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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아


청주대학교 시각디자인과 졸업 ‘12
세화씨문방구 대표
제주 생활 8년 차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제주의 풍경을 그리고 문구류로 만드는 세화씨문방구를 7년째 운영하는 이진아입니다. 제주 내려온 지는 8년 차가 됐네요.

미술을 시작하게 된 건 언제이고, 이유는 무엇인가요? 
가족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아버지가 산업디자이너 출신이셨고 어릴 때 사무실에 놀러 가서 설계 도면을 구경했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사촌 언니가 어릴적에 옷 그림 그리는 노트를 보여줬었는데 정말 멋지다고 생각하곤 했어요. 그런 영향 때문인지 중학교 때부터 미술을 하고 싶어 했고 입시 미술은 고2 때 시작했어요. 미대에 무슨 과가 있는지도 모를 때라서 원서 쓰면서 시각디자인과를 처음 알게 된 것 같아요. 중학교 때부터 포토샵으로 축전 만드는 걸 좋아했는데, 그런 작업을 할 수 있겠다 싶었죠.

대학교에서는 어떤 학생이었어요?
1, 2학년 때는 수업은 조용히 듣고, 밖에서는 술 잘 마시고 잘 노는 학생이었어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술 마시고 주말에는 쉬곤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3학년 때 편집디자인 과제를 하면서 수업에 흥미가 생겼어요. 우수 작업으로 선정되면 다른 조원들이 그 레이아웃을 따라 하는 방식이었거든요. 선정되고 싶은 욕심에 해외 작업도 찾아가며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나요. 결국엔 선정이 되었고 편집 디자인에 흥미가 생겨 그때부터 취업도 편집디자인 쪽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 외에도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았어요. 문구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캘리그래퍼 등이 되고 싶어서 공부도 하고 학원도 다녔어요.

졸업전시는 어떤 작업을 했어요?
저희 학교는 영상, 편집디자인, 브랜딩, 웹디자인중에 3가지를 골라서 해야 했어요. 그때는 한글에 꽂혀서 ‘한글을 요리하다’라는 주제로 작업을 했죠. 기존에 있는 폰트를 살짝 변형해 조리도구를 활용한 한글을 만드는 작업이었어요. 한글이라는 소재로 작업을 처음 하다 보니 생각보다 어려웠지만 즐겁게 작업했던 기억이 나요. 전시에 필요한 문구류나 굿즈를 만들어 부스를 꾸몄는데 이때부터 굿즈 작업들이 재미있게 느껴졌고 독특한 작업들 덕분에 졸업 전에 취업을 할 수 있었어요.

바로 취업을 했다니 정말 잘 된 일이네요. 첫 회사는 어땠나요?
졸업 전시 끝난 해 12월부터 서울 생활을 시작했어요. 첫 회사가 정말 멋진 디자인 스튜디오였는데 디자인에 미쳐야 살아남을 수 있는 그런 분위기였어요. 지금도 그렇겠지만 야근도 정말 많았고 제가 버티고 있기에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저랑 맞지 않다고 생각해서 1년 정도 다니다가 결국 퇴사를 했어요. 재취업 전에 핸드메이드 페어를 신청했고 직접 실 제본한 노트 같은 문구류를 만들어서 참여하고 플리마켓도 많이 나갔었어요. ‘욕심가득문구창고’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었는데 생각해보면 ‘세화씨문방구’의 빌드업이었네요. 아쉽지만 이 활동도 금전적인 문제때문에 금방 다시 구직하게 됐어요.

그 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그 당시 대형 서점에 자주 가서 책을 많이 접했어요. 그러면서 책 디자인을 한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출판사에 무작정 이력서를 보냈어요. 그중 다행히 한 곳에서 연락이 와서 인터뷰를 봤는데, 너무 쿨하게 출근하라고 하셔서 출판사 디자이너로 일하게 됐죠. 책의 표지와 내지 디자인도 했지만, 대표님께서 출강하시는 학교의 학생들 전시 포스터나 도록 등도 맡아서 하게 됐어요. 즐겁게 일하고 디자인 실력도 많이 늘었는데, 작업량이 너무 많다 보니까 나중에는 번아웃이 오더라고요. 대표님께서는 밤낮없이 일하시는 스타일이시고 다양한 의견을 많이 내주셔서 혼자 일하기엔 여러모로 힘들었어요. 그때 제주도에 잠시 내려왔다가, 아예 제주도에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왜 제주도에 오게 됐고, 어떤 점이 좋았어요?
마침, 디자인하던 책 중에 제주도 여행책이 있었는데, 마음이 힘들 때라 무작정 내려왔어요. 평화로운 제주도가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아무 생각 없이 바다만 봐도 행복하고 마음이 편안했어요. 그때 온 곳이 세화인데, 5월의 바다 모습이 정말 예뻤어요. 우리나라에 어떻게 이런 바다가 있지 싶을 정도로요. 그때부터 한 달에 몇 번씩이고 제주도를 오갔죠. 번아웃이 왔을때 한 달 고민하고 3개월만에 바로 제주에 내려오게 되었어요.

제주도에 내려와서 살겠다고 결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어떻게 결정하게 됐어요?
그때가 스물일곱인데, 제주도가 너무 좋다 보니 결혼하기 전에, 좀 젊을 때 한번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더 늦기 전에 빨리 뭐든지 시작해보자 싶었죠. 그렇게 세화에 있는 카페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카페를 쉬는 날이면 펜, 색연필 등 손으로 그린 그림엽서를 만들어 플리마켓에 가지고 나가서 팔고요. 그게 세화씨문방구의 시작 같은데, 지금 생각해 보면 원화 엽서를 정말 저렴하게 팔았었네요. 그때 구매하신 분들은 운이 참 좋으셨던 거 같아요. 아직도 가지고 계실까요? 궁금하네요.

지금의 세화씨문방구 공간은 어떻게 마련하셨어요?
일하던 카페에 자주 오시던 분이 건물을 지으신다고 해서, 그 건물에서 소품샵을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다행히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세화씨문방구라는 이름으로 이 공간을 만들게 됐죠. 처음에는 상품이 별로 없어서 직접 그린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 같았어요. 문구류는 거의 없고 갤러리 느낌이었죠. 그러다가 돈 벌면 스티커 만들고, 노트 만들고, 머그컵도 제작하는 식으로 조금씩 채워나갔어요. 상품이 채워지기까지 1, 2년 정도 걸린 거 같아요. 지금은 상상하기도 어렵겠지만, 그때는 참 무모하게 가게를 열었었네요.

하루 일과가 궁금해요. 
새벽에 일어나면 요가를 가고, 아니면 바로 출근해서 세화씨문방구를 열어요. 퇴근하고 나면 바다나 오름, 숲 산책을 가고요. 그 외 시간에는 집에 고양이가 있어서 고양이를 돌봐요. 휴무에는 숲에 가는 걸 좋아해서 동백동산이나 다랑쉬 오름 둘레길을 많이 가고 있어요. 마음에 안정이 필요할 때 많이 찾는 것 같아요.

소품샵을 운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매년 달력의 그림을 바꿔서, 지금 7개 버전의 달력이 있거든요. 근데 그 달력을 모으시는 분이 있더라고요. 온라인도 아니고 제주에 오셔서 직접 구매셨던 손님도 계시고 그림이 너무 따뜻해서 울컥하신다는 손님도 계셨어요. 손님께서  눈물이 너무 글썽이며 얘기하시는데 저도 같이 울먹거린 기억이 나네요. 관광지에 단골이 생긴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 참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어요. 늘 찾아주시는 단골 고객님들 덕분에 지치지 않고 힘내서 계속 제주 그림을 그리고 문구류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요즘 고민하는 게 있나요?
7년이 되다 보니까 이제 뭘 그려야 하는지 좀 막막해요. 매번 너무 비슷한 그림을 그리나 싶은 생각도 들어서 요즘 들어 그림을 그리는 게 힘들기 시작했어요. 작년부터는 제주 그림보다는 나무나 꽃 등 자연 그림을 많이 그리고 있어요. 여기저기 다니면서 많이 보고, 영감도 얻어야 하는데, 혼자 일하다 보니 참 쉽지 않아요. 최근에는 제가 그리고 싶은 그림과 상업적으로 그려야 하는 그림 스타일이 달라져서 가치관의 혼란이 오더라고요. 문방구 운영자와 작가로서 중심이 깨지고 있는 거 같아 고민이 많아요.

현재 직업 외에 다른 관심사가 있으신가요? 어떤 취미를 가지고 계신가요?
요가와 걷기를 하고 있어요. 둘 다 집중해서 하다 보면 그 시간 동안은 다른 생각을 안 하게 되거든요.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어서 좋아요. 사실 고객을 응대하다 보면 에너지를 많이 뺏기거든요. 같은 질문도 많이 받고, 가끔 어려운 손님도 있고, 대부분 좋은 분들이 많지만 안 좋은 후기도 남기는 분도 종종 계시고요. 그래서 요가나 걷기를 하면서 생각을 떠나보내려고 해요. 그리고 요즘에는 명상에도 관심이 생겼어요. 시간이 된다면 명상을 공부하고 싶어요.

지금 가지고 있는 다른 꿈이 있으신가요?
처음 제주에 왔을 때, 뭐든 한 가지에 몰두해서 10년 동안 해보자고 마음먹었어요. 이 자리에서 세화씨문방구로 10년을 채워보고 싶어요. 그리고 그 뒤에는 또 어디에서 살지 고민하고 있어요. 종종 여행을 가곤 하는데, 갈 때마다 그 지역에 사는 걸 고민하거든요. 남해나 경주 같은 곳에서 살게 될 수도 있고 남편이 있는 서교동에 세화씨문방구를 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진아님에게 제주도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제주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취미생활도 하고 자유롭게 살고 있지만 힘든 일도 많이 겪어서 애증의 제주라고 생각해요. 힘든 일이 많았을 때 제주도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하다가도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애정이 더 커서 그런지 떠나기 싫었던 마음이 더 컸던 거 같아요. 전에 제가 살았었던 곳보다는 제주가 더 편하게 느껴지고, 지금은 온전한 나만의 제주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미래를 고민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마지막 한마디 부탁드려요.
사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제주도에 와서 뭔가 한다는 게 쉽지는 않잖아요. 제가 제주에 내려올 수 있던 계기들을 생각해 보면 서울에 있을 때도 여기저기 많이 보러 다니거나, 당일치기라도 짧게 여행하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쉬는 날에는 무조건 동네를 산책했었고요. 회사를 잠깐 쉬게 되었을 때 북유럽에 한 달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요. 그때도 무모하게 적금을 깨고 책 한권 들고 훅 떠나버린 기억이 나네요. 제 인생에 혼자 첫 해외여행이었는데 두렵고 무서웠지만 막상 경험해 보니까 정말 좋더라고요. 10년 전이지만 그때의 기억들이 아직도 생생하고 잊을 수 없는 여행으로 남았어요. 이제는 언제 또 그런 여행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도 막상 겪어보니 떠나는 게 덜 무섭고, 뭐든 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겼어요. 많이 다니고 많이 보고 했던 경험이 뒤돌아보면 큰 자산이 되었던 거 같아요.
마음이 힘들어질 때는 어디든 훌쩍 떠나보는 걸 추천해 드려요. 여행이 무섭다면 내가 살고 있는 가까운 옆 동네라도요. 그런 행동들이 차차 쌓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뭐든 할 수 있는 내가 되어 있을 거예요. 그리고 힘든 시기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잘 살아갈 거예요. 그러니 지금, 이 순간만큼 후회 없이 잘살아 봐요.



2024년 6월 24일 세화씨문방구에서


세화씨문방구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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