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채원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4학년 재학
안녕하세요. 먼저 이렇게 인터뷰 요청해 주셔서 감사해요. 같은 과이긴 하지만 이렇게 마주 앉아서 이야기하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요. 자기소개 먼저 부탁해요.
제 이름은 강채원이고요. 2013년도에 홍대 미술대학 자율전공으로 입학했고 지금 4학년 1학기를 다니고 있어요. 중간에 2번 휴학을 해서 2년 정도 학교 밖에서 시간을 보냈어요.
휴학이야기는 뒤에서 더 하기로 하고, 먼저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요즘 학교에 다니고 있고요. 졸업 이후를 인생의 2막이라고 생각해서, 졸업 이후의 인생을 어떻게 준비하고 실현해 나갈까를 생각하고 있어요. 그 준비 과정의 일환으로 해외에서 일을 경험하고 싶어서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중이에요. 지금은 유학보다는 단기로 나갈 기회들, 예를 들어 해외 대학의 여름 학기에 다닌다거나, 여행 중 참여 가능한 워크숍 등을 찾아보고, 열심히 지원하고 있어요.
그렇군요. 그럼 좀 거슬러 올라가서 시각디자인과에 입학하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실래요?
중학교 때부터 미술을 하고 싶어 했어요. 사실 예고도 준비했는데 가지는 못했어요. 고등학교 땐 포스터와 디스코그래피, 사진에 관심이 있어서 많이 찾아보고 직접 해보기도 했죠. 일러스트레이션을 좋아해서 그림도 많이 그렸어요. 대학교에는 입시 미술학원에 다니지 않고 비실기전형으로 들어왔어요. 미술을 가지고 어떤 형태로든 직업으로 갖고 싶다고 생각해 들어 왔죠. 대학교 와서 배워보니까 제가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거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디자인이 제 취향이라는 것은 알고 들어왔는데, 직접 제작하는 견해에서 보니 디자인이라는 직군의 전형적인 특성과 제 성향이 굉장히 대비되는 것 같더라고요. 지금은 아예 미술 쪽으로 선택하는 게 맞나 하는 고민까지도 하고 있어요. 입학 전과 생각이 정반대로 바뀌었죠.
무슨 일이 있었길래 생각이 정반대로 바뀐 건가요. 학교 이야기를 좀 들려주세요.
전공 수업보다는 타과 수업과 교양수업을 더 많이 들었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예술학과와 회화과 수업이에요. 제가 하고 싶은 얘기의 논리를 지금까지 있던 논의들에서 찾고, 흔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수업이었는 데요. 사건을 역사와 주변 상황까지 고려해 파악하고, 제가 생각하는 관점으로 시각화해서 펴나가는 과정이 재미있었어요. 결과물은 소논문일 때도 있고, 글일 때도 있고 영상이기도 했는데, 결과물이 다양해서 더 매력적이었어요. 학교에 다니면서 제가 뭔가의 맥락을 고려해서 공부하는 걸 좋아하고, 하나의 이야기를 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래서 클라이언트 기반의 작업을 하기에는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뚝딱뚝딱 작업을 만들어 내야 하고, 클라이언트를 파악해서 원하는 방향으로 작업을 진행 해야 하는 게 어려웠거든요. 그래서 외주 작업을 하다가 그만둔 경우도 종종 있었어요. 이걸 직업으로 삼으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 같다고 생각했죠.
그럼 이제 앞서 얘기했던 휴학 이야기를 해볼까요? 휴학은 언제 했고, 무엇을 하며 지냈나요?
휴학은 2학년 끝나고 한번, 3학년 끝나고 한번 이렇게 2년 동안 했어요. 2학년 마치고 휴학할 때는 작은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했었는 데요. 상품을 만들고 출시하기 전, 상품과 관련한 걸 정리하는 작업을 했어요. 기존 디자이너가 일하다가 그만두어서 남겨진 일을 저와 동기가 하게 됐는데, 광범위한 일을 하는 것도 힘들었고, 일하는 동안 힘들기만 하고 보람이나 재미는 못 느껴서 첫 프로젝트 마치고 바로 그만두었어요. 그러고 나서 대림미술관 전시운영팀에서 일하게 되었죠. 전시관 관리도 하고, 미술관에서 자체 진행하는 프로그램 기획에 참여했는데, 아이디어를 프로그램에 반영시키고 실현해 나가는 게 재미있었죠. ‘만들어 내는 매체가 꼭 디자인적인 결과물이 아니어도 되는구나’도 알게 되었어요. 일 끝나고는 여행을 다녔어요. 3학년 마치고 한 휴학 때는 1년 내내 일만 했어요. 패션 저널리스트라는 직함을 가진 디렉터의 어시스턴트로 패션 쪽에서 일을 했는데요. 한 브랜드에서 화보촬영을 의뢰하면 그분이 키워드와 큰 기획을 잡으시면, 제가 아이디어를 내고, 세부 계획을 하고, 글도 쓰고, 디자인도 했죠. 평소 패션에 관심이 있기도 했고, 1부터 10까지 직접 진행하는 것도 정말 재미있었죠. 저도 비슷한 일을 하고 싶긴 한데, 그분은 20년 넘게 한 분야에서 일했고, 많은 일을 겪어가며 그 자리에 올라 노련미도 갖췄기 때문에, 제 미래의 모습으로 생각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아닐까 싶어요.
그럼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이 있는 것 같은데, 그 얘기를 들려줄 수 있나요?
원래부터 창업하고 싶었어요. 구체적인 아이템은 최근에 생각했는데, 하나의 정체성을 갖고 다양한 업종을 아우르며 제품도 출시하고, 여러 활동도 하는 그런 기업을 하고 싶어요. 편집숍이 될 수도 있고, 출간 물일 수도, 상품일 수도 있죠. 일단 수익을 내야 하니까, 처음에는 수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업종에서 일을 시작하겠죠? 학교에 다니며 보니까 학교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각자 잘하는 것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이 만나서 각자 잘하는 것들을 바탕으로 같이 모여서 뭔가를 만들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일을 할 때도 대화가 통하고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서 하면 즐거울 것 같아요. 그런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할 것 같아서 해외에서 일을 해보고 싶어요. 졸업 이후 진로가 ‘기업의 디자이너’, ‘디자인스튜디오의 디자이너’, ‘그 외’의 3가지 방향으로 본다면 앞의 두 방향으로는 가고 싶지 않아요.
외국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 여행도 좋아해요? 일한다면 어느 나라에 가고 싶어요?
제가 제주도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는데요. 꽤 오랫동안 제주도에서 자란 탓인지 섬사람의 촌스러움이 묻어있는 것 같아요. 도시적인 것들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항상 결국 찾게 되는 것은 자연이더라고요. 그래서 여행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해요. 제 버킷리스트가 활화산을 직접 눈으로 보는 것, 그리고 우주여행을 가는 것이에요. 외국은 항상 프랑스를 가고 싶어 했어요. 토론을 중시하는 분위기도 좋고, 역사도 길고, 자유에 대한 투쟁도 신경 써주는 등 이념적인 면도 좋았고요. 만약 프랑스에 가더라도 프랑스어로 의사소통이 자유롭지는 못해서, 프랑스에 있는 인터내셔널 회사의 브랜치나, 지사 같은 곳에서 일하면 좋겠어요. 또 요즘에는 아시아 지역에도 흥미가 생겨서 중국, 홍콩도 생각 중이고요. 아무래도 문화권이나 정체성 등이 맞는 곳에 속해 있는 것이 장기적으로 편할 것 같기도 하고요.
디자인 외에 요즘 가장 고민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최근에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에서 본 문장이 있어요. ‘저항 자체에는 우월한 점이 아무것도 없습니다.’라는 문장인데, 제가 잠결에 읽다가 ‘저항’이라는 단어를 ‘취향’으로 잘못 읽었어요. 그러니까 ‘취향 자체에는 우월한 점이 아무것도 없습니다.’라고 읽은 거죠. 잘못 읽긴 했지만, 그 문장 자체가 굉장히 충격적이었는데, 제가 지금까지 고민하던 지점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느꼈거든요. 요즘 진로를 설정하는 단계에서, 저의 디자인적 취향이 어떤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커요. 졸업하고 나면, 어떤 식으로든 저의 취향, 그러니까 결국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반영한 결과물을 만들어 낼 거에요. 그 결과물을 많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고 더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서 지금 여러모로 준비하는 과정에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 자체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어요. 사고 싶고 것, 하고 싶고 것, 가고 싶은 곳이 많았는데 그런 걸 대부분 충족했는데도 행복의 정도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느꼈어요. 어느 정도까지는 정비례하지만, 그 이상이 되면 다른 양상이 되더라고요.
대학교에 와서 얻은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가 대학에 와서 얻은 것 중 가장 값진 건, 자신의 취향을 전시하고 설득할 방법을 고민하는 태도와 방법론을 탐구한 거에요. 디자인이라는 큰 영역 안에서 각기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방법론으로 표현한 결과물들을 감상하면서 시야를 넓힐 수 있었던 것도 값진 경험이었죠. 그리고 또 하나는 좋은 사람들은 얻은 것이에요. 이 집단 안에 있을 때의 제 모습과 그 외 집단에서의 제 모습이 다르고, 대화하는 주제, 대화의 깊이가 차이가 크게 나거든요. 학교 안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해도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고, 그래서 자유롭게 작업으로도 만들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사회문화적인 현상에 무관심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큰 깨달음이죠. 원래도 그런 성향이 있긴 했지만 다른 집단에 속했다면 없어질 수도 있었는데, 디자인을 전공하면서 그런 성향이 더 극대화된 것 같아요. 우리 학교의 장소도, 문화적인 위치도,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분위기도 영향을 준 것 같고요. 그런 것들 때문에 유행, 패션, 이슈 등 수면 위에 떠오른 걸 빨리 캐치할 수 있었어요. 의견을 자유롭게 내고, 상대방에게 예의를 갖추고, 무시하지 않는 그런 것들이 세상을 살아갈 때 큰 배움으로 남을 것 같아요. 아무나 할 수 없는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안녕, 디자이너’에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인터뷰 대상이 4, 5년 동안 배우던 걸 뒤로하고 다른 진로를 생각하고 있거나 선택한 사람들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방향을 튼 사람들이어서 용기도 많이 필요했을 거 같아요. 인터뷰이가 계속 더 많아졌으면 좋겠는 게, 이렇게 사례를 직접 보는 것과 생각만 하는 거는 차이가 크게 나니까요. 이미 졸업하시고 새로운 직업을 선택하신 분들에게는 지금 행복하신지 묻고 싶어요. 그리고 디자인 과를 졸업한 게 어떤 식으로 지금의 직업에서 작용하고 있는지도요. 대학교 때 만난 사람들과 어떻게 지속해서 연락하는지, 수업에서 배운 것, 경험한 것들이 어떻게 쓰이는지도 물어보고 싶어요. ‘안녕, 디자이너’ 가 반복을 통해 계속 이어져 나가고 아카이빙 된 사람들끼리 오랫동안 알고, 지속적인 네트워크가 형성됐으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2018년 5월 9일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4학년 실기실에서