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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영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졸업 ’19
제주에 오래 살고 싶은 이주민
제주 생활 5년차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한 정소영입니다. 제주도에 내려온 지는 이제 5년 차가 됐고, 제주에서 오래 살 방법을 강구하며 여러 일을 하고 있어요. 

잠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미술을 시작하게 된 건 언제인가요?
어릴 때 자란 동네가 한 번쯤 다 외고를 준비할 정도로 학구열이 높은 동네였어요. 저도 외고를 꿈꾸다가, 예고 준비를 하는 친한 친구 영향을 받아서 예고에 다니고 싶어졌어요. 중3 때부터 늦게 입시 미술을 시작해서 예고는 못 갔지만 미술반이 있는 인문계를 다녔어요.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게 된 건, 영화 <장화홍련> 때문인데요. 그 영화의 미술을 감명 깊게 봐서 미술감독이 되고 싶어서 시각디자인과에 지원했어요.

대학교에서는 어떤 학생이었어요?
재수해서 대학교에 갔는데 기대하던 수업과 너무 달랐어요. 입시 미술 때 배운 기초 수업을 다시 배우더라고요. 삼 반수를 고민할 정도였어요. 하지만 대학 생활이 너무 재밌었고, 특히 다른 활동을 다양하게 했던 것 같아요. MT는 거의 다 참여하고 소모임 활동에 오케스트라 동아리, 학생회 활동, 체육대회 댄스 공연까지 다양한 활동을 했어요. 2학년이 끝나고 나니 에너지가 다 고갈되고 지쳐서 휴학하고 제주도에 내려오게 됐어요.

그렇게 제주도와의 인연이 시작됐나요? 제주도에서는 무엇을 했어요?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텝 생활을 두 달 동안 하면서 정말 다양한 유형의 손님을 만났어요. 전공과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는데, 그때 꼭 전공으로만 진로를 선택할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하게 됐죠. 그런 생각을 하고 나서 복학하니까 학교생활이나 수업이 조금 편해졌어요. 그전에는 학문적으로 몰두해서 공부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는데, 디자인 배운 걸 가볍게 살려서 다른 일과 함께해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흥미가 붙더라고요. 

제주에서의 시간이 좋은 영향을 주었네요. 졸업전시 때는 어떤 작품을 했나요? 
복학하고 나서는 제주도에 관한 작업을 많이 했어요. 졸업 전시도 자연스레 주제를 제주도로 생각했는데, 여행이나 관광보다는 지켜야 할 자연이나 문화를 주제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다 우연히 다큐멘터리를 보고 제주 해녀를 주제로 해야겠다 마음먹었어요. 마침 해녀학교가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 학기중이랑 기간이 겹쳐서, 4학년 1학기가 끝나고 졸업학기를 앞두고 휴학했어요. 해녀가 하는 일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해녀 분들에게 다가가서 문화를 몸소 배우면서 사진도 찍고 취재도 해볼 생각이었죠. 해녀학교 다니려고 휴학까지 했다며 지원서에 열심히 어필한 덕분인지, 운 좋게 입문반에 다닐 수 있었어요. 그렇게 제주 해녀에 대한 일러스트레이션 책으로 졸업 전시를 했어요. 따뜻한 그림과 글이 있는 백과사전이었는데, 이때 작업으로 해녀 학교 달력을 만들고 공모전에서 상도 받아 의미 있는 작업이에요.

해녀학교에서는 어떤 걸 배웠어요?
입문반 수업은 16주 동안 토요일에 진행되는데 매주 주말에 서울과 제주도를 오갔던 기억이 나네요. 학생들이 거의 3~50대분들이 많다 보니까 엄청 예쁨 받으면서 다녔던 기억이 나요. 그때 알게 된 게 해녀학교에서 단순히 다이빙이나 잠수, 채취하는 법만 가르치는 게 아니고 제주 해녀 공동체 문화에 대해 깊이 있고 중요하게 가르치더라고요. 그때 공동체 문화의 좋은 점을 생각하게 됐고, 그 공동체에 언젠가 속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졸업할 때 가장 고민하던 게 무엇인가요?
과연 내가 디자인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를 가장 고민했어요. 부모님이 항상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삼고 잘하는 일이나 돈 잘 버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라고 하셨거든요. 그 세 가지 중에 디자인은 어디에 속하는지 생각해 보니까 아쉽게도 셋 다 아니더라고요. 그래도 그나마 책상에 엉덩이 붙이고 가장 오래 할 수 있는 게 디자인인 것 같았어요. 그래서 디자인을 놓지는 않되, 좋아하는 장소에 가서 살면 되겠다 마음먹었어요. 그렇게 제주도에서 디자인 회사에 다니면서 여행하는 듯한 삶을 살아볼까? 꿈꿨던 것 같아요.

졸업 후에 바로 제주도에 온거죠? 지금까지 어떤 일을 해 오셨나요?
19년도에 졸업전시를 마치자마자 코로나가 딱 터졌어요. 그래서 취업을 좀 미룰 생각으로 봄에 제주도에 내려오게 됐죠. 마침, 협재 쪽에 숙소를 지원해 주는 카페알바 자리가 나서 일하다 보니 일하면서 여행하는 삶이 꽤 마음에 들더라고요. 그렇게 제주도에 살기로 결정하고 디자이너로 일하게 됐어요. 그동안 여러 회사에 다녔는데, 첫 회사를 퇴사하고는 여름에 할 일을 고민하다가 해녀학교 직업 반에 지원해 다니기도 했어요. 직업 반에 들어가긴 꽤 까다로운데, 예전에 달력 만든 걸 좋게 봐주신 이유인지 다행히 합격할 수 있었죠.

왜 해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요즘 어떻게 하면 제주도에 오래 살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해요. 이주민들도 만나면 제일 많이 묻는 말이 “언제 육지에 돌아갈 거야?”예요. 저는 아직 서울에 올라갈 마음이 없긴 한데, 아무래도 디자인만으로는 평생 살기 어려울 것 같아 다른 방법이 필요할 것 같더라고요. 디자이너 일자리는 한정적이거든요. 그러던 중에 직업반을 들어갔는데, 미래에 진짜로 해녀를 하며 살 수 있을지 고민하기 위한 과정이었어요. 예전부터 물질이 재밌었고 해녀 공동체 문화가 멋있기도 했고, 또 해녀에 대한 로망이 있긴 했는데, 직업반을 다니면서 먼 훗날 디자인하는 해녀가 되어야겠다 마음먹었죠. 해녀는 거의 다 투잡이니까 물질 안 하는 날은 디자인하면 딱 맞겠다 싶더라고요.

서울에서의 삶과 제주도에서의 삶이 다른 점이 있나요? 
제주도에서 이직을 여러 번 했는데 서울에 있었으면 이직하기까지 고민을 더 많이 했을 것 같아요. 근데 제주도는 어디를 가도 아직 막내여서 새로운 시작에 대한 망설임이 많이 없어요. 그리고 서울보다는 양질의 일자리가 확실히 적고, 급여도 낮은 편이에요. 이주민 디자이너가 일하는 곳들도 몇몇 회사로 한정되는 것 같고 얻을 수 있는 정보도 많이 없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1년 전에 옛 직장동료와 제주도 이주민 디자이너 모임이라는 걸 만들어 운영하고 있어요. 지금은 60명 정도가 모여 있네요.

요즘은 무얼하며 지내나요?
최근에 회사를 퇴사하고 쉰지 한 일주일 정도 됐어요. 올해 초부터 단기 룸메이트를 구해서 지내고 있는데, 말하자면 단기 임대업을 하고 있죠. 제주도에서도 이사를 몇 번 다니면서 연세가 아깝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집을 꾸미는 재미를 알게 됐어요. 그래서 연세도 아끼면서 남들에게 제가 꾸민 집을 보여주고 싶어서 룸메이트를 구하게 됐죠. 언젠가 작은 쉐어하우스를 운영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는데 그 밑거름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마침 내일 체크아웃이라서 인터뷰 끝나면 청소하러 가야 해요.

제주에 와서 생긴 취미가 있어요?
봄에는 고사리를 꺾고 여름에는 해산물을 잡는데, 바로 먹지는 않으니까 오래 저장할 방법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한 게 장아찌 담그기에요. 무언가 재료가 생기면 전부 장아찌로 만들어서 주변에 나눠주는 취미가 생겼어요. 그리고 예전에 전통주 관련 사업을 하는 회사에 다니면서 가양주 담그는 원데이 클래스를 체험한 적이 있는데 그것도 재미가 있어서 술 담그는 취미도 생겼어요. 장아찌 만들고 술 담가서 친구들이랑 먹고, 선물로 주는 게 요즘의 낙이에요.

지금 가지고 있는 다른 꿈이 있나요?
가까운 꿈은 디지털노마드에요. 지금도 완전 아니라고는 못 하지만 보다 더 많이 여행과 일을 병행하고 싶어요. 한때 해외에서의 디지털노마드도 꿈꿨지만, 지금은 제주에서 1인 스튜디오를 차려서 살고 싶어요. 그리고 먼 미래에는 물질하는 디자이너 혹은 디자인하는 해녀가 되고 싶어요. 어떤 일이 우선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네요.

정소영님에게 제주도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숨 쉴 곳인 거 같아요. 부모님이나 친구가 가끔 언제 육지 올 거냐고 물어보면 생각해요. 그러면 제 대답은 서울에서 딱히 하고 싶은 게 없는데 제주에서는 하고 싶은 게 정말 많다는 거예요. 심지어 그 일들 대부분은 서울에서 못하는 것들이죠. 일하면서 여행하는 것도 그렇고 단기 임대업을 하는 것도 그렇고, 물질도 그렇고, 계절을 온전히 느끼면서 사는 것도 그래요. 생각해 보면 서울에서는 비가 오는 것 외에 날씨조차 신경을 잘 쓰지 않았는데, 제주도는 인프라가 부족한 대신에 자연을 온전히 느끼면서 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숨통이 트인다고 느껴요.

‘안녕, 디자이너’에게 마지막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꼭 제주도가 아니더라도 자기만의 숨 쉴 곳을 찾으면 좋겠어요. 그걸 위해 잠시 멀리 떠나는 것도 좋고요. 만약 포기하는 게 생기더라도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크다면 시도해 봐도 좋겠어요.


2024년 6월 24일 제주 한수풀해녀학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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