 맺어 일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어요. 최근에는 서울시립미술관 로고 작업을 거의 3년 동안 했어요. 수많은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저희가 생각하는 디자인을 관철하기 위해서 정말 많은 PT와 회의를 매주 서울 올라가서 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런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제가 원하던 방향으로 스튜디오를 꾸려갈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되고 노하우도 점점 생기고 있는 것 같아요. 처음에 항해하는 디자이너라고 소개한 이유가 바다 건너 일을 많이 하고 있어서인데요. 부산, 일본, 서울, 제주 4개 도시를 오가며 디자인하고 있어요.
지금 가지고 있는 다른 꿈이 있으신가요?
무조건 1번은 건강. 2번은 자유롭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걸 하는 것이에요.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삶이면 좋을 것 같아요. 지금이 너무 좋아서, 가족과 평생, 이 포지션으로 살고 싶어요. 그래서 제주도 중문에 사옥 겸 집을 짓고 있어요. 직업적인 꿈은, 죽기 전까지 디자인 일을 계속하는 것이에요. 이탈리아의 한 디자이너가 죽기 한 달 전, 여든이 넘은 나이에 친구에게 만들어준 포스터가 있어요. 그 작업을 보면서 나도 마지막 순간까지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정규혁님에게 제주도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제가 가진 디자인 철학을 지켜줄 수 있었던 곳 같아요. 저는 디자이너가 단순히 껍데기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고 사업을 잘 되게 비즈니스를 연구하고, 같이 만들어 나가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만약 서울에 있었으면 다른 디자이너들과의 경쟁에 몰두하다가, 더 돋보여야 하고, 더 유명해지고 싶다는 마음에 휘말렸을 것 같아요. 근데 물리적으로 단절되어 있으니까 그런 생각에서 멀어지고 제 철학을 고수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요. 제주도의 자연 속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면서 그런 생각을 잊게 되는, 보호막 같은 곳이죠. 소중한 추억도 많은 곳인데 처음 가족이랑 내려와서 자리 잡은 곳이 여기 속골이거든요. 반려견인 루더와 같이 매일 같이 산책했던 곳이기도 하고 아기 태명도 속골이었어요.
다른 지역에서의 삶을 고민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도시는 비교적 경쟁도 치열하고 인구도 포화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주변에 휩쓸려서 진짜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작은 재미와 취미 생활로 완충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잠시 그런 경쟁에서 한 번쯤 벗어나서 자신에게 집중해서 직업이나 삶의 철학을 만들어갈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나라 청년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지표를 종종 보는데 저는 그게 직업관이 잘 서지 않아서라고 생각하거든요. 직업이 아닌 다른 생활에서 해소를 하다 보니 더욱더 힘들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삶에서 직업이 차지하는 부분이 크기 때문에 직업적인 철학이 더 견고해야 삶도 더 행복하게 지탱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해요. 물론 저희도 계기가 있어서 도시를 떠나 살게 됐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는 환경이 더 많이 생기면 좋겠어요.
2024년 6월 25일 제주 속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