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범
건국대학교 산업디자인전공 졸업 ’10
행복물산 대표
제주 생활 5년차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보물섬 제주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운영하는 행복물산 대표 김상범입니다. 제주 농수축산물을 보물이라고 생각해 지은 이름이고, 이제 5년 차네요.
미술은 언제부터 시작하셨어요?
아버지가 건축과 교수여서 학창 시절에는 무조건 건축과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자연스레 고등학교도 자연 계열이었죠. 근데 건축과에 갈 정도의 성적은 아니어서 다른 전공을 고민하게 됐어요. 그러다 실내디자인 전공을 고려하게 됐고, 자동차에도 관심이 많던 터라 산업 디자인과를 지망하게 됐죠. 고3 때부터 미술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대학교에서는 어떤 학생이었어요?
과제를 눈에 띌 정도로 열심히 하는 성실한 학생이었어요. 교수님에게서 제 캐릭터가 과제에 묻어난다는 평을 들었던 게 기억에 남네요. 1, 2학년 때는 과대도 할 정도로 학교생활을 열심히 했어요. 친구들과도 두루두루 친했죠. 그러다 보니 학생회장 코스를 자연스럽게 밟고 있었는데, 학생회장 선배들처럼 학교에 살다시피 지낼 자신은 없는 거예요. 그래서 3학년 때부터는 취업 준비와 함께 대학생 서포터즈 같은 대외활동을 많이 했어요.
졸업을 앞두고 가장 고민했던 것은 무엇인가요?
졸업 후 몇 가지 선택지를 고민했어요. 첫 번째는 대기업 취업, 두 번째는 유학을 다녀와서 디자인 아티스트가 되는 것, 그리고 마지막은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것 이렇게 3가지였어요. 가장 원하던 건 대기업 취업이었는데 아쉽게도 그 당시에는 취업에 대해 조언을 구할 선배나 교수님이 많이 없어서 아쉬웠었어요. 그리고 하필이면 제가 졸업할 때쯤에 리먼 브러더스 사태의 후폭풍으로 경제가 안 좋을 때라 대기업에서 채용을 거의 안 하더라고요. 그 당시에는 졸업한 해에 꼭 취업해야 하는 줄로 잘못 알고 있어서 결국 다른 루트를 생각하게 됐어요.
어떤 루트를 생각하게 되셨나요?
학교 선배 중에 가구 공방을 하시는 분이 있어서 무작정 찾아가 가구를 배우고 싶다고 했어요.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삼고초려를 해서 가구 만드는 걸 1년 동안 배웠죠. 그러다가 직접 가구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져서 공방을 나오게 됐어요. 그런데 가구 브랜드가 생각보다 창업 비용이 많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정부나 지자체 지원사업을 알아보게 됐어요. 생각해 보니 내가 하고 싶은 아이템보다는 지자체에서 원하는 모델이어야 지원을 더 수월하게 받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가구 브랜드가 아닌 다른 아이디어로 지원을 받아 첫 사업을 했는데, 아쉽게도 1년 만에 접게 됐어요.
그 이후에는 무엇을 했나요?
사업하며 만난 몇몇 친구들과 여행 앱을 만들었어요. 한 1년 정도 열심히 만들었는데, 이번에도 경험 부족 때문인지 잘 안됐어요. 결국 어떻게든 디자인으로 먹고 살아보자 싶어서 디자인 스튜디오를 열었죠. 주로 공항이나 새로 짓는 건물에 들어가는 시설물이나 사이니지 같은 걸 디자인 했는데, 3년 정도 사업을 하다 보니 매너리즘이 오고, 하루하루가 재미없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업무도 빡빡하고, 돈도 제때 못 받고, 성공한 주변 친구들을 보며 비교를 많이 했어요. 그때 우연한 기회로 미국 여행을 떠났는데, 그때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어떤 생각을 하게 됐나요?
미국에서 돈 내고 빠르게 입장하는 패스트트랙을 보게 됐는데 가족 단위로도 이용하는 사람들을 보며 어떻게 저렇게 돈을 벌까 싶더라고요. 완전 자본주의의 나라라고 느끼면서 모든 가치가 돈으로 인정받는 느낌을 받았어요. 결국 내 가치는 내가 받는 월급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의 월급에 만족하면 그 정도 가치로 스스로를 인정하는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그런 생각을 하니 제 스튜디오도 가치가 절하된 것 같아서 바꿔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생각해 보니 제 사업의 구조가 악순환의 고리 같았어요. 클라이언트는 디자인의 가치를 모르니까 값을 낮게 쳐주고, 스트레스 받으면서 야근은 하는데 결과물은 늘 아쉬운 거예요. 근데 그 결과물로 다른 작업을 찾으니 또 비슷한 수준의 클라이언트를 만나고, 이게 계속 반복됐죠. 결국 그 고리를 깨야만 할 것 같았어요.
그 때의 선택은 무엇이었나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어요. 좋은 작업물로 포트폴리오를 새로 만들어서 더 좋은 고리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디자인 시장을 떠나 다른 일을 새로 시작할 것인가 중에서 고민했죠. 그런데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만들자니 정말 잘 돼서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가 되지 않는 이상, 제가 생각하는 정도의 가치를 인정받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데에도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갈 것 같고요. 그래서 차라리 다른 시장에서 무언가를 한 번 시도해 보기로 결정하게 됐어요. 그때는 몇 번 바닥을 찍어서인지 겁이 별로 없었고, 받아 주는 곳도 없으니까 스스로 일어서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정말 많은 고민을 하셨겠어요. 제주도에 오게 된 건 어떤 이유에요?
그때 유튜브에서 스마트스토어에 대한 콘텐츠를 보게 됐어요. 보니까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배운 내용과 비슷하더라고요. 결국 누군가 설득해 제품을 구매하게 하는 건데, 디자인도 남을 설득하는 일이다 보니 조금 쉽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온라인 사업은 사무실이 없어도 되고, 초기 투자 비용도 적어서 진입 장벽이 낮을 것 같더라고요. 스마트스토어를 하기로 하고 제품을 결정하기 위해서 제가 가지고 있는 키워드를 나열해 봤어요. 디자인 전공, 자취남 등 나열하다 보니 제주도 출신이라는 키워드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렇게 제주도에 포커스를 맞춰보니 흑돼지, 귤, 방어 등 제품이 그려졌어요.
첫 상품은 흑돼지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흑돼지를 판매하게 됐어요?
제주도에 정육 공장을 하는 형이 있다고 해서 일주일 만에 사업계획서를 만들고 무작정 브리핑했어요. 근데 단호하게 안 한다고 하는 거예요. 제가 취급하는 금액 단위가 너무 적은데 손은 많이 가다 보니까 돈이 안 된다고 했어요. 그렇게 좌절한 채로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 영업하는 친구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한 달 수익률이나 손익 분기점 같은 숫자가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디자이너다 보니까 감정에만 어필하고 실질적인 숫자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숫자를 보강해서 제주도에 있는 육가공 업체를 하나씩 전부 검색하고 수소문해 사업계획서를 돌렸어요. 그중 한 공장이 좋게 봐주셔서 같이 일을 하게 됐어요.
그렇게 보물섬 제주가 시작됐나요? 첫 시작은 어땠어요?
첫 공장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못했어요. 주문을 거의 수동으로 처리했었는데 누락도 많고 주문이 꼬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제 꿈은 더 많고 다양한 주문을 다루는 건데, 이 공장에서는 제가 생각하는 미래가 이뤄질 거 같지 않았죠. 그러다 처음 브리핑을 거절했던 형에게서 다시 연락이 와서 같이 하게 됐어요. 대신 포장이나 택배 같은 건 다 제가 직접 했죠. 6개월 정도 있으니까 공장 거래처 중 판매량 1위를 하기도 했는데, 공장에서는 다른 거래처를 먼저 챙겨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여러 이유로 다시 결별하고 다른 공장을 찾아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어요. 저희는 주문만 넘겨주면 되는 시스템이라 시간 여유가 생겨서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하게 됐어요. 그다음 아이템이 겨울 방어였는데, 그게 대박이 나고 그 뒤로 호박, 성게알 등 다른 것들도 잘 되고 있어서 지금까지 왔어요.
요즘 하루 일과가 궁금해요.
주체적으로 어떤 곳에 살기로 결정하고 실제로 생활해 보는 것 자체가 제 자존감을 많이 올려줬어요. 당시에는 외롭기도 하고 행복한가 싶기도 했는데, 돌아보니 내가 선택한 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 자체가 굉장히 행복한 기억이더라고요. 꼭 제주가 아니었더라고요. 디자인을 선택한 사람은 자신의 업에 대해서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아마 다양한 고민이 쉬지 않고 계속 떠오를 텐데 어디에서 살아볼까 하는 고민이 떠오른다면, 한 번 실행해 봐도 좋을 것 같아요. 다른 고민도 곧 떠오를 텐데, 고민만 하기보다는 실행해 보고 나에게 맞는지 빠르게 결정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가지고 있 꿈이 있나요?
보물섬 제주 브랜드를 놓고 보면 두 가지 방향을 생각하고 있어요. 하나는 F&B 방면으로의 확장, 하나는 유통 쪽으로의 확장이에요.F&B 사업으로 확장한다고 예를 들면 흑돼지 전문 요식업 브랜드를 차리고, 제주의 다양한 제품과 문화를 곁들여서 컨텐츠 브랜드가 되고 싶어요. 아니면 좀 더 유통에 집중해서 흑돼지 가공 공장을 운영 하거나 귤을 대량유통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죠. 이 두 가지 외로 농수축산물이 아닌 공산품을 판매하려는 생각도 있어요. 농수축산물은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이 좀 있거든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의 상품을 온라인으로 유통해 보고 싶어요.
김상범님에게 제주도는 어떤 의미인가요?
사실 제주도로 오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금의환향하고 싶지, 패배자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그거는 너무 감정적인 해석인 거고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제주도 가는 게 잘 될 수 있는 것 같아서 힘들게 결정했던 것 같아요. 한창 사업 아이템을 고민할 때 키워드를 나열했었잖아요. 그때 느낀 게 제주도는 그냥 저의 정체성이자 뿌리 같았어요. 저의 오리지널리티라고 할 수 있죠.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제가 디자이너였을 때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디자이너들이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이 커요. 아까 말했듯이 가치는 스스로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대로 인정받기 위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 봐도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의 삶을 생각하는 후배가 있다면 가능성을 잘 따져보고 공간을 한 번 옮겨봐도 좋을 것 같아요. 서울과 제주도만 경제적으로 놓고 따지면 제주도가 서울보다는 공간 임대료가 더 저렴하거든요. 온라인에도 많은 가능성이 있는 시대니까 제주도를 선택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제주와 서울 각각의 장점은 명확할 테니 잘 고민해 봐야겠죠.
2024년 6월 25일 행복물산 사무실에서
보물섬제주가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